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약 46억년 전에 탄생했다. 적어도 37억년 전에 처음 생명체가 등장했고(17회), 미생물 왕국이 20 억년이 넘는 긴 시간을 지배했다. 최근에 밝혀진 사실을 접목하면, 뜨거운 심해 열수공에서 발생한 단세포 생물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생명을 유지하는 대사과정에서 발생한 부산물은 (화합물, 산소 등) 원시 지구의 환경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다양한 종으로 분화되었다. 다양한 생물의 세계를 들여다 보면 놀랍게도 미생물과 다세포 생물의 대사과정이 너무 흡사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그리고 수십 억 년에 걸쳐 무수한 다양성을 창출한 자연에 경의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곰팡이가 지구에 있었을까? 우리가 미생물이라고 뭉뚱그려서 부를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을 의미한다. 하지만, 미생물이라고 다 같은 녀석들이 아니다. 미생물은 크게 원핵생물(prokaryote)인 세균, 고세균, 그리고 진핵생물(eukaryote)인 곰팡이, 원생생물, 조류 등으로 나누어진다. 원시 진핵생물은 약 22억 년 전에 처음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곰팡이는 이때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 동안 발견된 화석을 연구한 결과, 고생물학자들은 지의류와 비슷한 원시적 형태의 곰팡이 화석은 대략 6억 년 전에 처음 등장했고, 지금 형태와 가장 유사한 곰팡이 화석은 4억 년 쯤 전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곰팡이도 나름 복잡하게 진화한 진핵생물이기 때문이다.
원시 지구에 처음 발생한 미생물은 가장 단순한 구조를 가진 원핵 생물(Prokaryote)이다.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핵(nucleus)과 세포 소기관의 존재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원핵생물은 염색체가 세포질과 섞여 있는 반면, 진핵생물은 염색체와 세포질을 분리하는 핵막이 있다. 핵막이 생기면서 염색체는 세포의 다른 소기관과 분리된다. 마치 전자 계산기와 수퍼 컴퓨터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차이라고나 할까?
By Science Primer (National Center for Biotechnology Information). Vectorized by Mortadelo2005.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145991그 이후 새롭게 등장한 단세포 진핵생물이 복잡하게 얽혀지면서 다세포 생물로 진화했다. 다양한 원핵생물이 등장하고 도태되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핵막과 세포 소기관까지 장착한 진핵생물이 등장하는 과정은 얼마나 희박한 확률로 일어났을까?
"진핵생물, 너희는 어디에서 왔니?"
진핵생물이 발생하는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는 “단순한 세포가 어떻게 복잡한 구조가 되었을까?” 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것이다. 진핵생물에만 있는 복잡한 구조의 기원을 찾는다면 그 발생과정을 쉽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1.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 같은 세포 소기관들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2. 유전물질을 싸고 있는 핵은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과학자들은 원핵생물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공존하다가 거대한 원핵생물에 먹힌 작은 미생물이 살아 남아서 소기관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이 가설은 1960년대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가 제시한 세포 내 공생설 (Endosymbiont theory)에서 시작된다.
“아주 먼 옛날, 광합성으로 유기물을 얻는 원핵생물과 유기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 원핵생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커다란 원핵생물이 이들을 집어삼켰다. 작은 미생물은 보통 거대한 세포 안에서 녹아 없어지게 마련인데, 이 생물들은 우연히 살아 남았다. 작은 미생물들은 유기물을 합성하거나 에너지를 생산해서 거대세포에게 제공했다. 그 결과 거대세포는 더 잘 살게 되었고, 복잡한 다세포생물로도 진화하게 되었다. 한편 거대세포 안에서 안전하게 살게 된 미생물은 독립생활을 할 때 사용하던 유전자를 잃어 버리고, 광합성과 에너지를 만드는데 필요한 유전자 만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여기서 ‘광합성으로 유기물을 얻던 미생물’은 엽록체 (chloroplast)가 되었고, ‘유기물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만들던 미생물’은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가 되었다. 그 후 영국의 생물학자 톰 캐벌리어-스미스(Thomas Cavalier-Smith)는 린 마굴리스의 가설에 핵막의 기원을 설명하는 ‘원시진핵생물(archezoa) 가설’을 더했다. 이 가설에서는 고대 원생생물의 세포가 주름지면서 안쪽으로 밀려가서 또 하나의 막이 되었고 (핵막), 그 막 안에 유전물질이 갇히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엽록체와 미토콘드리아는 원핵생물처럼 원형의 유전물질을 가지고 있고, 세포 내에서 독자적으로 분열하고 증식한다. 물론 박테리아처럼 이분법으로 분열한다. 미생물과 유전물질이 비슷하고 행동 방식이 비슷한 이유는 이들이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공생관계로 사는 생물이 현재에도 존재한다. 파울리넬라 (Paulinella)라는 아메바는 세포 안에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cynobacteria)를 데리고 산다. 파울리넬라는 공짜로 유기 영양분을 얻고, 시아노박테리아는 가혹한 환경을 피해 안전한 보금자리를 얻은 셈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인 셈이다. 이 공생 관계는 대략 1 억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박테리아는 아직 완전한 엽록체가 되지 못하고 독립적인 대사를 하고 있다. 1억년이라는 시간이 둘이 하나가 되기에는 너무 짧았을까? 10억 년 쯤의 시간이 더 지나면 이들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미토콘드리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다. 가장 영향력있는 가설은 1998년 윌리엄 마틴(William F. Martin)이 제시한 ‘수소가설 (hydrogen hypothesis)’이다. 이 가설도 린 마굴리스의 세포내 공생설을 기본으로 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기원이 수소 세균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메탄가스를 만드는 고세균 (메탄생성고세균)과 짝궁이 된 수소 세균을 발견했다. 이 고세균은 수소와 이산화탄소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메탄을 발생한다 (우리가 대체 에너지로 주목하는 가스이다). 그런데, 기체 상태인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높은 농도로 얻기가 너무 힘들었다. 마침 고세균은 근처에서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세균을 발견했고, 이 세균을 곁에 두고 단짝이 되었다. 이 두 세균은 오랫동안 함께 살다가 결국 한 몸이 되었다. 그리고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만들던 세균은 지구의 대기에 점점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산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어쩌다 보니 너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가까운 곳에서 오랜 시간 공생관계에 있던 미생물들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했다. 필요한 것은 서로 공유하고, 불편하고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없애고 둘이 하나가 되었다. 그 결과 둘 중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쪽도 살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하나가 된 둘은 혼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삶을 모색할 수 있게 되었고 복잡한 진핵생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삶도 미생물과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하기로 결심하면 둘의 일상도 하나가 된다. 사용하던 살림살이도 비슷한 게 있다면 하나만 남기고 치운다. 혼자 살면서 무의식적으로 하던 습관이 상대방에게 부담이 된다면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그런 연습이 오랜 시간 쌓이게 되면 두 사람의 삶은 없어지고 하나가 된 두 사람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그들은 가족이 된다. 만약 곁에 있던 누군가가 없어진다고 상상해 보자. 그가 없는 삶이 말할 수 없이 힘들어 진다면, 이미 둘은 하나가 되어 서로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 운명공동체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