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과학자들이 기후변화와 환경문제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지금, "달에서 바라본 지구"라는 기념비적 사진이 촉발한 지구에 대한 영감과 청지기(stewardship)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망된다.

Taken 50 years ago, this famous photograph still inspires.
달(Moon)의 황량한 땅덩어리 위에 펼쳐진 하늘에 떠있는 '푸른별 지구' 사진을 들여다보며, 인간의 단 하나밖에 없는 고향의 애틋한 모습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황량한 달의 충돌구(crater)를 눈여겨보려면 디테일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그 충돌구는 이제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앤더스의 지구돋이(Anders’ Earthrise)」라고 말이다.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산하 행성계 학명 소위원회(Working Group for Planetary System Nomenclature)는 아폴로 8호의 달궤도 진입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사진에 나타난 「앤더스의 지구돋이」와 인근의 또 다른 충돌구 「8호의 귀환(8 Homeward)」의 명명을 승인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주선에서 촬영된 「달의 표면 위로 떠오르는 지구(Earth rising over the lunar surface)」라는 제목의 유명한 사진을 기념한 것이다. 1968년 12월 24일 우주비행사 윌리엄 앤더스에 의해 촬영된 지구돋이는 종종 - 인류사까지는 아닐지라도 -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사진' 중 하나라고 불린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사진이 유명해진 것은 한 구석에 포착된 '동그랗게 움푹 들어간 곳(circular dent)' 때문이 아니다. 그 대신, 그 사진은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보다 5년 앞서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살충제가 자연계에 미친 악영향을 조명한 책)을 읽은 사람들이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구돋이 사진이 지구의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관심을 집중시켰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사진 때문에, 사람들은 사상 최초로 "무한한 공간의 새까만 공허함 속에 놓여있는 지구"를 바라보며, '우주에서의 완전한 무의미함'과 '총천연색 아름다움'을 동시에 감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동시대인 전부가 갑자기 지구를 '고립되고 취약하고 대체 불가능한 행성'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념비적 사진이 출판되면서, 후세대들도 이런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그것은 1990년 발렌타인데이 때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60억 킬로미터 밖에서 촬영해 전송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이름의 지구 사진이다.
우주공간에서 바라본 지구의 경관은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똑같다. (단, 올해 초 GOES-16 위성에서 보낸 깜짝 놀랄 만한 사진을 보면, 엄청나게 디테일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구 사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2018년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50년 전 아폴로 8호 우주비행사들이 귀환할 때보다 더 훌륭하고 번영된 세상을 목도하고 있다. 과학과 의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류의 진보는 평균적인 생활수준·건강·수명의 향상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지구 자체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헐떡이고 있다. 불과 두 달 전,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에 대해 가장 긴급한 경고를 발령했다. 그 내용인즉, 기온이 1.5 °C(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불가피하다고 동의하는 수치)만 상승해도 엄청난 가뭄과 홍수가 일어날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높다. 전세계 정치가들은 지난주 폴란드에 모여, (기후변화를 저지하기 위한 최후·최선의 희망이 될지도 모르는) 글로벌 기후협약에 대한 후속조치들을 논의했다. 그 협상은, 우리가 대기권에 내뿜고 있는 온실가스의 양을 충분히 저감하는 데 역부족일 가능성이 높다.
인상 깊은 지구돋이 사진은 지구가 위험에 처해있음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가 아직 달성할 게 있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즉, 우주의 엄청난 규모와 지구가 당면한 문제를 감안할 때, 우리가 수동적인 관찰자(passive observer)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행동할 수 있으며, 뭔가를 해낼 수 있다.
솔로몬의 명판결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 프랭크 보먼, 짐 러벨, 윌리엄 앤더스는 아폴로 8호를 타고 달 궤도에 진입함으로써, 자신들의 고향 지구를 시야에서 놓친 사상 최초의 인간들이 되었다.
45억 년 전 형성된 이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처녀 달표면’의 테두리 안에서, 대기가스로 더럽혀지지 않은 10억 개 천체들이 희미하게 빛나는 암흑 속을 바라보며, 보먼은 ‘지구 없는 우주’를 이렇게 묘사했다. “광대하고 외롭고 으스스한 무無의 창공이여.” 아홉 번째 바퀴를 돌 때 실시한 TV 생방송에서, 승무원들은 25만 마일(약 40만 킬로미터) 떨어진 지구를 향해 구약성서 창세기를 읽기로 했다.
[우리는 모든 지구인들을 위해, 지구돋이 장면을 향해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이 여러분에게 보내드릴 메시지가 있습니다: 태초에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黑暗이 깊음 위에 있었다.]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이 성서를 읽은 행위는 논란을 일으켜, 미 헌법 1차 개정을 위반한 혐의로 제소되었다. 미 연방정부는 종교 선전이 금지되어 있고, 항공우주국NASA은 연방정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는 소송을 기각했는데, 그 이유가 걸작이었다. 달 궤도는 미 법원의 관할구역이 아니라나 뭐라나. 솔로몬의 명판결이었다.
구약성서 창세기는 신화이지만, 나는 그 방송을 늘 감명 깊게 생각해왔다. 그건 영국 문학사상 최고의 산문이 수록된 킹 제임스 버전을 읽어서가 아니라, 자신과 고향(지구)의 기원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오랜 욕망에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으스스한 창공의 한복판에서, 지구가 살아있는 오아시스로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담청색의 기형적인 세상’이 생명의 고향이 된 건 뭐가 특별해서였을까?
※ 출처: 브라이언 콕스, 『경이로운 생명』,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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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Nature 564, 301 (2018)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77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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