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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28] 대학원생을 보내며
오피니언 김우재 (2019-02-11 10:01)

샘은 방글라데시에서 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잠시 정부연구소에서 일하다 캐나다로 이주했다. 영주권자인 친형이 보낸 초청장으로 8년을 기다려 캐나다에 왔다고 했다. 영주권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결혼을 했고, 영주권이 나오자마자 부인과 상의해 먼저 캐나다에 도착했다. 기반을 만들고 아내를 부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 아내를 불러 작은 보금자리를 꾸렸다. 캐나다로의 이민은 방글라데시 국민인 그와 아내에겐 엄청난 기회였을 것이다.

방글라데시 석사학위로는 캐나다에서 마땅한 직업을 구할 수 없었다. 그에게 허락된 직업은 주유소와 식료품점 일 뿐이었다. 그는 첫 겨울을 주유소에서 일하며 버텼다. 하지만 생물학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실험실을 찾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우리 실험실에 처음 찾아온 건, 재작년 11월이었다. 방글라데시에서 왔으며, 전염병을 연구했지만 캐나다에서 박사학위에 도전하고 싶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인터뷰를 하자고 말했고, 분야를 바꿔 학위과정을 계속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는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그 후로 그는 주유소를 쉬는 시간엔 실험실에 나와 초파리로 실험하는 법을 배웠다.

그 추운 겨울, 한 달 내내 실험실에 나오던 그에게 학위과정에 지원해보라고 했다. 지원하라는 결정을 내린 날, 우린 꽤 길게 대화를 나눴다. 아마 그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에게 개인사에 대해 들은 날이다. 그는 초파리로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으며, 지난 한 달의 경험이 마치 꿈만 같다고 했다. 초파리의 교미시간 연구가 자신을 흥분시킨다고 말했고, 가르쳐만 준다면 이 분야를 열심히 연구하고 싶다고도 했다. 희망에 가득 차 있었고, 아직 대학원의 쓴 맛을 보지는 못했지만, 인생의 쓴 맛은 꽤 맛본 나이든 학생의 노련함이 좋았다. 굳이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찬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기초과학 특히 초파리 기초연구를 전공으로 삼는 것의 위험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그에게 초파리는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교수가 되고 나서 2년간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실제 통계자료와 다양한 글들을 보여주며 의생명과학 박사학위의 허망함에 대해, 의생명과학 분야의 퇴락에 대해 이야기했다. 심지어 내가 다시 학위를 한다면 절대 이 분야로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는 진지했고, 그는 절실했다. 그에게 캐나다 박사학위는 내가 보여준 현실을 모두 외면할 만큼 소중한 성배임이 틀림 없었다. 나는 그 고집을 꺽지 못했다.

그가 실험실에 들어오고, 나는 첫 박사학위생을 맞아 열심히 가르쳤다. 연구비 심사에서 계속 떨어졌고, 진행하던 연구도 지지부진이었지만, 연구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있었고, 그는 정말 잘 따라주었다. 영어가 조금 서툴렀지만, 평균적인 한국 대학원생의 영어보다 나은 수준이었고, 세심하게 가르쳐주면 정확히 배우는 편이었다. 아주 뛰어난 박사과정생은 아니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실험실의 학생으로는 훌륭했다. 들어온 지 석달 만에 논문심사 위원회를 상대로 연구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그는 최고의 칭찬을 들었다. 입실하기 전까지 자신이 실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샘은, 어느 순간 자신감에 넘치는 멋진 과학도가 되어 나왔다.

