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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20]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피니언 남궁석 (2017-12-06 09:45)

지난 과학협주곡에서는 자기 자식을 논문의 공동저자로 등재하여 약 40여편의 논문에 이름을 올리게 한 자식 사랑이 지나친 어떤 교수님이 소개되었다. 최근의 언론 보도에1 따르면 이런 경우가 다수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외에도 학계의 여러 가지 문제들, 즉 연구 부정, 연구비 부정 사용, 대학원생에 대한 갑질과 같은 사례들은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화제가 되는 문제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언급될 때, 소셜 네트워크 (SNS:Social Network Service) 에서 종종 나오는 반응들이 존재한다. 주로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님들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나와 내 주변에서는 이러한 일을 전혀 볼 수 없고, 요즘은 구조적으로도 그렇게 되기 힘든데 과장된 반응이 아니냐” 내지는 “일부 대학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혹은 “극소수의 일탈로 교수 집단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등과 같은 것들이다. 물론 자기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비리’ 와 관련하여 같은 직업군으로써 부당한 비판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추된 자신의 집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글’ 을 SNS에 올리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물론 해당 글을 올리는 분은 적어도 언급된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결백하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이다.

“과연 여러분은 주변의 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얼마나 알길래 이런 이야기를 단언할 수 있나?” 와 “당신이 알고 있는 주변이 과연 얼마나 전체를 반영하는가?” 이다.

먼저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이러한 문제가 전혀 없다고 단정하는 것부터 생각해보자. 자기 자신이야 양심의 문제로 그렇다고 인정해 준다면, 과연 당신의 주변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연구부정, 연구비 부정 사용, 대학원생에 대한 갑질 등의 일탈 행동을 주변에 드러내 놓고 저지르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의 이러한 행동은 대개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학계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던 사람이 이러한 비리를 저지르는 당사자로 판명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즉, 나와 내 주변에는 그런 천인공노할(?) 문제를 저지르는 사람이 전혀 없을 것 같은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러한 사례들이 많이 나타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사회의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학계의 여러가지 문제 역시 주변의 이목을 피해서 은밀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수영장이나 목욕탕에서 소변을 본다고 떳떳이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자신과 주변사람 중에서는 당연히 그런 몰지각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수영장의 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분명히 오줌에서 유래된 화학성분이 검출되고 수영장의 물 중 0.01% 는 오줌으로 추산된다는 연구 결과와2 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다. 즉, 일탈 행위가 뚜렷하게 드러나기 힘든 상황에서는 분명히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벌이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나와 주변의 누구도 수영장에서 소변을 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물의 성분을 화학적으로 검출해 보면 소변 유래의 성분이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의 각종 문제 역시 자기 자신과 그 주변에서는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전체적으로는 꽤 많은 사례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와 내 주변에서는 그런 사례를 볼 수 없다’ 라는 항변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한국의 대학사회에는 다양한 사례가 있으며, 자신의 환경과는 많이 다른 환경이 분명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우이다. “우리 대학, 학과에서는 그러한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단언을 하는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돌려주고 싶다. “좋은 곳에 근무하시는군요. 좋으시겠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또 다른 문제는 ‘극소수의 문제를 가지고 왜 일반적인 문제인 것처럼 일반화하느냐’ 라는 항변이다. 사회에서 문제라고 인식하는 행동은 대개 구성원 중 극히 일부만이 하는 행동이다. 사회에서 누구나 다 하는 행동은 일반적으로 문제적인 행동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수영장에 소변을 보는 행동이 하지 않아야 할 일탈적인 행동으로 간주되는 것은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기 때문이다. 일년에 살인사건이 한번도 일어나지 않는 마을에서의 살인사건과 범죄소굴에서의 살인사건이 취급되는 비중은 다르다. 즉, 일탈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의 비율이 적은 상황에서는,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사회에 주는 피해가 크기 때문에 이들은 더욱 엄히 처벌받아야 하며 여기에 대한 주의가 더욱 환기되어야 한다. 연구 부정, 연구비 부정 사용, 대학원생에 대한 갑질 등을 하는 사람들이 전체 구성원 중에서 비율이 줄어들수록 이들 문제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된다. 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이들이 구성원에 주는 피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어쨌든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므로 이것을 이슈화할 필요가 없다’ 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의견이다.

 ‘일부 교수님’ 들의 이런 ‘항변’을 들을 때마다 대한민국 1% 가 모여 사는 동네의 주민들이 청년실업이나 최저임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모습이나, 다 인종 국가에서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인종 – 주로 기득권 계층에 속하는 - 이나, 성추행이나 성차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내 주변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단언하는 특정 성별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항변’ 을 하시는 분들이 평소에 사회정의의 구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처럼 보이는 분들 중에서도 가끔 관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만성적인 학계의 문제가 아직 근절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해당 문제의 존재 자체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려는 학계의 관성 아닐까?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대처 방안은 ‘소수의 일탈’ 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드는 제도를 모색하는 것이겠고, 만약 이런 것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기가 힘들거나, 관심이 없다면 해당 문제에 대해서 그냥 언급하지 않는 게 차라리 낫다. 즉 ‘자신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고, 주변에서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문제’ 가 계속 이슈화되는 상황에서, ‘어딘가에서는 그런 문제가 아직도 일어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 “나와 내 주변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를 애써 소리 높여 외칠 필요는 없다. 당신의 결백함 따위는 안 물어 봤고 사실 궁금하지도 않다!

물론 “몇몇의 일탈 때문에 모든 교수가 도매급으로 취급 받는 것이 억울하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 치욕을 버티지 못하시겠다면 이러한 ‘몇몇 미꾸라지’ 가 서식하지 못할 환경을 만드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시는 것이 좀 더 나은 연구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나와 내 주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를 애써 외치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문제는 윤리 차원의 문제보다는 제도적인 차원의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일이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환경이 생성되면 아예 근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만원 지하철에서 성추행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면 이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일차적인 과제는 범죄 발생시 이를 신속히 검거할 수 있는 감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더 급격한 변화를 주는 요인은 만원 지하철의 혼잡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겠다.  어쩌면 현재의 문제의 근본 원인 자체가 학계에 적정량 이상의 사람이 존재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지금 언급된 학계의 문제들의 상당수도 환경이 좀 더 급격히 변함에 따라서 아예 신경쓰지 않게 될 날이 멀지 않았 있다. 가령 학령 인구의 급격한 감소나, 논문 혹은 특허 편수 위주의 연구 평가의 무의미함이 사회적으로 부각된다면 다 해소될 것이다. 대학원생이 없고 연구비가 없는 대학에서는 대학원생에 대한 교수의 갑질이나 연구비 횡령 문제가 완전히 해소될테니까. 물론 그때쯤이면 학계의 존립 여부도 불투명하겠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학계의 존립 여부에 가장 영향을 받을 사람은 현행의 학계 문제의 피해자라기보다는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일 것이므로 이것을 제일 먼저 염려해야 할 사람들도 학계가 침체되면 가장 불이익을 당할 사람들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학계의 지속 가능성’ 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학계의 기득권 세력보다는 주변이나 변방에서 더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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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단독] 중·고생 자녀 ‘스펙’ 쌓아주는 교수들… ‘아빠 논문 공저자’ 최소 10명 확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5&aid=0001052648&sid1=001&lfrom=facebook
2 http://m.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03992.html#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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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석 (MadScientist in Secret Lab of Mad Scien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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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남궁석,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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