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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비효율의 원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연구자주도 연구 확대의 필요성
오피니언 호원경 (2017-12-15 09:40)

연구자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18년 정부예산은 기초연구비 400억을 삭감한 채 통과되었습니다. 400억 중 380억을 중견사업에서 삭감했다고 하니 특히 중견연구자들에게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국회의 기획재정 소위원회에서의 국가재정법 개정안 심의도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11월 23일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논의되었으나 통과하지 못했고 (첨부: 회의록 1), 12월 14일 회의에서도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620개의 계류의안의 하나로 남은 채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국회에서의 법개정을 촉구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였습니다. 

예산 삭감의 이유에도 재정법 개정 반대의 이유에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R&D의 비효율입니다. “R&D 사업 실패가 국가경쟁력 실패로 되어있는 상황”이라는 얘기까지 나오는 걸 보면 R&D를 국가경쟁력의 주요 요소로 생각하는 거 같긴 합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R&D 비효율의 원인에 대한 통찰력 있는 분석은 없습니다. 과연 기초연구비 삭감이나 기재부가 곶간을 지키는 것으로 R&D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건지 의문입니다. 

정부나 국회에서 R&D 투자는 많이 했는데 성과가 부족하다고 할 때는 은근히 연구자들의 잘못을 암시하는 것 같고, 실제 연구자들은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주눅이 듭니다. 하지만 투자가 적정했는지에 대한 반성은 별로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전문적인 투자자라면 나는 투자를 많이 했으니 책임이 없고 사업을 잘못한 너희 책임이라고 하진 않을 것입니다. 투자를 늘리면 성과가 늘어날 수 있는 곳에 제대로 투자를 하지 않거나, 연구 역량에 비해 지나친 투자를 하는 것 모두 투자 실패라 할 것입니다. R&D 비효율에 투자실패의 요인은 없는지 파악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것입니다. 

1) 정부 R&D의 기능별, 연구수행 주체별 투자현황

정부 R&D의 반 이상이 부처별 국책사업이고, 국책사업은 기업, 연구소, 대학이 4:4:2 정도의 비율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대학지원 목적의 투자 2.4조는 이공계 기초연구사업 (1.04조), 인문사회계 지원 (0.23조), 국립대 교원인건비 지원 (0.43조), BK등 대학육성 사업 (0.5조)등에 쓰입니다. 대학 R&D의 총규모는 정부 지원 외에 민간, 교내, 외국 에서 오는 연구비가 포함되어 5.6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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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구수행 주체별 연구인력 분포현황

연구는 사람이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없어질 직업에 대한 미래 예측이 많지만,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을 꼽으라면 연구직이 아닐까요? R&D 비효율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 연구인력의 수와 분포에 문제가 없는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연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책임자급 박사 연구원과 석사급 연구원 및 기술직의 비율이 적절해야 하는데 국가 전체 R&D의 3/4 이상을 쓰는 기업의 연구인력은 박사급이 차지하는 비율이 8%밖에 되지 않으니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부 R&D중 기업으로 가는 부분이 4조에 이르고, 앞으로 중소기업 R&D 지원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인데 고급 연구 인력 확충 없이 연구비 지원만 확대한다면 R&D 비효율성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연구인력의 선순환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펴는 것이 R&D 투자 확대에 못지 않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정부의 일자리정책에 있어 연구개발인력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반면 대학에는 연구인력이 풍부합니다. 박사 연구원의 60%가 대학에 있고, 연구원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석사과정 대학원생까지 합하면 대학의 연구원 수는 17만명으로 연구소와 비교하면 5배나 됩니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드는 것은 R&D 효율화를 위한 지름길일 것입니다. 한편 연구소는 인력 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합니다. 연구인력을 길러내야하는 대학에 연구원 수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지나친 연구원 분포의 불균형은 비효율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대학 인력양성의 적정한 수에 대한 고민과 함께, 배출된 연구인력이 기업과 연구소로 선순환되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만 연구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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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부 R&D 성과 평가의 적정한 지표는?

효율성이란 투자 대비 성과를 뜻합니다. 기대하는 성과가 무엇인지에 따라 효율성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흔히, 논문은 꽤 나오는데 쓸만한 특허나 기술이전 실적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들며 R&D 투자의 비효율성을 얘기합니다만, 이는 정부 R&D의 중점 목표를 기술개발에 두고 하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정부 R&D의 반을 기술 개발 목적의 연구에 투자하는 것이 타당한지 따져봐야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익 증대를 목적으로 한 기술개발 연구는 기업에서 주로 하고, 정부 R&D는 기업이 투자할 수 없는 영역에 투자하여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걸 목적으로 합니다. 우리나라도 과학기술강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선진국형 R&D로의 전환이 필수입니다. 몇 건의 특허와 기술이전 실적으로 R&D 투자의 성공 또는 실패를 얘기할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경쟁력의 수준을 높이는 게 정부 R&D가 해야 할 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정부가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할 것은 과학기술을 선도할 경쟁력 있는 연구성과, 우수한 연구인력의 양성과 선순환 구조 확립 등입니다. 한동안 가파르게 증가하던 우수논문 편수가 수년째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브릭 한빛사 논문 년도별 통계). 우수논문 수의 정체가 기초연구사업비 정체와 연관된다면 17년부터 시작된 기초연구비 확대가 우수논문의 증가로 연결될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려면 기초연구사업의 포트폴리오를 잘 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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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선수/심판 논리에 대한 재고

