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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의 생태에세이] 개고기 식문화의 인식과 연구…시대 따라 변한다
Bio통신원(이탈)
병원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 의사가 기력이 허한 환자에게 단백질 등이 담긴 비싼 영양제를 놔주면서 개고기 10그릇을 한 번에 먹는 것만큼이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몸보신=개고기’라고 인식하는 모양이다.
요즘 같은 최악의 폭염이면 개고기가 인기다. 말복(8월 16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옆 동에 사는 순둥이 개가 잘 버티고 있는지 걱정이다. 지난해에는 순둥이 개가 한 동안 보이지 않아 복날에 잡혀간 건 아닌가 걱정도 했다.
이 뜨거운 여름날 도로를 거닐다가 (사)동물권행동 ‘카라(KARA)’의 윙카 버스를 목격했다. ‘달려라 윙카’ 캠페인의 일환으로 버스는 전국 방방곡곡을 달리고 있다. 개식용 반대를 외치면서 말이다. 큰 트럭의 전면을 덮고 있는 ‘입시견(식용으로 사육되는 입이 시커먼 개)’들의 모습과 “세계가 바라보는 대한민국 / 개식용 이제 멈춰주세요”라는 문구는 가슴 아프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언제까지 여름마다 개식용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져야 하는지 안타깝다.
(사)동물권행동 ‘카라(KARA)’의 윙카 버스. 필자는 '입시견'이라는 표현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개들의 눈빛이 애처롭다. 사진 = https://www.ekara.org
말복을 무사히 넘겨야 하는 개들
최근 미국의 <CBS>뉴스는 북한에서 폭염과 함께 늘어나고 있는 개고기 소비를 보도했다. 기사의 첫 문장이 참 불편하다. "북한에서 여름은 개한테 좋은 시기가 아니다." 비단 북한에 국한된 일일까 싶다. 폭염 속에서 북한은 시원한 맥주와, 빙수, 보신탕이 인기다. 북한 역시 사상 최악의 더위를 견디고 있다. 연일 40도를 웃도는 날씨 속에서 개들은 더위와 불안을 동시에 버티고 있다. 평양에서 가장 큰 개고기 전문점 평양집엔 10여 개가 넘는 개고기 메뉴가 있다. 갈비살, 뒷다리살, 삶은 껍질 등.
그런데 북한에서도 애완견으로서 개들이 인기라고 한다. 개들을 산책 시키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지난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불독을 포함한 7종의 개 30마리를 평양에 새롭게 증축된 중앙 동물원에 기증했다. 개과 동물들이 야생동물처럼 지내는 곳은 인기가 많다. 축사 근처에는 개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포스터도 붙여 있다.
보도에 따르면, 남한에선 매년 200만 마리의 개들이 도살되고 먹힌다. 반면 2016년 기준, 인구의 약 20%가 개나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고 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개식용은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강원도에만 196개의 공식 등록된 개 농장이 있다. 한쪽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식당의 식탁엔 개고기가 올라온 것이다. 평생 개고기를 팔아온 식당 주인들의 생존권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대만은 지난해 개와 고양이 식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동물보호법도 강화하여 고의적인 동물 학대에 대해 최대 2년 징역과 한화 7천3백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특히 개나 고양이 고기를 팔거나 먹기만 해도 최대 9백만 원 벌금을 물도록 했다. 그들의 이름과 사진도 공개토록 했다. 동물 유기와 개식용 등과 20년 동안 씨름해온 대만은 아시아에서 이제 가장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한 나라가 되었다.
