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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바이러스와의 군비경쟁, 10억 년간의 진화에 영향 미쳐
생명과학 양병찬 (20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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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유전자조절에 관여하는 단백질은 한때 바이러스와 싸우던 전사(戰士)였다.
바이러스가 각종 방어체계를 극복함에 따라 면역계는 엄청난 진화압력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 장소에 머무르려면 계속 달려야 해!" / © Wikipedia

바이러스와 숙주는 과거 10억여 년 동안 전쟁을 해왔으며, 이 전쟁은 바이러스 자신은 물론 숙주의 면역반응을 극적으로 다양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이제 초기 항바이러스 시스템(antiviral system)들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연구자들은 인간의 세포 속에 (마치 화석처럼) 묻혀있는 잔해 하나를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6월 28일 《Nature》에 기고한 논문에서, "척추동물의 유전자조절을 돕는 드로셔(Drosha)라는 단백질이 바이러스에 태클을 걸기도 한다"고 밝혔다(참고 1). 그들에 의하면, 드로셔와 (드로셔가 소속된) RNAse III라는 효소군(群)은 본래 동물과 식물의 단세포 조상의 몸 속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던 전사(戰士)였다고 한다. "당신은 모든 생물계(界)에의 방어시스템에서 RNAse III의 발자국을 볼 수 있다"라고 이번 연구의 선임저자인 마운트 사이나이 이칸 의대의 벤저민 텐외버 박사(바이러스학)는 말했다.

식물과 무척추동물들은 RNA 간섭(RNAi: RNA interference; 참고 2)이라는 면역반응의 최전선에 RNAse III라는 단백질을 배치했다. 그리하여 바이러스가 숙주를 감염시키면, 이 단백질이 침입자의 RNA를 난도질하여 더 이상 퍼져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척추동물은 다른 접근방법을 택했다. 그들은 인터페론이라는 강력한 단백질을 이용하여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한편, 드로셔와 관련 단백질들은 후방(핵)으로 빼내 유전자 조절(gene regulation)이라는 임무를 맡긴 것이다.

그러나 2010년, 텐외버 박사는 특이한 현상을 하나 목격했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세포에 침입할 때마다, 드로셔가 핵(nucleus)에서 빠져나오는 게 아닌가!(참고 3) "그건 너무나 엽기적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라고 그는 술회했다. 텐외버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나중에 그 연구결과를 재차 확인하고, 드로셔가 파리, 물고기, 식물의 세포 안에서도 동일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세포 방위군

"드로셔는 척추동물의 세포에 침입한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핵을 떠난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텐외버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특별한 세포(유전자조작을 통해 드로셔가 결핍되도록 만들어진 세포)를 바이러스에 감염시켜 봤다. 그랬더니, 바이러스는 다른 세포 안에서보다 더 빨리 증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으로, 연구진은 세균에서 추출한 드로셔를 물고기, 인간, 식물에게 삽입해 봤다. 그러자 드로셔는 바이러스의 복제를 저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드로셔의 항바이러스 기능의 기원이 모든 생물의 태곳적 조상(단세포생물)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시사한다. "드로셔는 모든 항바이러스 시스템의 베타버전인 것 같다"라고 텐외버 박사는 말했다.

텐외버 박사의 생각은 이렇다. "RNAse III라는 단백질은 본래 세균이 자신의 RNA를 관리하는 데 사용하던 것인데, 나중에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에 대항하는 작업에 배치했다." 그에 의하면, RNAse III가 면역반응에 관여하는 현상은 계통수(tree of life) 전체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라고 한다. 심지어 (고세균과 세균이 보유한 항바이러스 도구인) CRISPR 시스템(참고 4) 중 일부에서도 RNAse III의 관여가 관찰된다고 하니 말이다.

식물과 무척추동물은 RNAse III를 RNAi에 사용하고, 척추동물은 인터페론에 의존하여 바이러스를 통제하지만, 이번 연구에 따르면 드로셔는 아직도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새를 찾아오도록 길들여진 골든리트리버라는 애완견이 물에 떠 있는 막대기를 보는 순간, 마치 물에 빠진 오리인 양 물에 뛰어들어 회수해 오는 것처럼 말이다.

미 국립 암연구소의 도널드 코트 박사(유전학)는 이번 연구를 '쿨한 연구'라고 부르면서도, 진화적 시나리오를 납득하지는 못한다. "RNAse III는 거의 모든 생물계에서 많은 일에 가담한다. 따라서 하나의 항바이러스 시스템이 다른 것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예컨대 '하나의 CRISPR 시스템이 RNAse III를 포함하지만, 다른 CRISPR 시스템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RNAse III와 CRISPR는 각각 획득된 것이지 연관관계가 있는 건 아닌 듯싶다"라고 그는 말했다.

"연구진이 제시한 스토리는 매우 흥미롭고, 데이터도 훌륭하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의 진위(眞僞)를 밝히기는 어렵다. 이번 논문을 계기로, RNA와 감염병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텐외버의 가설을 검증하려고 덤벼들 것으로 보인다"라고 듀크 대학교의 브라이언 컬런 박사(바이러스학)는 말했다. "바이러스가 각종 방어체계를 극복함에 따라 면역계는 엄청난 진화압력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연구에 의하면, RNAse III가 면역계의 진화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건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 장소에 머무르려면 계속 달려야 해!"라고 그는 덧붙였다.


※ 참고문헌
1. Aguado, L. C. et al., "RNase III nucleases from diverse kingdoms serve as antiviral effectors", Nature (2017); http://dx.doi.org/10.1038/nature22990
2. https://www.nature.com/news/mammals-chop-up-viral-rna-to-attack-infection-1.13600
3. Shapiro, J. S. et al. RNA 16, 2068–2074 (2010); http://dx.doi.org/10.1261/rna.2303610
4. http://www.nature.com/news/five-big-mysteries-about-crispr-s-origins-1.21294


※ 출처: Nature http://www.nature.com/news/a-billion-year-arms-race-against-viruses-shaped-our-evolution-1.2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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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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