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1,600km.’ 이 날짜와 거리는 범고래가 죽은 새끼를 애도한 기간과 거리였다. 최근 라이브사이언스는 한 어미 돌고래의 가슴 찢어지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탈레쿠아(Tahlequah) 또는 ‘J35’라는 이름의 어미 범고래는 죽은 새끼를 오랜 기간 동안 워싱턴 주 북서부의 퓨젓사운드 주변에서 데리고 다녔다.
7월 24일 막 태어난 아기 범고래는 겨우 30분 만에 죽었다. 죽은 새끼는 이 개체군 내에서 3년 만에 태어난 귀한 몸이었다. 이후 죽은 새끼를 애도하던 어미 범고래는 8월 11일이 되어 홀몸으로 나타났다. 자발적으로 새끼 시체 운반하기를 중단했는지 아니면 상태가 악화되어 시체가 떨어져 나간 건지는 확실치 않다.
푸에르토리코의 도시 산 후안(San Juan)에 사는 거주민은 새끼가 죽고 몇 시간 안 돼 탈레쿠아의 독특한 애도 장면을 보았다고 전했다. 탈레쿠아와 다른 6마리 암컷 범고래가 빽빽한 원형의 협곡 입구로 모여들었고, 빛이 희미해짐에 따라 의식을 하듯 달빛이 쏟아지는 수면 중심으로 계속 움직였다는 것이다. 거주민에 따르면, 빛이 너무도 희미해 죽은 새끼가 여전히 물 위에 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특별함과 슬픔이 느껴졌다고 했다.
어미 범고래는 애도가 끝난 뒤 다시 무리에 섞여 생활로 돌아왔다. 다시금 연어를 찾아다녔고, 영양실조로 인해 머리뼈가 보이던 ‘땅콩 머리(peanut head)’ 현상도 사라졌다. 그러나 새끼를 잃었던 범고래의 슬픔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마치 사산한 새끼 곁을 며칠 동안 지키며 머리와 귀를 늘어뜨린 채 조용히 움직이는 어미 코끼리처럼, 어미가 죽자 무리에서 벗어나 먹기를 중단한 채 절망으로 죽어버린 아기 원숭이처럼, 자기 새끼가 포식자에 먹히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어미 아프리카 영양이 가죽과 뼈로 남은 새끼를 밤새 응시하며 꼼짝도 않았던 것처럼, 탈레쿠아는 충분히 죽음을 애도하고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범고래는 몸길이 6~10m, 무게는 3~10톤에 이르는 소위 ‘바다의 늑대’다. 돌고래 가운데 가장 큰 돌고래이기도 하거니와 새를 낚아채고, 물범, 바다사자 심지어 고래와 같은 해양포유류도 공격한다. 때문에 ‘죽은 자의 왕국에 속한 자’라는 오르쿠스(orcus)에 따라 오르카(Orca)라 불린다.
거대한 물고기처럼 보이는 이들은 생선이 아니고 포유류다. 물범, 바다사자, 북극곰과 같이 해양포유류에 속한다.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폐로 숨을 쉬고 새끼를 낳는다는 이유로 고래와 돌고래를 육상동물과 비슷하다고 묘사했다. 로마 시대 철학자들도 고래가 새끼를 다루는 방식을 관찰하고서 어류와 다르게 보았다.
1735년, 스웨덴의 분류학자 칼 본 린네는 고래가 2심방 2심실의 심장을 지녔고, 귓구멍과 분비샘을 가졌으며, 눈꺼풀을 닫을 수 있다는 이유로 물고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랑스 동물학자 조지 퀴비에(Georges Cuvier)는 고래가 포유류라는 사실을 확정지었다.