정부나 국회나 입으로는 R&D 효율성이 낮다고 걱정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원인 파악이 없이 경쟁적으로 대형 기획사업을 만들어내며 국책사업 확대에만 열을 올려 온 결과, 이제 그 규모가 정부 R&D의 반이 넘는 10조에 이르렀습니다. 기획재정부가 독점하고 있던 R&D 예산권을 과기부와 협의를 통해 결정하는 개정법 개정을 반대하는 데에 선수/심판 논리가 나옵니다. 선수가 심판을 겸하면 견제가 안 된다는 것인데요. 아마도 그동안은 과기부가 선수였고, 기재부가 심판이었었나본데 그렇다면 연구자들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업은 몰라도 R&D에서는 우리가 선수를 하겠으니 정부는 책임지고 심판을 하십시오. 게임이 잘 되려면 선수와 심판 사이에 게임의 목적과 룰에 대한 합의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겠지요. 그리고 국회는 정부가 심판 노릇을 잘 하는지를 잘 감시해 주시구요. 그러면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을 테니 R&D 효율성은 저절로 올라가지 않겠는지요. 바로 이런 상황이 “연구자주도 연구”를 외치며 그리던 상황입니다.

5) 다시 처음으로

처음으로 돌아가 지난해 6월 21일, “미래부장관님께: 과학발전을 저해하는 국가 연구비지원시스템의 개혁을 촉구합니다” 로 브릭 소리마당에 들어왔을 때의 논점으로 돌아가봅니다. 제가 연구비의 문제를 느끼게 된 계기는 기획사업의 부조리에서였고, 그래서 미래부장관께 촉구한 개혁은 Top-down 을 줄이고 Bottom-up 연구비를 늘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Bottom-up 연구비의 핵심은 창의력을 발휘한 연구자 고유의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어서 그 필요성이 기초연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응용개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역설하였고,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후, 이러한 방향을 실현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가다보니 단순한 제도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 보다는 R&D 투자의 목표설정과 투자 포트폴리오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유일한 Bottom-up 연구사업인 “기초연구사업 확대” 요구로 구체화 되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기초연구사업”은 기초과학만을 지원하는 연구비가 아니라 이공계/의약학계 학문 전분야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기초연구사업 확대”는 응용/개발연구와 기초연구를 대비하여 기초연구 비중을 늘리라는 요구가 아니라 (실은 정부가 얘기하는 기초연구비중은 40%로 이미 충분히 높아서 더 늘릴 필요도 없습니다), Bottom-up 연구사업을 확대하라는 요구의 첫번째 방안이었습니다. 앞으로 기초연구사업 외의 다른 국가연구개발 사업에도 개인의 창의력을 발휘하고 공정한 연구력 경쟁이 보장되는 bottom-up 사업을 확대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기초연구사업을 확대하자는 게 연구소의 연구비를 빼앗아 대학에 주자는 건가 하는 오해입니다. 이사업이 현재는 대학을 지원하기도 부족한 규모이고 주로 대학의 연구자가 수혜를 받기 때문에 대학지원사업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은 모든 연구자에게 열려있는 사업입니다. 실은 정부 R&D에서 대학을 지정하여 지원하는 부분은 아주 적고, 대부분의 연구비는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현재는 대학과 연구소의 경쟁이 국책사업에서 주로 일어나다보니 연구력 경쟁이 아니라 기획 경쟁이 되고 있는 데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R&D 비효율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기초연구사업 규모를 충분히 확대하여 국가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대표 연구사업으로 발전시킨다면, 대학과 연구소의 전 연구자들이 공정하게 자유경쟁을 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며 서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6) 맺음말

2017년 1월 20일, 국회 청원이 통과되어 연구자주도 기초연구지원사업 확대를 포함한 5개항의 청원의견서가 채택되었고, 이 내용의 대부분이 새 정부의 과학정책의 주요 내용으로 수용되긴 하였지만, 이번에 국회에서 기초연구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것을 보니 정책이 실제 실행되는 데에는 앞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자들이 국가 R&D의 주역이 되어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하며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까지 갈 길이 멀 것 같습니다. 원하는 변화를 이루어내려면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모두 브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만, 익명의 게시판에서 실명으로 활동하면서 소리마당의 분위기와 질서를 깨뜨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소리마당을 떠납니다. 그동안 불편한 분 계셨을텐데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한편, 댓글을 통해 여러 의견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전혀 다른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으니 얻은 것이 많습니다만 일일이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저는 우리나라 R&D가 골치덩어리 실패한 사업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비효율의 원인들은 바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들이고, 조금만 개선하면 성장 가능성이 많습니다. 별생각 없이 R&D 비효율 얘기하는 정치가나 언론이 있다면 그게 아님을 적극 설득해야 합니다. 그동안의 열악한 조건에서도 매우 우수한 연구성과와 우수한 연구인력이 많이 배출되어 우리나라의 발전과 성장에 기여하고 있고, 이는 그옹안 쌓여온 R&D 투자 덕분이니 사업으로 치면 성공한 사업이고 앞으로 성공 가능성이 더 큰 사업입니다. 저는 무엇보다고 연구자들의 역량에 대해 자신이 있었기에 그동안 신념을 갖고 자유공모연구비의 확대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 돈을 더 달라고 한 게 아니라 지금 옆에서 연구비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연구자들에게 일할 수 있는 연구비가 주어지면 뭔가 새로운 걸 찾아내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박사들의 취업난으로 사람을 너무 많이 기른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이들이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기만 한다면 미래의 우리나라를 도약시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들에게서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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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4일
서울의대 호원경
* 위 기고문은 BRIC 소리마당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파일첨부 1: 회의록_기획재정소위제4차(1123).pdf (1.17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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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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