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merican Cetacean Society
폐경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은 딱 세 가지 종(種)이다. 범고래, 들쇠고래, 그리고 인간.
2년전, 과학자들은 범고래가 폐경을 하는 이유가 '새끼를 낳는 것 보다 가족의 생존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번에 새로 발표한 논문에서, 또 다른(더욱 은밀한) 비밀을 밝혀냈다. 그 내용인즉, 다 큰 딸들이 새끼를 낳기 시작하면, 손주와 자녀들 간에 자원 쟁탈전이 벌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 원리가 인간에게도 적용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폐경에 관한 두 가지 관점을 깔끔하게 연결하여, 폐경이 드문 이유를 설명하는 우아한 모델을 제시했다"라고 영국 스털링 대학교의 필리스 리 박사(행동생태학)는 논평했다.
영국 엑시터 대학교의 대런 크로프트 박사(행동생내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2015년 발표한 『범고래의 폐경 연구』(참고 1)를 되돌아보며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 "그 당시 우리는 '나이든 암컷 범고래가 가족을 돕는 방법'과 '폐경 후에도 꽤 오랫동안 생존하는 이유'를 설명했지만, 정작 '범고래가 생식을 중단하는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다"라고 크로프트 박사는 말했다. 예컨대 코끼리의 경우, 나이든 암컷이 딸들에게 지혜와 지식을 나눠줌에도 불구하고 계속 새끼를 낳는다.
연구진은 태평양 북서부에 서식하는 범고래 두 그룹에서 43년간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현상을 관찰했다. 범고래 가족의 경우, 아들과 딸이 어머니와 함께 살며 다른 가족의 범고래들과 혼인을 한다. 일반적으로, 수컷 범고래는 약 30년 동안 사는 데 반해, 암컷은 30~40대에 생식을 중단한 후 수십 년 동안 더 산다. 그래니(Granny)라는 암컷의 경우 최근 무려 105세라는 고령에 삶을 마감했는데, 약 40년 전에 생식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범고래 무리의 리더 자리를 고수해 왔었다.
이상과 같은 가족구조를 감안할 때, "나이든 어머니는 일생의 어느 순간, 성장한 딸들과 동시에 새끼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43년간의 데이터수집 기간 동안 525마리의 새끼들이 태어났는데, 그중 161마리는 모녀가 함께 출산한 사례로서 사망률이 31퍼센트였다. 그런데 이 경우 어머니가 낳은 새끼는 딸이 낳은 새끼보다 15세 이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즉, 나이든 어머니가 낳은 새끼의 사망률은 젊은 어머니가 낳은 새끼의 1.7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 범고래의 세대간 생식갈등
 |
"그건 값비싼 대가로서, 폐경이 진화한 이유를 짐작케 한다"라고 크로프트 박사는 말한다. 생각해 보라. 나이든 어머니의 입장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면서까지 '죽을 가능성이 높은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유전적 유산(genetic legacy)의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 자녀를 낳느니 장성한 딸과 손주들에게 먹이와 (먹이가 많은 곳에 대한) 지식을 나눠줘 생존을 돕고, 손주들의 양육을 거드는 게 더 유리하지 않을까?
연구진에 의하면, 나이든 어머니와 젊은 어머니들 간의 경쟁은 주로 먹이를 둘러싸고 벌어진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녀를 돌보려면 42퍼센트의 자양물이 추가로 요구되는데, 범고래는 사냥터를 공유하기 때문에 자기 몫을 늘림으로써 이 요구량을 충족할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지식으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나이든 어머니가 장성한 딸들보다 먹이(연어)를 찾아 사냥하는 데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사냥해 놓은 먹이를 배분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나이든 어머니가 낳은 새끼의 사망률이 손주의 1.7배라는 점을 감안할 때, 밥상머리에서의 경쟁력은 장성한 딸과 손주들이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후속연구를 통해 밝혀야 할 내용이지만, 장성한 딸과 손주들은 완력이나 빼돌리기 등의 방법으로 먹이를 독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나이든 어머니들은 장성한 딸뿐만 아니라 장성한 아들과도 먹이를 공유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아들들도 자식인데, 먹고 살며 가정을 꾸려야 할 것 아닌가! 나이든 어머니들이 아들을 도와주는 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렇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들이 나은 새끼를 통해) 이웃 집단과의 교류가 점점 더 늘어난다. 한 마디로, 나이든 어머니는 신경 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장성한 딸들의 입장은 어머니와 완전히 다르다. 그녀들은 오직 '눈 앞의 내 자식'만 챙기면 그만이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나이든 어머니가 낳은 새끼들은 무관심과 굶주림 속에서 죽어갈 가능성이 높다"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Current Biology》 1월 12일호에 발표되었다(참고 2).
"이번 연구는 매우 쿨하다. 우리는 지금껏 혈연관계를 생각할 때 협동행동만 생각했지, 세대간 경쟁(inter-generational competition)은 도외시해 왔다"라고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리처드 코너 박사(행동생태학)는 논평했다.
"따라서 범고래의 폐경은 그들만의 독특한 가족구조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독특한 가족관계 하에서는 세대 간의 '협동'과 '생식경쟁'이 공존하는데, 동물계에서는 이런 종류의 가족관계가 매우 드물다. 폐경이 매우 드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인간의 가족구조가 범고래와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지만, '식량의 조달과 공유'에 어느 정도 기초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의 폐경의 근저에도 '협동과 세대간 생식갈등'이라는 두 가지 역학이 도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크로프트 박사는 말했다.
※ 참고문헌 1. http://www.sciencemag.org/news/2015/03/menopausal-killer-whales-are-family-leaders 2. Darren P. Croft et al., "Reproductive Conflict and the Evolution of Menopause in Killer Whales", Current Biology (2017); http://www.sciencemag.org/news/2017/01/study-suggests-surprising-reason-killer-whales-go-through-menopause ※ 출처: Science http://www.sciencemag.org/news/2017/01/study-suggests-surprising-reason-killer-whales-go-through-menopau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