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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9] '어쩌다 창업'을 장려하자
Bio통신원(조성환)
지난 칼럼에서 한국 정부의 실험실 창업 지원 정책의 비효율성을 거론하면서, 기술 기반의 스타트업, 즉 실험실 창업 스타트업들은 초기 시드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언급했었다1. 그래서 미국은 SBIR 이라는 정책을 통해 연구 성과가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고 있으며, 한국 정부도 실험실 창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장려하기 위해 실험실 창업 지원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실험실 창업 지원 정책이 성공하려면, 한국의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의 이공계 실험실의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이 소속기관에서 열심히 연구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과감하게 뛰어들어야 한다. 정부의 시드머니 지원과 같은 정책은 말 그대로 ‘지원’일 뿐이고 실제로 창업을 하여 실험실 안에 있는 기술로 시장에서 가치를 창조하고 기업을 성장시키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은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구성원들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인력들이 학계에 남거나 대기업 혹은 정부 출연 연구소에 취직하는 것에 비해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불확실성도 크며 사회적인 시선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실험실 창업을 장려하고자 한다면, 사업화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뛰어들어 스타트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열심히 실험하고 연구하다가, 말 그대로 우연한 기회에 ‘어쩌다가’ 창업하는 ‘어쩌다 창업자’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The Lean Startup의 저자인 Eric Ries는 얼마 전 출간한 두번째 저서 ‘The Startup Way’ 에서 누구나 창업자가 될 수 있으며 어디서든 혁신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2인 Y Combinator와 TechStar가 운영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의 지원 요건을 대폭으로 낮춤으로써 소위 ‘스펙’이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스타트업 생태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 덕분에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스테레오 타입은 아니지만 재능있는 인력들이 (unexpected talent) 우연한 계기에 스타트업 생태계 (startup ecosystem)에 유입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것이 저 두 프로그램의 성공 요인이자,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이라고 주장한다.3
이와는 반대로, 한국 정부의 창업 정책들은 창업자의 나이나 매출 혹은 특정 대학 출신이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을 지원 자격에 두고 있다. 만 39세 이하 소위 ‘청년’ 창업자일 것, 혹은 매출 얼마 이상의 기업일 것, 몇몇 ‘명문’ 대학의 석사 이상 재학생 대상일 것 과 같은 지원자격들은 안타깝게도 ‘어쩌다 창업자’들이 나오기 힘들게 만든다. 보다 많은 선수들이 뛰어들어 스타트업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비 본질적이고 차별적인’ 요소들이 이렇게 군데 군데 박혀있다. 더 많은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하도록 장려해야 할 정부 정책이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실험실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혁신(Innovation)은 생물학적 나이 만 ‘39세’이하의 소위 ‘청년’ 들에게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특정 ‘명문’ 대학 출신들이나, 박사와 같이 공부를 오래 한 사람들만이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도 편견이자, 나이와 학벌에 따른 명백한 차별임과 동시에 혁신을 저해하는 지원 자격들일 뿐이다. 혁신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누구에게서나 어디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어쩌다 창업가’들이 점점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전국 실험실의 돌연변이들이 이 곳 저 곳에서 툭 하고 튀어나와 동등한 기회에서 도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밀한 계산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엄격한 실험 과정으로 그 가설을 검증해야 하는 과학 기술 분야에서의 위대한 발견에서도 따지고 보면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어쩌다 창업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 혁신의 풀은 더 깊어지고 넓어지며 그 생명력도 길어진다.
‘어쩌다 창업자’들의 성공 혹은 의미 있는 실패는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자신감을 가져다 주어 더 많은 이들이 비슷한 시도 하게끔 유도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저 먼 나라에 있는 누군가의 창업스토리는 와 닿지 않지만, 함께 수업을 들었던 친구, 동아리 활동을 함께 했던 선후배의 창업 이야기라면 체감온도가 확 달라지고 현실적으로 고려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대학 학생들과 연구원들이 상대적으로 창업을 하는데 거부감이 없으며 실험실 창업이 활발한 데에는 이러한 이유도 있다.
이런 저런 지원자격을 다 없애면 어중이 떠중이 들이 정부 지원금 받으려고 달려들 것이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정부 정책에 누구나 지원할 수 있도록 하되, 기술력과 사업화 성공가능성을 엄격하고 공정하게 평가하여 선발하면 될 일이다. 이런 어중이 떠중이들이 우연히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에 쉽게 들어와서 엉뚱한 아이디어를 구현해 볼 수 있도록 해야 정부에서 그렇게 원하는 ‘혁신’ 스타트업이 나올 확률이 더 높아진다. 더디지만 성장하고 있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말자. 그렇게 하는 것이 실험실 창업 지원 정책 사업에 투입한 예산의 ROI (Return on Investment) 측면에서도 더 나을 것이다.
※ 주석
1. [과학협주곡 2-5] 조급함이 초래하는 실험실 창업 지원 정책의 비효율성- /myboard/read.php?Board=news&id=295768&BackLink=L215Ym9hcmQvbGlzdC5waHA/Qm9hcmQ9bmV3cyZQQVJBMz00MQ==
2. 창업 초기의 스타트업에게 자문을 해주고 지분 투자도 하는 기관
3. “By LOWERING THE BARRIERS TO GETTING STARTED, providing a low-risk way to try it out, and effective role modeling, YC has been able to bring unexpected talent into the ecosystem
“, Eric Ries, The Startup Way : How modern companies use entrepreneurial management to transform culture & drive long-term growth, page 53, 2017
조성환 / 미국 샌디에고의 스타트업 NanoCellect Biomedical의 C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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