북한의 전문 식당에서 내놓은 개고기. 반면 북한에서도 이제 애완견으로서 개가 인기가 있다. 사진 = <CBS news>
개고기 축제에서 매년 도륙되는 1만 마리 개들
중국은 매해 1천-2천만 마리의 개가 도륙된다. 매년 6월이면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위린시에선 개고기 축제가 열린다. 이를 두고 중국 동물보호단체와 지역 주민 간 갈등이 반복된다. 위생법 위반과 작은 철창에 가두고 학대 하는 잔인함을 고발하는 측과 중국 고유의 문화라는 입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우리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9년에 시작된 개고기 축제는 점차 축소돼 왔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개고기 축제는 열렸다. 10일간 1만 마리의 개가 도축됐다. 개고기 축제에 자치시나 정부는 관여하지 않고 있다. 단지 민간 차원에서 수익을 목적으로 이뤄진다. 중국의 몇몇 과학자들은 2016년에 이미 불법성과 위생 수준과 질병 감염의 위험성을 <사이언스>에 경고한 바 있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HSI(Humane Society International)에 따르면, 개고기는 섬모충증, 광견병, 콜레라와 같은 질병을 퍼뜨릴 수 있다.
광시좡족자치구엔 빈민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 개고기 축제장에 모인 개들 대부분은 목걸이를 달고 있다. 즉, 대부분 도난당한 개들이라는 뜻이다. 철창 안에 6-7마리 개들이 물과 음식도 없이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도륙은 대개 다른 개들 앞에서 진행된다. 개들에게 고통과 불안을 심어주려는 의도다. 식당 관계자들은 공포에 질린 개에게서 나온 풍부한 아드레날린이 개고기 맛을 더 좋게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도 몽둥이로 개를 때려죽이는 이유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한다.
개와 개고기의 역사 그리고 변화
여성에게 안긴 13,000년 전의 개 유골이 발견되고, 약 5,0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암각화 사냥개 그림으로 보아 인간과 개의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 개는 늑대에서 진화를 했다. 무리에서 도태된 약한 늑대가 인간과 협력했거나, 인류 조상이 늑대 새끼를 데리고 와 공격성이 없는 개체만 골라 키웠을 거라는 설이 유력하다.
에티오피아의 한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하이에나에 먹을 것을 주기 시작하면서 꽤 익숙하게 그들을 길들인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먹이를 멀리서 던져 주었지만, 다음에는 긴 막대로 건넸고, 근처에서 먹이를 주기에 이르렀다. 이런 하이에나의 길들여짐은 훈련이 아닌 세대를 거친 번식으로 더욱 친밀해진 경우다.
개는 인간과 살며 야생성이 줄고 길들여졌다. 인간 없이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공격성과 경계심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작아지고, 포식자와 경쟁할 필요가 없기에 시각과 후각이 약해졌다. 털의 보호색마저 희미해지고, 이빨도 다소 뭉툭해졌다. 야생성이 죽어버린 개는 인간과 싸울 위치도 버린 채 무방비상태가 되었다.
<동의보감>(허준, 1611)과 <본초강목>(이시진, 1593)엔 개고기가 속을 편하게 하고 기력을 회복한다고 나와 있다. 분명 그 당시엔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간과 함께 생활하던 개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 토종개 가운데 불개가 있었는데, 눈과 코, 발톱이 온통 붉었던 이 개는 약용으로 쓰이던 중 멸종했다.
인간과 친해진 개는 유목민을 따라 북쪽에서부터 한반도로 내려왔고 약 1만 년 전 쯤 정착 했다고 알려졌다. 설화나 민담에 나오는 액운을 쫓는 개, 김유신 장군과 함께 싸움터를 다니던 개, 사찰 지키는 개처럼 우리나라 설화에는 개가 많이 등장한다. 한반도 개 역사의 혈통은 한반도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제 강점기 때 함께 수난을 받았다는 부분까지도 비슷하다. 온갖 수난 속에서 다행히 우리 토종개들의 씨는 마르지 않았다.
지식콘텐츠 사이트에 따르면, 개고기의 기원은 후기 철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50-50년의 갈라리아인들이 살던 곳을 발굴했을 때 정육점 동물들의 해골에 개의 해골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들에게 여러 음식 중에 끓인 개(보신탕)도 권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세 시대까지 개고기 소비 금지령을 내린 것을 보면, 개고기 문화가 이미 자라잡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에선 세계 1, 2차 대전 때까지 마지막 개 식육점이 문을 열었다.
