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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27] 21세기의 이공계 대학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오피니언 남궁석 (2018-06-04)

지난번의 과학협주곡은 미국학술원 연합회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하여 미국 의생명과학의 포스트닥 위주의 연구인력의 문제와 이의 극복 방안으로 권고된 내용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사실 포스트닥 등의 신진연구인력의 문제 중 대다수는 박사학위자의 과잉 배출로 야기되는 문제이므로 이의 해결책을 위해서는 대학원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와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마침 동일한 미국학술원 연합체에서는 최근에 ‘Graduate STEM Education for the 21st Century’ 라는 보고서를 통하여1 미국의 과학-기술-공학-수학(STEM: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ematics) 대학원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몇 가지 권고안을 제시하였다. 과연 미국의 과학계의 최고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학술원에서는 현행의 미국의 이공계 대학원 교육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이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를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 보고서에서는 그 동안 미국의 STEM 대학원 교육이 세계의 기준 (Gold Standard)로써 자리잡았으나, 동시에 사회의 다양한 요구에 미국의 대학원 교육이 잘 부합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현재의 대학원 중심을 교육기관이나 여기에 소속된 연구책임자로부터 학생 중심으로 바꿀 것을 권장한다. 즉 현행의 시스템은 대학원생이라는 비교적 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국가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많은 논문을 생산하는데 최적화되었으나, 대학원생의 자기발전이나, 이렇게 배출된 학위 취득자를 고용하게 될 미래의 고용주에게는 별로 최적의 시스템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즉, 현행의 미국 연구중심대학의 대학원 교육은 근본적으로 ‘학계의 연구책임자’ 를 길러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배출되는 이공계 박사과정 중의 40% 미만이 학계에서 일하고, 그 중에서 연구 책임자가 되는 사람이 절반 이하인 상황에서 대학원 교육의 목표를 독립적인 연구책임자 양성에 두는 것이 효율적이겠냐는 문제의식이 이 보고서에 제시되어 있다.. 즉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학계의 연구책임자가 아닌 ‘다른 경로’를 걷게 되는 상황에서 대학원 과정에서 ‘다른 경로’ 에 대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하고 그저 학계의 연구책임자가 되는 데에나 필수적인 가치를 대학원 과정에서 지고지선의 길처럼 학습 받고 있는 것이 대학원생 자신과 이들을 수용할 사회에 바람직한 것이냐는 이야기이다.

결국 대개의 STEM 대학원생의 교육이 자기 부담이 아닌 국가나 사회의 재정적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대학원생이 학위 취득 후, 혹은 포스트닥 후에 자신의 전공과 별로 관련 없는 직업을 갖게 되면 이것은 개인의 시간과 노력의 손해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을 지원하는데 소요된 국가나 사회의 지원 역시 헛되이 낭비되는 것이고, 과연 이러한 현상이 바람직한지는 단순히 대학원 교육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고민해 볼 문제이다.

그렇다면 대학원 교육의 포커스를 어떻게 학생 위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위의 보고서에는 다음의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있다. 첫번째는 현재 연구 업적 위주로 되어있는 교수의 보상체계를 수정하여 교육과 멘토링의 비중을 높일 것을 제안하고 있다. 가령 교수의 재임용이나 승진 등의 결정에 멘토링이나 교육에서의 퍼포먼스를 반영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두번째는 교육기관의 대학원생 지도 방식의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한 명의 지도교수에 의해서 주로 지도되는 대학원 교육에서 학과 혹은 학과 외의 복수의 지도교수, 혹은 학교 외의 다수의 지도교수등과 같이 여러 명의 지도교수에 의해서 지도 받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기를 권고하고 있다. 또 다른 권고사항이라면 대학원생의 진로와 관련된 통계를 전국으로, 그리고 기관에 따라서 수집하고 이를 대학원 진학 예정자 및 재학생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원생의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기관 차원의 제도적인 노력을 다할 것 역시 권고하였다. 또한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의 대학원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석사과정은 특정한 직업을 위한 전문적인 STEM 지식의 습득, 박사과정은 독창적인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자 양성의 프로그램),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석사 과정과 박사과정의 대학원 과정이 가져야 할 고유한 요소들에 대해서도 강조하였다.

