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생태에세이] 멸종위기 고라니는 왜 유해동물이 되었나
Bio통신원(이탈)
최근 지역의 한 청소년 영화제에 갔다가 고라니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남한산성이 품은 유해동물(?)>이라는 작품이었다. 들개에 물려 피 흘리는 고라니가 생태대안학교에 찾아왔다. 학생들은 죽어가는 고라니가 안쓰러워 119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고라니가 유해동물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고라니한테 응급처방을 해보았다. 허나 고라니는 끝내 죽고 말았다. 죽어가는 생명을 지켜보는 학생들의 눈시울이 촉촉했다. 고라니가 유해동물이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개체수가 많다 ▲ 주변 작물을 해친다 ▲ 교통사고 가해동물이다. 특히 고라니는 우리나라 사슴과 동물 중에서 개체수가 가장 많고, 이 때문에 포획 수와 로드킬 사고 수가 가장 많은 동물이라는 3고(高) 현상을 겪고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포획된 고라니는 11만 3,800마리다. 고라니는 멧돼지와는 달리 식용이 되지 않아 매립되고 있다.
종종 도로를 다니다보면 고라니 주검을 발견한다. 어느 날 출근길에 다 큰 고라니 시체가 중앙분리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으깨질 때로 으깨진 사체는 도로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사체는 두 번, 세 번 계속 해서 자동차 바퀴에 깔렸고 운전자들은 하나같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살아서도, 죽어가는 동안에도, 죽어서도 고라니는 인간에게 반가운 존재가 아니다. 이로 인해 고라니를 포획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 멸종위기(VU, Vulnerable) 수준에 등재된 동물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부 지역에서만 흔하지 나머지 국가에 존재하지 않는 희귀종이다.
세계적으로 멸종위기 종인 고라니는 한국에선 유해동물고 간주되고 있다. 고라니는 죽어서도 도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육식동물의 사냥 VS 고라니의 서식지 파괴
고라니는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1527년)에 한글로 기록이 남았을 정도로 오래 전부터 존재가 드러났다. ‘고라니’는 털빛이 누런색을 띤다고 하는 몽골어 ‘고라말’에서 유래했다. ‘고라’는 노란색을 의미한다. 고라니는 영어로 ‘water deer’라고 할 만큼 물을 좋아한다. 고라니 이외에 노루, 사향노루, 꽃사슴, 붉은사슴도 우리나라에 살았다. 그런데 멸종위기 고라니는 왜 유해동물이 되었을까?
하지만 모피와 고기, 녹용 등을 얻으려는 인간의 밀렵으로 꽃사슴과 붉은사슴은 멸종했다. 사향노루는 개체 수를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해졌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은 사슴류는 노루와 고라니가 대부분이며 이중 고라니는 50만~60만 마리가 국내에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고라니는 위턱에 긴 엄니가 있고 털빛은 누렇다. 노루와 생김새가 비슷하긴 하지만 높은 산지에 사는 노루와 달리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겹치는 시골 농지나 강변에 산다.
고라니와 같은 사슴과(Family)는 육식동물이 선호하는 먹잇감 중 하나다. 세계 각지의 사자, 늑대, 호랑이, 표범, 들개 등 많은 육식동물들이 사슴과를 선호한다. 그런데 사슴과를 잡아먹어야 할 이들 육식동물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 결과 먹이사슬 중간 단계의 동물 수가 늘어나 우리나라처럼 골머리를 앓는 국가가 늘고 있다. 미국만 해도 사슴이 도로 가장자리에서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정원 가까이로 다가와 식물을 먹어치워 문제가 되고 있다. 집 주인이 울타리를 설치하고, 큰 개를 마당에 두고, 개 모양 검은 허수아비를 세워두곤 하지만 사슴들은 두려움 자체를 모르는 듯 다가오고 있다.
반면 사슴을 보호하려는 노력 역시 일어나고 있다. 미국 콜로라도 주에선 노새사슴이 2005년 약 62만 마리에서 2013년에 39만 마리로 뚝 떨어졌다. 퓨마나 곰이 사슴을 많이 잡아먹은 게 이유로 제시됐다. 그래서 2016년, 노새사슴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천적인 퓨마와 곰을 죽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일각에선 인간이 노새사슴의 서식지를 파괴한 것이 개체 수 감소의 가장 중요한 이유라며 애꿎은 육식동물들에 죄를 뒤집어 씌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동물을 인위적으로 없앴다가는 오히려 또 다른 혼란이 생태계에 일어날 수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카이바브 고원의 사슴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늑대와 퓨마를 거의 박멸했다. 이로써 사슴의 개체 수는 4,000마리에서 약 10만 마리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문제는 사슴이 카이바브 고원의 식물들을 모두 먹어치웠다는 점이다. 고원은 황폐해졌고 결국 사슴들마저도 살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만약 인간이 적당한 수의 육식동물을 남겼더라면 사슴의 수도 안정돼 식물 생태계가 보존되고, 곤충과 새들이 날아다니는 땅이 되며, 침식작용도 없는 정원이 되었을 것이었다.
