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ansy Lab
모든 생물 대사의 핵심요소인 황-철 클러스터가 생성되는 반응을 촉발한 것은 자외선이다.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에는 모순이 하나 있다. 모든 생명체들이 (호흡에서부터 광합성, DNA 복구에 이르기까지) 기능을 수행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그 에너지를 이용하려면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한 효소에 의존해야 한다. 그렇다면 효소와 생명체 중에서 어떤 게 먼저 탄생했을까?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질문과 똑같다.
새로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생명에 필수적인 효소들 중 핵심부에 있는 황-철 클러스터(iron-and-sulfur cluster)가 약 40억 년 전 지구의 원시바다를 둥둥 떠다녔으며, 그것은 원시적인 생체분자(biomolecule), 철염(iron salt), 그리고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요소인 자외선이라는 삼총사의 합작품이었다고 한다.
"이번 연구는 흥미롭다. 황-철 클러스터의 발생은 생명탄생의 중요한 단계였다"라고 카네기 과학연구소 산하 지질학연구소에서 무기물과 생명계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로버트 헤이즌 박사(지구물리학)는 말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아미노산이나 핵산과 같은 유기적 구성요소(organic building block)들이 생겨나 단백질과 RNA를 조립한 과정"에 초점을 맞춰 왔다. 그에 비해, 세포화학의 모든 측면을 추동하는 효소 중의 핵심인 황-철 클러스터의 탄생에 관한 연구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유전학 분석에 따르면, 필수적인 효소들이 지구상에 널려 있었던 것은 최소한 우리의 마지막 공통조상이 나타난 이후였다고 한다(참고 1). "나는 필수효소에 의존하지 않는 생명체를 본 적이 없다"라고 이번 연구를 지휘한 이탈리아 트렌토 대학교의 세레프 만시 박사(생화학)는 말했다.
현존하는 생물들의 대사반응은 산소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살아있는 세포 안에서 신중히 조절된다. 그러나 지구상에 생명이 처음 탄생했을 때 그런 조건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대사반응이 일어난 걸까?
황-철 클러스터가 최초의 생명에게 필요한 핵심요소였는지, 아니면 최초의 생명체는 황-철 클러스터 없이도 버틸 수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만시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초기지구의 조건을 재현했다. 트렌토 대학교의 생화학자 클라우디아 본피오는 산소를 제거하고, 철과 클루타티온(glutathione)울 배합했다. 글루타티온은 생명이 탄생하기 이전의 화학수프(prebiotic chemical soup) 속에 존재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황 함유 단백질(sulfur-containing peptide)이다. 초기 지구를 지배했던 산화상태인 2가 철(ferrous)일 때, 철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본피오가 빛을 비추자 전환이 일어났다.
"몇 분이 지나자, 황-철 클러스터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외선이 비치는 상황에서, 화학수프는 오렌지색에서 빨간 색으로 변했다. 이는 철과 황이 반응한다는 것을 뜻한다. 더 오래 기다리니, 좀 더 복잡한 클러스터가 형성되어 용액을 갈색으로 만들었다"라고 본피오 박사는 말했다. 자외선은 단백질에서 황 원자를 유리시킴과 동시에 철을 산화시켜 3가철로 만들었고, 3가철은 황과 쉽게 반응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이상의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7월 11일 《Nature Chemistry》에 기고했다(참고 2).
다음으로, 연구진은 상이한 조건에서 30가지 이상의 잠재적 화합물들을 테스트했다. 그 결과 글루타티온보다 더 간단한 황함유 분자들도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일부는 지방산 소포(fatty acid vesicle) 속에서도 반응을 일으켰는데, 이것은 연구실에서 전구세포(protocell) 대역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반응들은 오늘날의 살아있는 세포에서 철-황 클러스터가 합성되는 방식과 매우 흡사했다"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햇빛이 초기 황-철 클러스터의 합성 과정에서 일익을 담당했다는 것은 말이 된다. 왜냐하면 40억 년 전 지구에는 오존층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UV를 차단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 당시의 자외선은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을 것이다. 더구나 지구상의 모든 호수들에는 무기물이 풍부한 스튜(stew)가 넘쳐났을 것이다. 연구진이 이번 실험에서 사용한 화학수프처럼 말이다. 특히 화산의 분화구 내부나 충돌지역(impact area)의 사정은 더욱 그러했다. 그런 곳에서는 물이 갈라진 바위 틈으로 흘러 철을 지표면으로 끌어냈을 것이다"라고 이번 연구에 참여한 하버드 대학교의 잭 쇼스택 박사(분자생물학)는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 MRC 분자생물학 연구소의 존 서덜랜드 박사(화학)는 2015년 발표한 연구에서, "생물에게 필요한 기본적 화합물들은 모두 '물로 가득찬 충돌분화구(impact crater)'에서 합성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참고 3).
그러나 만시 자신은 '실험실에서 뭔가가 일어난 것과 실제로 일어난 것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번 연구의 의미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 "이번 연구에서 재현된 반응이 정말로 중요하려면, 관련된 화합물들의 네트워크에 선택적 이익(selective advantage)이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생물의 화학(nonliving chemistry)이 반응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생명체로 진화한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생명을 탄생시킨 연쇄반응을 정확히 밝혀내는 것은 시간의 지평 너머에서 영원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헤이즌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껏 생명의 기원에 기여했다고 주장된 화학실험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실험도 확정적(definitive)이라기보다는 시사적(suggestive)이다."
※ 참고문헌 1. http://www.sciencemag.org/news/2016/07/our-last-common-ancestor-inhaled-hydrogen-underwater-volcanoes 2. Claudia Bonfio, Jack W. Szostak, John D. Sutherland, Sheref S. Mansy et al., "UV-light-driven prebiotic synthesis of iron–sulfur clusters", Nature Chemistry(2017); http://nature.com/articles/doi:10.1038/nchem.2817 3. https://www.nature.com/nchem/journal/v7/n4/full/nchem.2202.html
※ 출처: Science http://www.sciencemag.org/news/2017/07/how-sunlight-might-have-jump-started-life-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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