물론 이러한 권고안들을 읽어보면 상당히 추상적인 부분이 있고 과연 여기서 제시된 몇 가지의 제도적인 권고안만으로 현행 대학원 교육의 문제가 얼마나 해소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그러나 미국 대학원 교육의 현행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고서는 지난 약 20년간 끊이지 않고 있으며 (현행의 보고서에는 이전에 나온 비슷한 주제의 보고서 약 19개를 레퍼런스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보고서를 포함하면 최소 20개가 되는 셈이다) 이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현행 미국의 대학원 교육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과연 한국에서는 현재의 이공계 대학원 교육에 대해서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STEPI)에서 2012년 간행된 “이공계 대학원의 특성화 발전을 위한 정부지원정책 개선방향” 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발견된다2. 정부의 국내 대학원의 재정 지원은 R&D를 수행하는 연구인력의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이공계 박사 취득자로부터 연구인력에 포함되는 비중은 약 1/3 수준에 불과하며, 사회적으로 실무능력을 갖춘 석사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따라서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석사 중심의 대학원에 대한 재정 및 정원 증대를 제언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국의 대학원, 특히 연구중심대학의 경우 석박사 통합과정 위주로 발달하고 있으며, 석사과정은 단순히 박사과정을 진학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여겨지거나 그 존재가 약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대학원 현실에 대한 분석이 정책에는 아직 적절히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아직까지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 교육과 그 지원방향은 국가 R&D를 직접 수행하는 인력 확보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이것이 지속될 수 있을까?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 교육 지원의 큰 틀을 차지하고 있는 BK21사업은 1999년부터 제 1,2단계 사업을 거쳐 지금 현재는 3단계인 BK21 플러스 사업이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되고 있다. 3단계인 BK21 플러스 사업이 종료된 2020년도에는 새로운 형식의 대학원 교육 지원사업이 입안되어야 한다. 과연 현행의 BK21 사업이 큰 틀의 변화 없이 계속 유지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면 여기에서 대폭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까? 물론 여기에는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다른 의견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BK21사업이 처음 개시되었을 당시의 1990년대 말과 2020년의 한국은 경제사회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1990년대 말에 대학원에 진학할 연령대인 20대 중후반은 1970년대 출생자로써 매년 8-90만명이 태어나던 세대였던 반면, 2020년 이후에 대학원에 진학할 2000년대 이후 출생자는 매년 40만명 정도 태어나는 세대로써 대학원도 ‘인구 절벽’ 의 흐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현격한 출생자 수의 차이를 해외유학생 유치 등으로 만회할 수 있을까? 결국 대학원생 위주로 수행되었던 한국 대학의 국가 연구과제 수행방법에 대해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연구실을 운영해 온 연구책임자라면 과연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연구실을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김박사넷’ (http://phdkim.net/info/) 이라는 사이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일부 연구중심대학을 중심으로 교수의 연구지도와 연구실 분위기, 교수의 평판에 대한 솔직한 익명의 평이 올라오는 사이트를 보면서 이제 한국의 대학원 교육 역시 필연적으로 ‘수요자’ 인 대학원생 중심의 교육으로 진행되는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학원 교육은 필연적으로 ‘수요자 중심 시장’ (Buyer’s market) 이 될 것이고, 자신의 연구실에 걸맞는 학생을 고르던 교수 중심의 시장에서 대학원생 중심의 시장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해당 사이트를 보면서 실감하게 된다. 과연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한국의 연구책임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학원생 중심의 교육환경 변화를 먼저 주장해야 하는 것은 대학원생이 아닌 교수와 대학원일지도 모른다. 거듭 강조하지만 미국에서 대학원과 포스트닥의 장래에 대한 심각한 보고서를 내는 주체가 왜 학계의 기득권 중의 기득권인 각종 학술원 연합회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주석
1. https://www.nap.edu/catalog/25038/graduate-stem-education-for-the-21st-century
2. http://www.stepi.re.kr/app/report/view.jsp?cmsCd=CM0160&categCd=A0201&ntNo=745&sort=PUBDATE



남궁석 (MadScientist in Secret Lab of Mad Scie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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