그는 많은 학부생을 열심으로 가르쳤고, 주말에도 나와 열심히 일했다. 굳이 묻지 않았지만 실험실의 다른 연구원으로부터 그의 아내가 캐나다에 도착했다 들었고, 아내의 정착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도 실험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에 고마웠다. 때론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렀고, 한 두 달 했던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게 된 적이 있었지만, 그건 샘 혼자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이제 막 초파리 실험실에 들어온 학생을 좀 더 세심하게 돌보지 못한 교수의 잘못이 더 컸다. 굳이 변명하자면, 계속되는 연구비 수주 실패와, 이로부터 과중 되는 연구계획서 작성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업무가 과해져, 학생을 세심하게 살필 수 없었다. 거의 매일 밤 10시까지 오피스에서 일해야 했고, 직접 실험을 하던 때가 그리워질 만큼,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차마 먹지 못했다. 억지로 그 긴 싸움을 이겨내려 하고 있었다.

교수직을 내려놓고, 몇 년 안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건 그 시기다. 지난 봄, 오래도록 준비했던 연구계획서가 단지 초파리 연구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을 때, 막다른 길목에서 벽을 기어오르려 애쓰던 자신을 발견했다. 실은 오던 길을 다시 마주하고, 그 길을 거슬러 당당히 싸우며 탈출했어야 했는데, 얼마나 높을지 가늠도 안되는 벽을 기어오르려 하고 있었던 셈이다. 의생명과학 분야는 기초학문을 멸시하며 발전 중이었고, 연구비는 점점 더 상업적 응용에 주어지고 있었다. 암, 줄기세포, 치매, 맞춤의학,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로 치장된 연구계획서에 비하면, 초파리 교미시간 연구는 인류의 건강과 질병퇴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 없는 연구로 보일 만도 했다. 그래서 이 시스템 밖으로 뛰쳐나가기로 했다, 시스템을 바꾸기엔 이미 늦었고, 내 연구주제도 살리면서 과학을 살릴 수 있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희망이 보였고, 가족과도 상의했다. 교수로 성공하면 해볼 생각이었던 타운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그 모든 결정의 과정을 샘과 또 다른 석사학위생 그리고 연구원 모두와 공유했다. 그들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만이, 적어도 교수직에 있는 동안의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구원이 떠나고 샘이 실험실의 최고참이 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여러 선택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가장 좋은 건 실험실이 연구비를 받아 그가 무사히, 그리고 일찍 박사학위를 받는 거였다. 하지만 이 선택지는 그다지 실현가능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은 그가 실험실을 옮기는 거였다. 최대한 빨리 옮기는 것이 그에게도 더 빨리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다른 한가지는 그가 프로젝트를 계속하며 나중에 타운랩에 합류하는 것이었다. 이 경우, 그의 박사학위는 보장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경제적 환경을 갖게 될 터였다. 이런 선택지를 두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주전, 다시 지원한 연구비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정말 결정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는 타운랩이라는 불확실한 모험보다 학위를 원한다고 결정한 후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그가 우리 실험실에서 보낸 1년을 보상할 만큼, 좋은 선택지를 찾아야 했다. 그가 진지하게 대학원 문제를 문의한 날, 격렬하게 토론을 했고 그 날 대학원장에게 편지를 썼다. 며칠 뒤 대학원장을 함께 만났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을 들은 대학원장은 샘과 나를 모두 위로했다. 그리고 샘에게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샘의 입장에서 사태를 해결해 주겠노라 공언했다. 당연한 일이다. 교수와 대학원생이 권력관계가 된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학교는 당연히 학생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우리 실험실에서 석사학위를 따는 방안이 추가되었다.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석사학위를 따면, 그에겐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장도 그 방법을 추천하긴 했다.

하지만 샘의 입장에선 모든 선택지가 불안해 보였을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는 자신의 아내와 가족과 함께 여러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다. 그리고 이번주에 그는 다른 실험실로 옮겨가기로 결심했다. 나와 대학원장에게 이메일로 통보했고, 대학원장은 곧 대학원생을 찾는 모든 교수에게 그의 이력서를 보냈다. 내심 하던 프로젝트를 끝내고, 석사학위를 받은 후에, 다른 실험실로 옮겨가게 되면, 논문이라도 한 편 갖게 될 가능성도 있고, 이후 경력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결심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몇몇 교수들이 전화나 이메일로 그에 대해 물었고, 그가 실험실에서 해온 일들에 대해 소상히 말해주었다. 이제 그는 최적의 실험실을 골라 옮겨가게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과정을 최선을 다해 돕는 것뿐이다.

