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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에게서 배우다] <16회> Tumor microenvironment(3) ; 청소, 그 가치에 대하여
Bio통신원(바이오휴머니스트)
<암 미세환경에서 면역세포들의 역할에 대한 도식적인 묘사1)>
암 미세환경(Tumor microenvironment)내에는 그림과 같이, 암세포뿐만 아니라, NK 세포, T 세포, 수지상 세포, 마크로파지 등 많은 종류의 면역세포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인간의 면역체계(Immune system)는 그림의 왼쪽과 같이 워낙 잘 훈련돼 있고 활동력이 뛰어나 하루에 수십 개 정도의 암세포가 생겨났다가 면역세포에 의해 파괴된다고 한다. 문제는 그림의 오른쪽과 같은 암세포의 면역회피(Immune escape) 능력이다. 암세포는 면역억제물질을 분비하여 면역세포들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데, 이와 같은 암세포의 면역회피기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암백신 면역치료법 성공의 관건이라고 한다.2)면역에는 면역세포에 의한 면역뿐만 아니라, 인간의 신체가 병원체의 감염을 1차적으로 방어하는 가장 단순한 방어체계인 ‘선천성 면역(Innate immunity)’도 있다. 이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방어체계로 피부, 점막 등에서부터 대식세포, NK세포 등이 역할을 담당한다.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이런 면역체계로는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켜 살아남는 병원체나 암세포까지 모두 대응하기에는 부족한데, 이를 보완하는 특이한 면역방어기전을 ‘후천성 면역(Adaptive immunity)’이라고 한다. B세포 및 여러 종류의 T세포들이 이때 활약을 하게 된다.3)
우리 몸에 침입한 병원체나 위험한 것들을 제거하는 ‘면역’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청소’에 비유하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생활하는 곳에서 누구나 어느 정도 ‘청소’를 하며 살아간다. 특히 소중한 집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혼 전 부모님과 삼형제가 살던 우리 집에서, 내가 ‘참여한’ 집안 청소는, 방바닥에 있는 각종 이물질들을 빗자루로 쓸어 쓰레받기로 담아 버리고, 무릎을 꿇어가며 물걸레질을 하는 정도였다. 그 외 가끔 내가 입은 옷을 빨거나 내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했다. 이정도가 부모님께서 내게 물려주신 ‘선천성’ 청소영역이다.
결혼하고 아내, 아이 둘과 함께 사는 요즘 우리 집에서, 내가 ‘후천적으로’ 담당하는 집안 청소는 무척 다양하고 그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일단 범위가 나 혼자만이 아닌 가족구성원 모두를 위한 청소다. 다행히 도구는 업그레이드 되었다. 빗자루/쓰레받기는 진공청소기 및 먼지포로, 물걸레는 스팀걸레로 바뀌었다. 대신 청소강도는 강화되었다. 바닥에 보이는 이물질 제거뿐만 아니라 머리카락 및 잘 안 보이는 먼지까지가 그 대상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주 1회 이상은, 화장실청소, 빨래(세탁기가 해주는 건 쉽다. 손으로 비벼야하는 빨래가 반드시 있다!! 속옷, 양말... 아빠, 나 여기 뭐 묻었어! 등등), 분리수거(플라스틱, 종이, 비닐, 음식물... 단, 굵직한 뼈나 씨앗은 일반쓰레기... 거의 강박적으로 분리하는데, 수년전 미국 어느 쇼핑몰 푸드코트에 갔을 때 사람들이, 쓰레기통에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한꺼번에 마구 버리는 것을 보고 무척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를 해야 한다. 이 밖에도 선풍기 닦기 등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해야하는 청소도 있다ㅜㅜ
청소는 ‘위생(Sanitation)’의 수준을 높여 여러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유익한 측면뿐만 아니라 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다. 바로 ‘연대’와 ‘인간존중’의 실천이다( ‘연대’는 프랑스혁명의 세 가지 이념중 하나다4)). 맞벌이 부부이기도 하지만, 청소를 여자의 일로 여겨 아내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무책임하다. 결혼 초에는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무책임한 생활을 하였으나, 요즘에는 적극 청소에 임함으로써 집안일에 있어 아내와의 ‘연대’를 실천하고 있다. 진정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한다.
언젠가 청소하느라 첫째 아이 방에서 바닥에 널려 있던 비닐봉지 하나를 치운 적이 있다(물론 바닥엔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물건들이 널려 있다ㅜㅜ). 집에 돌아온 아이가 거세게 항의한다. 자기가 다 생각이 있어서 거기에 놓아둔 것인데, 그것을 치우면 어떡하냔다. 아이들은 청소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정말 1(일)도 없다. 아니 동참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청소하는데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처음엔 청소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도 많이 냈지만 이젠 ‘인간존중’을 실천하는 셈 치고 마음을 비웠다.
지난 주말 아침(하루중 조금이라도 덜 더울 때를 골라) 창문을 열어놓고 아내와 함께 한바탕 집 청소를 하는데 땀이 비 오듯 한다. 내 모습이 꼭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였다.5) 다시 떨어질 줄 알고도(다시 더러워질 줄 알고도)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올리다 보면(끊임없이 청소를 하다보면) 무언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면역을 회피(Escape)하면 암이다. 나에게 주어진 청소의무를 회피해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올 것임에 틀림없다. 면역력을 높여 질병을 예방하듯, 청소력(?)도 높여 깨끗한 환경도 만들고 삶속에서 ‘연대’와 ‘인간존중’을 실천하고자 한다.
오랜만에 욕실바닥 배수구를 들어내고 청소한다. 머리카락 뭉치가 웬만한 머리 하나 크기로 나온다(우리 집에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 세 명이 산다). 청소 후 시원하게 내려가는 물을 보니 마음이 시원해진다. 덩달아 나도 깨끗해진 기분이다.
청소, 그 의미와 가치는 충분하다.
※ 참고문헌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Tumor_microenvironment.jpg
2) http://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659
3)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QGx8&articleno=630&categoryId=31®dt=20100428130943
4) “프랑스혁명 때 자유, 평등, 연대 세 가지 이념이 있었습니다. 흔히들 세 번째를 연대가 아니라 박애라고 하는데 저는 프랑스 말의 원뜻은 연대에 가깝다고 봅니다...” - 주진형, ‘경제, 알아야 바꾼다’, 메디치미디어
5) https://ko.wikipedia.org/wiki/%EC%8B%9C%EC%8B%9C%ED%8F%AC%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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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어설픈 휴머니스트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바이오분야 전공 대학졸업후, 제약사를 거쳐, 현재는 십수년째 암연구소 행정직원으로 근무중. 평소 보고 들은 암연구나 암환자 이야기로부터 나름 진지한 인생 교훈을 도출해 보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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