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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협주곡-9] 후원과 용역 사이
오피니언 김태호 (2017-07-05)
바야흐로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정책의 틀이 잡히기 전에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하여 영향을 미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정책에는 여러 층위가 있지만, 결국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가장 가깝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개별 연구자와 연구팀에게 예산의 배분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의 층위일 것이다. 여기에 대한 논란은 늘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어 왔다. 연구자들은 연구개발 예산은 많을수록 좋고, 정부는 예산을 지원하되 그 집행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간섭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연구자들의 역량과 선의를 믿고 관료적 통제 대신 연구자의 자율적 관리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쪽에서는 한국의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어났음을 강조한다. 또한 연구비를 잘못 사용한 사례를 허다하게 나열해 가며, 그 막대한 예산의 집행을 자율적 관리에만 맡긴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실 결론이 나지 않을 논쟁이지만, 과거의 역사적 사례들과 견주어 보면 두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양쪽 다 “국가의 지원”이라는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의 지원인지에 대한 생각은 각자 크게 다르다. 크게 다르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과학의, 나아가 전문적 학술 연구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지원(support)의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들이 생각하는 지원은 사실상 후원(patronage)에 가까울 것이다. 후원이란 제도를 통한 공적인 지원이라기보다는 유복한 개인의 자원을 이용한 기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재력을 가진 왕이나 귀족이 자신이 좋아하는 학자나 예술가를 곁에 두고 보살펴 주고, 후원을 받는 이는 생계에 대한 염려 없이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후원이란 사실상 권력자가 눈에 드는 이를 조건 없이 식객으로 두고 보살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류 역사에서 학문과 예술에 대한 후원은 어느 정도 이상의(생산하지 않는 이들을 먹여 살릴 만큼의) 잉여가치가 축적된 사회라면 언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계명구도”의 무리를 거느려 유명했던 춘추전국시대의 맹상군, 에우클레이데스를 후원했던 프톨레마이오스왕, 사마르칸트에 거대한 천문대를 세운 울루그 벡, 티코 브라헤에게 섬 하나를 통째로 내 주고 천문대를 지어 준 덴마크 왕 프레데릭 2세, 갈릴레오를 궁정 수학자로 고용한 메디치가의 코시모 2세 등이 모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인재를 후원했다.

이와 같은 개인적 후원의 특징은 지원과 성과가 정량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후원자는 신뢰 또는 애호에 바탕을 두고 지원하는 것이며, 정량적인 목표를 제시하거나 성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후원 받는 이 또한 자신의 재주를 발휘하여 후원자의 신뢰와 애정에 화답하고자 노력하지만, 그가 얼마나 책임을 다 했는지 정량적으로 평가한다거나, 그의 기여를 그가 받은 지원과 비교하여 그 비율을 환산한다거나 할 수는 없다. 후원이란 무릇 그렇게 수지를 따지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이에 비해 현대 국가에서 과학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은 직접적인 고용(employment) 또는 계약(contract)을 통한 용역에 가깝다. 정부 부처나 산하 기관, 또는 정부출연연구소 등을 통해 국가가 직접 고용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대학이나 연구소와 연구 용역 계약을 맺음으로써 간접적인 고용 효과를 내기도 한다. 한국도 과학기술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번듯한 일자리가 거의 없던 1970년대에 KIST를 비롯한 출연연구소들을 다수 설립하여 해외 유학파의 귀국을 유도했다. 현재는 대학을 통한 용역 계약이 늘어나는 추세다.

직접 고용 모델이 반드시 현대의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도 과학아카데미가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의 집현전이나 관상감, 더 멀리는 압바스 왕조의 “지혜의 집”이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무제이온” 등이 모두 왕이 학자들을 먹여 살리며 운영하던 기관들이었다. 법의 지배가 확립되기 전 전제정치 체제에서는 권력자 개인의 일과 국가에서 제도로서 이루어지는 일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으므로 국가의 고용인지 국왕의 후원인지 확실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굳이 전근대의 용역과 후원을 구별하자면, 목표가 뚜렷하고 성과가 측정 가능하며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그것은 후원보다는 용역에 가깝다. 직접 고용이건 과제 단위의 계약이건, 모두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일을 하는 대가로 급료를 받는 것이므로 넓은 의미의 용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원에 대해 두 가지 생각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후원이나 용역이나 실은 과학자로서는 모두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과학 연구 그 자체를 하면서 보수를 받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학의 역사에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등 뭔가 다른 일을 해서 생계를 해결하곤 했다.

이렇게 지원이라는 말을 서로 다른 의미로 쓰고 있다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이것은 한 쪽이 옳고 한 쪽이 틀리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 배경이 크게 다르므로 단순히 비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늘날 르네상스형 ‘통섭’과 ‘융합’의 인재가 필요하다고 부르짖는 목소리는 드높지만, 지금은 르네상스 시대가 아니다. 따라서 그 시대의 후원 개념을 오늘날 들이대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소수의 천재들이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에는 권력자와 부호들의 개인적 후원으로도 이 천재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다. 그리고 후원자들은 자기 쌈지를 열어 천재를 후원하는 고아한 취미에 대해 누구의 동의와 이해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이에 비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책임과 동의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국가 기구의 투명성. 객관성. 합리성과 같은 가치들은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것이므로,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연구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정량적인 평가가 꼭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두 번째 이야깃거리를 생각해 보자. 국가의 지원 양상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상반된 두 입장은 사실 하나의 전제를 공유하고 있는데, 바로 “한 나라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으뜸 주체는 국가여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와 같은 명제가 통용된 것은 채 한 세기가 되지 않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도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은 부유한 개인이나 기업의 몫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20세기 중반 미국 과학이 세계를 선도하게 되자 순수과학의 혁신이 응용과학으로, 그것이 다시 공학으로 이어진다는 미국 특유의 선형 모형(linear model)이 힘을 얻었고, 다른 나라들도 국가가 정부 예산으로 과학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명제를 참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선형 모형이 유효했다는 것도 20세기 중후반 미국이라는 특수한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서 비롯된 역사적 경험일 뿐, 다른 시대의 다른 나라에서 늘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국의 과학기술 정책이 진정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라면, 금과옥조처럼 여겨 온 이 전제도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이 국가가 과학기술에 대한 으뜸가는 지원자로 남아있는 한, 이 두 가지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과학기술의 혁신에는 틀을 깨는 창조적 작업이 필수적이므로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계량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후원도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과학기술의 특성을 도외시하고 책임을 계량화하며 관리 감독만을 내세우는 것도 관료적 적폐라 할 수 있다. 불후의 명작을 여럿 남겼지만 사실 완전히 끝낸 작품은 거의 없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이는, 오늘날 한국과 같은 방식으로 연구 업적을 평가한다면 제대로 결과보고서를 내고 종료한 과제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당연히 후속 과제는 받을 수 없었을 테고, 학계에 발을 붙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인물이야말로 지금 한국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게임체인저”가 아닌가?

그러나 반대로 국가와 정부의 책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뭔가를 조건 없이 후원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또한 현대 사회의 다방면에 걸친 과학기술 활동 가운데 “틀을 깨는 혁신”은 사실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며, 국가가 지원하고 관리하는 연구 과제 가운데 대다수는 소위 패러다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퀴즈 풀이에 해당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충분히 정상적으로 국가가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것들이므로, 이러한 활동들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후원을 주장하기는 무리다.

평행선은 평행선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온 전제를 벗어난다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지만, 특유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진 한국의 과학기술이 그 가지 않은 길을 택할 수 있을 것인가?


김태호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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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 남궁석, 김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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