고래는 상어의 친척이 아니라 하마, 양, 소 낙타 등의 육상 유제류와 더 가깝다는 주장이 난무함에도 유럽인들은 오랫동안 고래를 미지의 존재이거나 괴물로 여겼다. 피노키오를 삼킨 고래, 구약성경에서 요나를 삼킨 괴물 등에서 고래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을 볼 수 있다. 고래가 그림자 속에 숨은 채 물안개와 물기둥으로 바다를 한층 으슥하게 만든다는 게 이유였다.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인 '딥워터 호라이즌' 사건 때도 죽은 새끼를 밀고 다니는 범고래의 모습이 목격됐다.
사진 = <라이브사이언스>
기름 유출로 고통 받은 고래들
죽은 새끼를 데리고 다니며 애도하는 모습은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건 때도 목격됐다. 2010년 4월 20일, 약 3개월 동안 약 490만 배럴의 기름이 멕시코 만으로 유출된 재앙의 해상사고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 수많은 큰돌고래들이 그들의 죽은 새끼를 밀고 다니며 애도했다.
과학자들은 2011년 여름 동안 바라타리아 만(멕시코 만의 미국 남동부 루이지애나에 있는 만. 가로 19km, 세로 24km) 돌고래 32마리의 상태를 포괄적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기름은 큰돌고래들의 몸으로 들어가 체중 감소, 빈혈, 저혈당, 폐질환, 간질환을 일으켰고, 스트레스, 신진대사, 면역 기능에 반응하는 호르몬의 수준을 비정상적으로 낮췄다.
사건이 일어난 바라타리아 만에서 임신한 큰돌고래 중 겨우 20%만이 성공적으로 새끼를 출산했는데, 83%의 성공률을 지닌 다른 돌고래 개체군 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사고가 나고 5년이 지난 2015년에도 바라타리아 만 돌고래는 겨우 86.8%만이 매년 생존했다. 관련 연구들은 <퍼블릭 라이브러리 오브 사이언스>와 <영국왕립학술원 생물과학 B>등에 실렸다.
고래는 바다생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바다 재해의 영향을 받는다. 기름 유출은 폐로 호흡하는 고래에 폐질환을 야기하고 호르몬 교란으로 임신에 해를 준다. 그래서인지 바라타리아 만의 임신 가능한 돌고래 10마리를 47개월 동안 모니터링한 결과, 대략 60%의 낮은 임신 성공률을 나타냈다. 과거 1989년, 알라스카의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기름이 엑존 발데즈(Exxon Valdez)에서 유출됐을 때 해달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땅콩처럼 머리 뒷부분이 움푹 들어간 머리 모양을 한 새끼 범고래.
사진 = <라이브사이언스>
체내 지방을 만들지 못하는 범고래
무엇보다 과학자들은 탈레쿠아의 새끼 범고래 죽음에 대해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해양대기관리처에 따르면, 남쪽 거주형(주로 연안의 일정 지역에서 활동한다.) 제이(J), 케이(K), 엘(L) 무리 범고래들의 어떠한 새끼들도 3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 결과 이 개체군은 2006년 멸종 위기 목록에 올라 주목받는 종이 되었다. 1995년대만 해도 남부 거주형 범고래 개체군은 98마리였으나, 오늘날 수가 늘어나기는커녕 총 75마리(J 무리 23마리, K 무리 18마리, L 무리 34마리)로 감소했다.
탈레쿠아(J35)가 있는 J 무리(밴쿠버, 캐나다, 워싱턴 북부 주변에서 연어를 먹으며 여름을 보낸다.)에는 2014년 12월에 태어난 독특한 4살짜리 범고래 스칼렛(J50)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범고래는 오랫동안 먹지를 못하고 있다. 잘 먹지 못해 지방층이 부족해 먼 거리를 이동할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이다.
과학자들은 주요 식량 자원인 치누크 연어(Oncorhynchus tshawytscha)가 감소한 것을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스칼렛에게 직접 연어를 제공해 생존하게끔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근본적인 도움은 못 된다.