고라니가 유해동물이 된 흐름을 구조화 해보면 위와 같다.
농가 부근에서 로드킬 당하는 고라니
영국의 사슴들은 빙하기 이후 최대로 번성을 해 150만 마리가 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숲이 파괴되고 농작물의 피해가 늘었다. 사슴 관련 교통사고도 2012년 한 해 14,000건이 발생해 차량 운전자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 고라니들도 농민과 운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러나 고라니의 잦은 출몰이 단순히 포식동물의 부재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고라니들의 거주지에 인간이 농토를 확장하고 무분별하게 숲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부족해진 고라니들은 살기 위해 농가 부근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농가 인근으로 다가온 고라니는 우연히 도로로 뛰어들어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최소 6만 건 이상의 고라니 로드킬이 발생하며 포유동물 가운데에는 가장 많이 사고가 난다. 고라니들은 도로를 위험한 길이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늘 다니던 길이기 때문이다. 고라니는 도로를 건너다가 차량과 충돌해 죽거나 다친다. 우리나라는 땅 면적에 비해 도로가 많은 편으로 도로 길을 다 합치면 10만km가 넘는다.
고속도로의 고라니 로드킬은 2005년도 1,779건에서 2014년도 1,824건으로 꾸준히 느는 실정이다. 생태통로나 유도 울타리를 통해 지자체에서 사고를 막으려고 한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도 동물이 지나가지 않은 생태통로가 무려 71.3%나 된다.(2014년 국정감사 자료) 생태도로는 인간의 입장에서 설치가 편리한 곳에 몰려 있는 경우가 많다.
도로는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는 중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로개발 사업으로 고라니의 서식지가 파편화 하며 좁은 서식지 안에서 근친교배를 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고라니를 비롯 야생동물들은 번식기가 되면 기존 서식지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애 한다. 다른 개체군을 만나 교배하며 유전자 다양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유전자를 얻지 못하면 생물다양성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고라니의 로드킬을 줄이고 도로에서 운전자와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뭘까? 그건 바로 야생동물 보호지역에서 운전자 스스로가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시속 50km로만 달려도 15m 정도 앞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고라니를 보고 안전하게 급정거 할 수 있다. 어떤 수의사는 교통사고를 당한 고라니를 치료한 후, 걱정 끝에 고라니의 목에 위치 추적 장치를 달아보았다. 그 결과 고라니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도로 앞에 오면 망설였다. 그 고라니는 총 4회의 도로를 건너고 나서 마지막 도로만 건너면 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60일 동안 5회 동안 도로를 건너다 죽고 말았다.
고라니가 없는 야생에는 잡초만이 남는다
세계 각국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를 복원하여 생태계를 지키도록 떠미는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회색늑대를 복원해 과포화 상태인 사슴을 먹어치우게 했다. 그 결과 사슴의 먹이였던 식물과 나무 열매가 늘었고, 이를 먹고사는 까치와 곰의 개체 수도 늘어났다. 캐나다 로키산맥 북부로도 회색늑대가 복원되어 옮겨졌다. 이 회색늑대로 인해 가지뿔영양과 엘크의 수가 감소해 초원 식생이 점차 되살아났으며 개울가의 사시나무와 버드나무 군락이 회복됐다. 또한 비버들이 다시 찾아와 댐을 지으며 물고기와 새의 개체수가 덩달아 늘었다. 육식동물인 회색늑대 복원으로 훨씬 다양한 생물종이 살게 돼 국립공원 생태계가 건강해진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페어팩스 관계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슴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지역 공원으로 야생 코요테와 늑대 등을 방류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슴의 개체 수 감소를 위해 상위 포식자를 들이겠다는 방안이었다. 우리나라도 최상위 먹이사슬 종인 반달가슴곰을 복원 중이고, 토종 여우 약 50여 마리를 2020년까지 소백산 일대로 복원하려 노력 중이다.
허나 포식동물이 없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나친 개발과 개입을 하기 때문에 사안이 심각해진다. 인간이 야산과 들판, 갈대밭을 파헤쳐 길을 만들고 건물을 세워 사슴들의 공간을 없앴다.
고라니는 부족한 서식지와 먹이를 찾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인간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고라니의 생존과 농가의 생산성 사이에서 공존의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고라니가 멸종한다면 생태계의 어떤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