인생은 불확실한 여정이다. 첫 박사학위생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은 없다. 그 과정을 글로 쓰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해본 적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캐다나 시스템이 모두 한국보다 나은 것도 아니고, 나의 사례가 다른 교수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다만, 교수와 학생 사이에 원하지 않는 갈등이 생기면, 언제나 학생이 손해를 보고, 언론이 동원되어야만 문제가 해결되거나 혹은 교수에겐 솜방망이 처벌만 내려지는 그런 대학원의 지옥 같은 현실에, 이 사례가 조금은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샘과의 관계가 좋기만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은 권력 관계로 엮여서는 안된다. 그 둘은 실험실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그런 생각은 낯설다.

샘이 훌륭한 연구자로 졸업하길 바라지만, 그에게 펼쳐질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겪은 여정보다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미래에 대해 자주, 자세히 말해주어 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벽에 가로막혔다는 느낌이 오기 훨씬 전에, 남들보다 더 빨리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노력은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에겐 누구도 그런 현실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실상 이 모든 시시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대화다. 교수가 권위만 찾으며, 학생에게 명령하고 보고만 원할 뿐인 대학원에서,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은 없다. 그 시시한 권위를 없애는 방법은, 대학이 교수와 학생을 동등하게 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뿐이다. 물론 시간강사법까지 우회하려는 한국 대학에 그런 기대를 해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그가 실험실을 떠나기 전 확인하려 했던 마지막 실험결과가 나왔다. 그게 오늘이었다. 지난 두 달을 오염으로 날려버렸던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함께 한달 전 디자인했던 실험이다. 예상했던 데로 성공적인 결과였다. 우리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계속될 수 없다. 멋진 프로젝트가 될 테지만, 연구할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인생은 그렇게 멋지고 또 슬프며, 대체로 시시한 여정이다.

 

김우재

 김우재 – 급진적 생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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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3
회원작성글 Rivas  (2019-02-11 18:03)
본인의 문제와 본인이 지적하는 문제가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 참 아이러니
회원작성글 chayou  (2019-02-12 01:24)
대학원생을 내보내면서 설마 자화자찬하는건 아니죠? 비추천 박고 갑니다.
회원작성글 호두맘  (2019-02-12 17:39)
시모어 벤저를 동경하고, 언급하신대로 '미래가 없는' 초파리로 학위를 마치고, 생존하기 위해 '상업적 응용' 분야로 진입했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런 흔한 비정규직 연구자로서 댓글 달아봅니다. 개인적으로 분야를 바꾸서라도 영주권을 얻으려는 대학생의 절실함과 기초 과학(초파리) 조교수로 겪는 펀딩의 어려움 양쪽에 대해서 모두 공감합니다. 일단 윗 댓글처럼 독자들에게 호의적으로만 보이지 않을 글을 올려주신 점은 감사합니다. 거듭 펀드에 실패로 초조해질 수록 사실 대학원생도 느끼겠죠. 예전 만큼 지도받을 시간도 줄어들고, 실수로 인해서 좌절감도 들었을 것이고, 막상 지도 교수조차 이직을 고려해보는 상황에서 본인에게도 이제 다른 선택지가 열리게 되었다면 그 선택이 꼭 지도교수를 기대와 동일한 방향이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책임지어 줄 수 없는 만큼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는 각자의 인생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겁니다. 테뉴어를 받고 퇴직하는 게 교수직을 시작한 커리어의 유일한 행복이 아니고, 대학원을 시작한 기혼 유학생이 처음 연구실에서 학위를 받지 못한 것도 실패는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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