2008년과 2014년 사이 남부 거주형 범고래들 중 약 70%가 임신에 실패했다. 이들 실패의 약 3분의 1은 임신 후기나 출산 직후에 태아가 사망하는 경우였다. 과학자들은 임신 실패의 일차적 영향으로 치누크 연어에 대한 낮은 이용가능성을 꼽았다. 다른 한편으로 고래들을 두렵게 하는 건, 바다가 더 이상 새끼들이 살기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스트레스일 것이었다. 이는 과거부터 고래들에게 전해져온 암묵적인 스트레스이기도 했다.
고래들한테 각인된 포경과 새끼의 죽음
고래는 원래 바다 속에서 소리로 사방을 본다. 무수한 크릴 떼의 미묘한 소리, 다른 고래와의 소통, 연어 떼의 이동 소리 등. 그러나 소리를 가로막는 장애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선박 통행과 석유 및 가스의 탐사, 여객선의 소음은 고래의 눈을 가려 바다 속 세상을 축소시켰다. 이에 따라, 고래들은 쉽사리 먹이를 찾아 나서지 못하게 됐다.
과거에도 고래를 두렵게 하는 선박의 소리가 있었다. 바로 유령과 같은 포경선들이다. 포경이 한창이던 당시 인간들은 고래들의 공포를 이용해 몸을 굳게 만들어 사냥을 했다. 어미와 자식의 유대가 강한 고래의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포경선은 주로 어미가 새끼를 양육하는 무리로 사냥을 집중했다.
16세기 중반 바스크족은 고래 새끼에 작살을 꽂아 고통스럽게 했다. 그러고 나서 새끼 주위를 도는 어미를 향해 두 번째 작살을 던졌다. 유럽인들이 한 때 아프리카 코끼리를 잡기 위해 수많은 아기 코끼리로 어른들을 유인한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1907년 한 보고서에 남극의 포경이 묘사됐는데, 고래 무리의 새끼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새끼가 작살에 맞아 쓰러지면 어미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슬프고 원망스런 눈망울을 보였다. 혹등고래, 참고래, 긴수염고래, 북극고래 등은 몸을 바쳐 새끼를 보호했다. 쇠고래와 귀신고래는 작살에 맞은 새끼를 구하려 포경 보트를 공격했다.
고래 개체들이 오랫동안 겪은 트라우마는 집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붕괴시켰다. 그 당시 인간의 포경 활동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끼 낳기를 포기하거나, 미루거나, 사산한 고래들이 많았을 것이다. 고래를 소재로 하는 영화와 문학작품을 보더라도 거의가 포경이 주제일 정도며, 고래들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은 손에 꼽힌다. 포경 활동이 줄어든 오늘날, 많은 고래들은 고래 관찰 투어, 워터파크, 돌고래 쇼 등에서 주인공으로 살고 있다.
영화 <프리 윌리>(사이먼 윈서 감독, 1993)에선 범고래가 주인공인 12살 소년과 친구가 되어 애정을 나누고 유대감을 쌓아가는 모습이 묘사된다. 기쁨을 아는 만큼 돌고래는 슬픔도 느낀다. 만약 주인공 소년이 죽었을 경우 이 돌고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고래만큼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 동물은 없다. 고래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거대한 규모에서 살아간다. 북서태평양 밴쿠버 섬의 어떤 부족민들은 범고래를 ‘바다를 지배하는 제왕’이라고 묘사했다. 범고래는 사회적 밀착이 강하기에 홀로 새끼를 낳고 키울 경우 어리고 미숙한 어미가 되어 되레 스트레스를 받으며 태아와 아기에게 위험하다.
고래를 위협하는 수많은 요인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새끼를 애도하는 어미 범고래의 모습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느껴야 할까.
참고 문헌 및 사이트
6. 『거인을 바라보다』(엘린 켈지, 양철북, 2011)
7. 『고래의 노래』(남종영, 궁리, 2011)
8. 『동물에게 귀 기울이기』(마크 베코프, 아이필드,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