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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 2회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연구에 관하여)
Bio통신원(박수경)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학생 때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근거로, 사회인이 되면 좋은 성취를 해야 한다는 근거로, 인간이 가진 근본적인 명예욕을 불러일으켜서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해내도록 잘 사용되는 고사성어입니다. 이 고사성어를 보고 세상을 향한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욕에 휩싸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역사적 배경에 따라 국가마다 문화적 특성이 있다고 생각해볼 때, 해외 특히 영미권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을 경우 상대적으로 한국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에 대해 아는 유학생은 한국인은 타인의 시선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라 그 만큼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들 하십니다. 그래서 실수와 실패를 잘 인정하지 않거나 한 번의 실수에도 쉽게 무너져서 재기가 어려운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합니다.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하면 명예를 중요시 여긴다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명예욕은 세상에 좋은 일을 해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인데, 이 욕구를 해소하는 방식에서 여러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한국적 문화는 좀 더 강박증적으로 매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
생명과학이나 의학을 공부한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요제프 멩겔레라는 분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1943년도에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의무관으로 활동하였고, 역사적 기록을 통해 판단하기로는 나치의 우생학적 신념에 매몰된 사람으로서, 수용소에 온 성인과 특히 소아들을 대상으로 약 21개월간 다양한 인체실험을 하고 연구 결과를 기록으로 남겨둔 사람입니다.
그는 유전학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분 같습니다. 그래서 수용소에 있는 동안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유전학에 대한 연구를 하였고, 유난히 소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질병연구를 다양하게 하였습니다. 대단한 것은 이러한 연구의 행위들이 저의 감수성으로는 상당히 잔인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인데, 아이들의 눈에 염색약을 주입해서 눈 색이 변화하는지를 관찰하기도 하고, 영양실조로 인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홍역과 결핵 등을 연구하거나, 쌍둥이들에 관심이 많아 몸의 일부를 임의로 붙혀서 샴쌍둥이를 만들어보고 혈액의 흐름이나 질병이 전달되는지 등의 연구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러하게도 이러한 연구들에 대해 본인이나 조수를 통해 소상히 연구노트를 작성하기도 하고 연구결과물인 장기들을 적출하여 보관했다는 것인데, 아마도 자신의 이러한 연구가 분명히 유전학적 발전을 통한 인류의 삶에 크게 유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여 후대에 본인의 연구를 잘 알려놓기 위하여 글도 쓰고 근거들도 남긴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연구대상자인 아이들에게는 실험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매우 친절한 의사여서 아이들은 각박한 수용소 생활에서 이 의사를 만나기를 기대하기도 하였다고 하고, 자녀들에게는 인자한 아버지였다고 하니 본인이 사람이라고 여기는 대상에게는 따뜻했던 것 같습니다. 기록된 이 분의 행동패턴을 살펴볼 때 추측하기로는, 다만 아무리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실험의 대상이 되는 순간은 상대의 고통의 문제에 공감하지 않는 냉철한 이성으로 연구에 몰두했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치 전쟁 범죄들의 죄를 묻는 뉘른베르크에서는 재판이 열렸고,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지켜야하는 몇 가지 원리가 되는 코드들을 제시하였는데 이른바 <뉘른베르크 강령> 이라는 것입니다. 연구자가 연구에 참여하는 대상자에게 위해와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진행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 생명윤리학에서는 의미있는 하나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뉘른베르크 사건 이후로도 민주화와 자본주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세계적으로는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고, 이러한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생명윤리는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연구자들과 의사들에게 의무적인 하나의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연구를 위해 잊혀지는 이름들
이 시대에 윤리적 가치판단의 기준은 다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합치되는 최소한의 기준, 이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하는 보편적인 도덕원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이름을 떨친 요제프 멩겔레 같은 연구자들은 소수이면 좋겠습니다. 간혹 중고등학교 과학실험실에서 해부 동물을 유린하는 것을 즐기던 엘리트 학생들의 모습이 한 때의 사춘기적 허세이길 바랍니다. 의사나 연구자들이 인간의 조직과 사체를 다루는 실험을 하기 위해 연구대상자들의 동의를 얻을 때, 아이패드 문서에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동의서 이름란에 싸인을 요청하며 들이대는 것이 개인적 성향과 쌓여있는 업무로 인한 성급함 정도라면 다행이겠습니다.
연구자들은 여러 명시된 절차를 통해 연구대상자들의 일부를 이용하여 연구를 하고 논문과 특허, 제품과 경제적 수입 등 다양한 성과를 얻고 명예를 남깁니다. 그 명예의 전당에 연구대상자의 이름은 없습니다. 이 말은 물론 그 분들의 이름은 연구자 정보보호로 남겨지면 안되겠으나, 그분들의 헌신을 통해 연구성과물이 나왔다는 그 공헌에 대한 감사나 상징적인 이름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인체 일부와 역대 가족들의 건강 정보가 담긴 DNA등을 제공하고 연구성과물이 나오고 사업화가 되어 많은 돈이 벌렸으나 사회적 기부로 소득공제를 받거나 건강보험료가 일부 하향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연구용 인체유래물에 있어 누가 소유권을 가진 주인이고 누가 단순한 사용자일까요.
인사유인(人死留人)이 필요한 시대
누군가는 사람은 죽어 DNA를 남긴다고 하였습니다. 조금 다르게 말해보고 싶은데, 사람은 죽어서 사람을 남기길 바랍니다. 어떠한 사람을 남기느냐가 곧 이 사회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어떠한 연구자를 선택하여 남기느냐는 지금의 연구자들의 합의와 사회적 문화 속에서 판단됩니다.
다행히도 역사는 요제프 멩겔레의 유전학 연구행위를 범죄로 정하였습니다, 현대 시대에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유전학적 연구는 어떠합니까. 과학적 호기심이 충족되고, 인류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물이 발견되어 학문적 의미가 있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도 개발되어 기업도 성장할 수 있고, 일자리도 많이 창출되어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다만, 딱 한 가지가 거치는 것인데, 말로 설명해내려면 많이 똑똑하고 논리적으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존재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언가, 많이 배우지 못했으나 지혜가 있는 노인분에게 물어보면 안된다고 할 만한, 묘하게 하면 안될 것만 같은 인간 존엄에 대한 감수성이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치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미 우리는 인간 위에 과학을 놓은 것이 아닐까요. 거치는 것은 인간적 감수성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감수성을 뛰어넘는 우리의 호기심적 욕망, 그리고 명예에 대한 탐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자 개인으로서도 어떠한 본성을 선택하여 연구에 남길지, 사회적으로도 어떠한 연구자를 남길지 인사유인(人死留人)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뉘른베르크 강령
김형근(2009.1.1.) 글, 무덤 속 ‘죽음의 천사’를 처벌하다, 중앙일보 칼럼
송경은(2019.3.14.) 글, 인간 유전자 편집 모라토리움 선언, 매일경제 칼럼
송경은(2019.3.21.) 글, 인간 유전자 편집 WHO 권고안 나온다, 매일경제 칼럼
아이라 레빈 작, 김효설 역(2008),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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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를 배우다>는 생명과학(Biology)을 전공하고 생명윤리학(Bioethics) 박사수료생으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 가치를 존중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써의 생명윤리학의 다양한 주제들을 다룹니다. 저자는 생명윤리교육, 유전자윤리, ELSI(Ethical, Legal, Social Implication) 연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으며 이 연재에서는 누구나 마주하기 쉬운 생명의료기술과 관련된 생명윤리 주제들을 편안한 글을 통해 살펴보고 연구자 및 대중들과 함께 생각하는 장을 제공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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