학술 차원에서의 개고기에 대한 연구는 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최근 위생과 감염, 영양에 대한 연구결과는 전무하다. 고려대 도서관에서 ‘개고기’ 키워드를 입력한 결과 총 77건이 검색됐다. 2000년대 초반까진 개고기의 음식으로서 효용성에 초점을 맞춘 논문들이 몇몇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인식(문화상대주의)과 정책(합법과 위생) 관련이 많다. 개고기를 어떻게든 한국문화에 적합한 식문화로 접근하려는 시도다. 서울대 도서관 역시 마찬가지다. ‘개고기’ 키워드 입력 시 총 55건이 나왔다. 서울대, 고려대 두 도서관에서 ‘보신탕’ 검색 결과 총 29건이 정렬되었는데, 주로 문화와 인식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입법 차원에서 역시 개고기를 접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개고기를 합법화 하려는 움직임이 많았으나, 근래엔 식용 자체를 반대하는 흐름이다. 국회의원 10명이 축산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발의했다. 축산법에서 개를 가축으로 정의하는 것을 삭제하자는 내용이다. 축산법에선 개가 가축이지만, 축산물 위생관리법에선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동물보호법상 반려동물인 개의 위상을 달리하려는 시도이다. 지금은 분명 식문화와 인식, 관련 연구와 정책 모든 게 과도기이다.
‘몸보신=개고기’는 중장년층이나 노년층들이 주로 이같이 인식한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동물에 대한 대우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최근 동물보호 단체의 인식 조사에 따르면, 주위의 권유로 개고기를 많이 접한다고 한다. 또한 역설적이지만, 개고기가 합법화 하면 조류독감, 구제역처럼 어떤 질병이 나타날지 모른다.
개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관련 과학 연구, 정책 등이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과연 우리는 얼마큼 변화에 부응했으며 달라졌는지 다시 고민해볼 차례다. 육식문화는 시대상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개는 잡아먹히기 위해 인간의 곁으로 오지 않았다. 개는 현재 우리의 음식인가, 가족인가, 혹은 그저 키우는 가축일 뿐일까?
참고 문헌 및 사이트
1. https://www.cbsnews.com/news/north-korea-dog-meat-soup-consumption-up-with-hot-summer-weather/
2. https://www.cbsnews.com/news/south-korea-dog-meat-pyeongchang-2018-winter-olympics-meagan-duhamel/
3. https://www.cbsnews.com/news/taiwan-bans-sale-and-consumption-of-dog-and-cat-meat/
4. 개고기 식용 양성화와 수의사의 대응(대한수의사회지, pp.750 - 752, v.35 no.9, 1999)
5.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53/6304/1107.2
6. http://www.krpia.co.kr/viewer/open?plctId=PLCT00005130&nodeId=NODE04213248
7. https://www.youtube.com/watch?v=0X6-HdOi9iw
8. https://www.youtube.com/watch?v=5LMyLtNSBqY
9. 『한국의 개(토종개에 대한 불편한 진실)』(하지홍, 글로벌콘텐츠,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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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서 수학을,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학술기자, 탐사보도 연구원 등으로 일했다. 지금은 과학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환경과 생태의 차원에서 과학철학에 대한 고민이 많고, 영화와 연극, 음악을 좋아한다. <동아일보>에 '과학에세이', <포스코투데이>에 '과학의 발견'을 연재한 바 있으며, '학술문화연구소(http://blog.naver.com/acacullab)'를 운영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과 침묵의 봄》,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지배한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성공 방정식》, 《다시 과학을 생각한다》(공저), 《인공지능, 인간을 유혹하다》(공저), 《자유롭게 김광석 이야기》 등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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