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이성 혐오는 최근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남자와 여자가 편을 나눠 싸우는 인터넷 기사 댓글을 봤다. 여혐, 남혐 등의 단어가 난무했다. 왜 우리 사회에는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걸까? 쓸쓸한 기분이 들게 하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맘충, 급식충, 한남충, 뜰딱충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이는 거의 없다. 21세기 과학기술도 아직 엄두를 못 내는 생물의 종을 바꾸는 일, 호모 사피엔스가 혐오의 대상 벌레가 되는 일이 위대한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나 손쉽게 일어난다.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차츰 넓혀가고 있는 혐오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지금부터 생물학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혐오를 뜻하는 영어 단어 disgust는 '맛보다'는 뜻의 라틴어 gustus에 부정형 접두어 de가 더해진 형태에서 파생됐다. 즉, 역사적 맥락에서 단어 '혐오'는 맛없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뜻한다. 놀랍게도 이는 혐오의 뇌과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한 연구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혐오를 느끼는 이들이 비슷한 표정의 발현(facial expression)을 보인다는 사실은 감정을 연구한 여러 논문에서 밝혀진 바 있었다
1). 15년 전 프랑스 연구팀은 이런 혐오 표정을 보이는 이들의 뇌 활성화 패턴이 맛없는 음식을 먹은 이들의 뇌와 매우 유사함을 발견했다
2). 이는 공통된 뇌의 활동을 보이는 두 행위가 사실은 같은 생리학적 작용임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뇌라는 복잡계 시스템 안에는 혐오 표정의 발현과 맛없는 음식에 대한 반응을 통합적으로 통제하는 하나의 단위 -정확히는 모듈- 가 존재한다. 이 단위가 우리 뇌에서 맡는 역할이 바로 혐오를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혐오는 생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기본적 감정으로 정의된다.
[그림 2] 혐오 감정의 발현은 그 특징적인 표정을 통해 알 수 있다. (출처: Wikipedia Commons)
어떻게 혐오가 발현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이제 관심을 '왜?'라는 질문으로 옮겨보자. 생물의 몸에 쓸모없는 건 없다. 우리 뇌가 일부를 할애해 혐오를 느끼게 하는 것은 분명히 이 감정이 특별한 생물학적 기능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능은 감염과 질병에 대한 회피로 추정된다
3). 상한 음식이나 병을 옮기는 벌레는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위험요소다. 이들을 역겹게 느끼는 이유는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한 본능적인 회피 때문일 것이다. 인종, 성별, 나이 등을 고려한 여러 실험에서 질병과 관련되는 장면이 혐오감정을 유도하는 주된 원인임이 확인됐다
3)4). 혐오는 위험을 미리 막기 위한 일종의 행동 면역 시스템인 셈이다. 물론 이 설명이 모든 사회적 혐오를 포함하는 건 아니다. 일베충을 싫어하는 이유가 그들이 전염병을 일으키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흔히 느끼는 혐오는 생물학적 본능에 사회문화적 영향이 더해진 복합적 감정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혐오가 어떻게, 왜 발현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배경을 소개했으나, 이 내용을 확실한 사실이라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혐오에 관한 대부분 연구의 모델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너무 복잡하다. 자연은 예측할 수 없지만, 사람은 예측을 속인다. 그래서 사람이 대상인 연구와 실험은 가설에 대한 엄밀한 검증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연구들도 마찬가지다. 혐오감정의 생리학적 과정과 진화적 이유 간 연결고리를 찾아냈지만, 정작 혐오가 실제로 진화적 이익을 가져다주는지는 검증하지 않았다. 혐오를 느끼는 생물과 그렇지 않은 생물 중 전자의 진화적 이익이 존재하는지, 그 이익이 질병 회피와 관계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므로 '혐오는 질병 회피를 위한 진화적 적응'이라는 설명은 매우 가능성 큰 가설에 불과할 뿐 검증된 이론은 아니다. 또한, 우리는 혐오를 담당하는 뇌의 부위가 어딘지는 알지만, 이 감정이 생성되는 정확한 분자생물학적 과정은 모른다. 공포, 불안과 구분되는 혐오만의 생리학적 메커니즘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아직 혐오는 더 연구될 내용이 많은 미지의 감정이다.
혐오가 공포, 불안과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있으며, 이 글의 핵심이기도 하다. 혐오를 전담하는 뇌의 부위는 공포, 불안과도 연관이 있다. 혐오와 마찬가지로 공포, 불안 역시 생명의 위협에 대한 경고와 회피의 기능을 가진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모든 생물학적 연구는 혐오가 넓은 의미에서 공포, 불안과 함께 '나에게 위협되는 대상을 무서워하는 감정'에 해당함을 설명한다.
[그림 3]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혐오 감정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진지충이라는 단어는 농담이 오가는 재미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진지한 행동을 해 분위기를 깨는 사람들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진지충을 혐오하는 자들은 같이 있으면 너무 답답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감정의 기저에는 자신이 즐기는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다른 이를 향한 거부감이 숨어있다. 즉, 혐오는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생물학적으로는 이를 낯선 이가 생명에 위협이 될지도 몰라 경계, 회피하는 반응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생태계에서와는 달리, 사회적 혐오에는 회피뿐만 아니라 상대를 향한 비난과 공격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혐오하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행동은 혐오 대상과의 다툼을 최대한 피하는 자연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다
5). 바로 여기서 혐오가 ‘무서워하는 감정’이며, 사회적 혐오의 무서움이 자연에서와는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사회적 혐오는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무서움을 느끼는 사람이 보이는 일종의 네거티브 전략이다. 이런 이들은 상대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며 자신이 혐오 대상보다 우월함을 증명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현대 사회의 혐오는 사회적 불안감과 부족한 자신감의 결과다. 진정한 강자는 누군가를 혐오하지 않는다. 사자가 밀림의 왕인 이유는 싸움을 제일 잘 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적 사이에서도 낮잠을 잘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행동은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것이 무서운 겁쟁이의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상대를 인정하며, 함부로 미워하고 혐오하지 않는 것. 내일은 겁쟁이가 아닌 더욱 성숙해진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참고 문헌]
1) Ursula Hess, Sylvie Blairy. “Facial mimicry and emotional contagion to dynamic emotional facial expressions and their influence on decoding accuracy”,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physiology (2001)
2) Bruno Wicker et al. “The Common Neural Basis of Seeing and Feeling Disgust”, Neuron(2003)
3) Oaten M, Steven R.J, Case T.I, “Disgust as a Disease-Avoidance Mechnism”, Psychological Bulletin (2009)
4) Valerie C, Micheal D.B, Robert A, “Disgust as an adaptive system for disease avoidance behaviour”,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 B: Biological Sciences(2011)
5) Pond R.S, et al. “Repulsed by violence: Disgust sensitivity buffers trait, behavioral, and daily aggres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