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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 2-5] 조급함이 초래하는 실험실 창업 지원 정책의 비효율성
오피니언 조성환 (2018-07-09 13:12)

최근 몇 년간 ‘청년 창업 지원’을 위한 정부 정책이 각 부처별로 경쟁하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에는 대학의 실험실에서 개발한 R&D 성과를 바탕으로 한 ‘실험실 창업’을 장려하는 과제들도 눈에 띈다. 정부가 ‘실험실 창업’을 장려하는 것은 바람직하며, 과학 기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창업하는 대학원생들이 한국에서도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한국 정부의 입장에서도, 실험실 창업이 활성화되어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실 창업을 지원한다는 정책들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이것이 실험실 창업을 촉진시키고 그들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된다. 과기 정통부가 최근 발표한 ‘한국형 아이코어’라는 과제를 예로 들어보자. 미국 과학재단 (NSF)에서 시행하여 성공을 거둔 I-Corps (아이코어)라는 실험실 창업 지원 교육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여 들여온 것인데, 대학원생들에게 일인당 4천만원에서 7천만원의 자금을 쥐어주고 창업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책 이름 앞에다 ‘한국형’을 붙여 들여온 것인데, 그럼 미국은 왜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우선 살펴보자.

한국에 비해 실험실 창업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많은 실험실 창업 기업들은 시드 투자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일반적인 아이디어 기반의 스타트업에 비해 실험실 창업의 경우 기술적인 리스크가 더 큰데다,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8년~10년 정도로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2005년의 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벤처캐피탈 투자 중 18%만이 시드 단계에 투자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실험실 창업이 활발하다고 하는 미국에서도 스타트업들이 초기 시드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시작도 해보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혁신적인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 시드자금을 지원하는 SBIR (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 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SBIR 프로그램은 1982년부터 현재까지 6명의 미국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한 번도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오고 있으며America's Seed Fund라 불리운다. 암젠, 바이오젠, 일루미나와 같은 대기업들도 초기에는 미국 보건원 (NIH) SBIR 과제를 통해 초기 자금 지원을 받아 기술을 개발하고 성장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미국에서 SBIR을 시행하다가 보니까, 실험실 창업 스타트업들이 기술력은 뛰어난데 비즈니스 경험이 없어 시행착오를 겪으니, 이걸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 I-Corps이다. SBIR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 대표를 대상으로 비즈니스 관련 교육과 멘토링 서비스를 제공하여 이들이 시행착오를 줄여 성공적으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I-Corps는 SBIR의 훌륭한 별책 부록 프로그램인 셈이다.

미국은 [1] 민간 투자 생태계가 이미 잘 형성 되어 있는 상태에서, [2] 투자자들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초기 리스크가 큰 실험실 창업 기업에 시드머니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SBIR' 을 만들었고 [3] SBIR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들의 생존률을 높이기 위해서 I-Corps 를 고안했다. 다시 말하면, [1] 민간 투자 생태계의 존재 없이는 [2] 정부의 SBIR 정책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우며, 민간 생태계와 SBIR 정책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는 [3] I-Corps 라는 별책부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1], [2], [3]이 순서대로 자리 잡고 오랜 기간 잘 운영되다 보니, 한 발 더 나아가 I-Corps를 살짝 변형하여서 [4] 미국 내 몇몇 거점 대학에서 창업 교육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1], [2], [3] 은 제쳐두고 별책부록인 [4]에만 꽂혀서 '한국형 아이코어'라는 사업에 예산을 투입하고 대학원생들에게 창업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과기 정통부의 ‘한국형 아이코어’ 사업이 벤치마킹을 한 미국에선 [1] -> [2] -> [3] -> [4] 순서로 일이 진행되었는데, 우리는 거꾸로 [4]부터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3], [2], [1]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내 임기 내에, 이 정권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어야만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가장 하기 쉬운 사업만 들여와 일단 시작해보는 것이다.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해외의 우수 창업 지원 정책들이 ‘왜’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아예 하지도 않고, 그 프로그램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여유도 없어서, 단편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만 보고 돌아와서는 앞에다 ‘한국형’을 붙인 근시안적 정책과 예산 나눠 주기 식의 정책들만 남발하고 있으며, 그나마도 그렇게 남발되는 정책들 간의 연계성은 찾아볼 수도 없다. 지금이라도 조급함을 버리고, ‘왜’ 정부가 실험실 창업을 지원해야 하며, ‘어떻게’ 운영하여야 기술 기반 창업이 한국에서 자리잡고 성장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도 이름만 바꾼 또다른 ‘한국형’ 정책의 아류들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 주석
혁신기술 기반 ‘실험실 창업’… 청년 일자리 새 해법으로 뜬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80404/89466816/1#csidxfe3741015ab78a8b69e660231c6d1ad REAUTHORIZING SBIR: THE CRITICAL IMPORTANCE OF SBIR AND SMALL HIGH TECH
FIRMS IN STIMULATING AND STRENGTHENING THE U.S. ECONOMY, Roland Tibbetts, May 28, 2008
https://www.sbir.gov/
https://www.nsf.gov/news/special_reports/i-corps/


조성환

조성환 / 미국 샌디에고의 스타트업 NanoCellect Biomedical의 CTO
"어쩌다 창업하게 된 엔지니어이며, 미국 샌디에고의 스타트업 NanoCellect Biomedical의 CTO 입니다. 생명과학과 IT를 결합한 제품들, 특히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생명공학기술 및 메디컬 디바이스에 관심이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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