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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구리고갈(copper depletion)을 통한 난치성 유방암 치료
의학약학 봄빛 (2015-07-13)

- 개발사의 경영전략 때문에 지연될 위기에 처한 구리고갈 요법의 임상 3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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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http://openi.nlm.nih.gov/imgs/512/170/3290776/3290776_CDM-13-237_F14.png

▶ 2007년, 간(liver)으로 퍼진 4기 유방암으로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여성 환자가 한 명 있었다. 화학요법으로 원발성 종양을 제거하고 외과수술로 간의 전이성 종양을 도려내 '무병생존(NED: no evidence of disease)' 판정을 받았지만, 의사들은 미세한 원격전이 종양을 제거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환자의 유방암은 공격성과 재발 가능성이 높기로 이름난 「3중음성(triple negative) 유방암」 으로 분류되었는데, 이런 종류의 유방암에 걸린 환자들은 1년 이내에 재발하여 신속히 사망에 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3중음성 유방암】

유방암은 암세포를 증식시키는 원동력에 따라 정의된다. 가장 흔한 원동력은 에스트로겐 및 프로게스테론 수용체(ER , PR)와 HER2이고, 이 3가지 표적을 겨냥하는 약물들이 각각 존재한다. 원동력을 알 수 없는 유방암이 발견되는 경우, 치료할 방법은 별로 없다. 이처럼 ER, PR, HER2를 보유하지 않는 암은 일명 3중 음성(triple negative)이라고 불리는데, 호르몬에 의해 증식하지 않으며 공격성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의사들은 화학요법, 방사선요법, 수술을 실시한 후 종종 하늘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 출처: http://mirian.kisti.re.kr/futuremonitor/view.jsp?cont_cd=GT&record_no=235183

때마침 연이은 임상시험 실패 후에 재기를 노리는 항암제가 하나 있었다. 그 이름은 테트라티오몰리브데이트(TM: tetrathiomolybdate)! 종양의 증식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리(Cu)를 고갈시키는 약물이었다(Science, 15 January 2010, p. 331).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환자는 진행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2년짜리 임상시험에 지원했다. 그 후 임상시험이 여러 번 연장되며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환자는 지금까지 재발의 징후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전체적인 임상시험 결과 역시 괄목할 만했다. 지난 달 웨일코넬 의대(WCMC)의 엘레니 나코스(종양학 펠로)가 미국 임상종양학교 연례회의(ASCO) 석상에서 발표한 보고서(Altering the Tumor Microenvironment: A Phase II Study of Copper Depletion Using Tetrathiomolybdate in Patients with Breast Cancer at High Risk for Recurrence)에 의하면, "「4기 3중음성 유방암(stage IV triple negative breast cancer)」 환자 75명을 5년간(중앙값) 추적한 결과, 62명의 환자들에게서 암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http://slides.asco.org/main/viewpresentation.asp?tpc=0&slide=302902&level=0&from=mtg&view=auth&authid=344772). 일반적으로 「4기 3중음성 유방암」환자들의 생존기간은 몇 개월에 불과하며, NED 상태도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상시험 참가자의 수가 매우 적고 대조군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나코스의 발표는 ASCO에 참가한 전문가들을 술렁이게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들의 재발위험이 매우 높았다'는 점 이었다"라고 시카고 대학교의 올루푼밀라요 올로파데 박사(종양학)는 말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구리 고갈요법(copper depletion)의 전망은 임상시험 결과 때문이 아니라 경영전략 때문에 빛이 바랠 위기에 처해 있다. 임상시험을 이끄는 WCMC의 린다 바흐다트 박사는 「3중음성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싶어하지만, TM의 개발권을 보유한 스위스의 바이오업체(윌슨 세라퓨틱스)가 TM을 윌슨씨병(구리가 축적되는 희귀 유전질환) 치료제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동사(同社)의 CEO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TM의 임상시험을 실시할 계획이 없으며, 서브라이선스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 TM은 실험실에서 쉽게 합성할 수 있으며, 구리의 킬레이트제(chelator: 구리 이온에 결합하여 구리를 불활성화시키는 화합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수의학에서는 (먹이 속에 함유된 구리에 매우 민감한) 양(羊)의 구리 중독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1990년 경 미시간 대학교(UM)의 의사이자 유전학자인 조지 브루어는 윌슨씨병 환자에게 실험삼아 TM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고형암이 증식하고 전이하려면 혈관이 생성되어야 하는데, 많은 연구자들이 '구리가 혈관생성(angiogenesis)을 촉진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면서 암과 구리 간의 관련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브루어는 UM의 동료들과 함께 (유방암에 걸리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암컷 마우스에게 TM을 투여해 봤다. 그 결과 TM을 투여받은 마우스들은 한 마리도 유방암에 걸리지 않은 데 반해, 대조군 마우스들은 절반 이상이 유방암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마우스의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니, TM을 투여받은 마우스들은 전암세포(precancerous cell)들이 혈액을 공급받지 못해 휴면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우스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에 고무되어 다양한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일련의 임상시험이 실시되었지만 번번이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브루어는 TM을 포기하기는커녕 "구리고갈이 미세종양(microtumor)에 더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미세종양은 전이의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하며, 전이성 종양은 원발성 종양과 생물학적 성질이 다르다). 그리고는 TM에 관한 연구 자료를 들고 어테뉴온(Attenuon)이라는 바이오업체를 찾아가 "진정세를 보이고 있는 암 환자의 재발방지용으로 사용해 보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어테뉴온은 '커다란 종양 덩어리를 가진 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실시했고, 임상시험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에 UM 연구진의 연구결과와 '구리가 암의 혈관생성과 전이를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를 접한 WCMC의 바흐다트는 임상 2상을 준비했다. 브루어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TM이 '재발의 위험성이 높은 환자들'에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민간재단과 비영리단체들로부터 연구비를 조달하여 소규모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그리하여 지난 달 ASCO 연례회의 석상에서, 나코스는 "TM이 환자의 혈중 구리농도를 약 50% 감소시켰고, 중대한 부작용을 거의 일으키지 않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TM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항암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TM은 골수 유래 혈관생성 촉진세포(bone marrow–derived, angiogenesis-promoting cells)의 수를 감소시켰는데, 이는 아마도 구리가 이 세포의 성장인자를 활성화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TM의 진가는 전이를 예방하는 데 있다. TM은 종양의 미세 환경을 바꾸는데, 이는 기존의 치료방법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라고 바흐다트는 말했다.
 
여러 바이오업체들이 다양한 버전의 TM을 내놓았지만, 바흐다트는 임상 3상에서 굳이 윌슨 세라퓨틱스의 TM 제품을 사용하려고 하는 이유는, '하루에 한 번만 투여하면 된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윌슨 세라퓨틱스 측은 자사의 TM을 실비에 제공할 용의가 있지만, 임상시험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바흐다트는 최근 미 국방부의 유방암 치료제 개발프로그램에 1,000만 달러의 연구비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우리는 바흐다트의 임상 2상을 적극 지원했고, 임상시험 결과 전망이 매우 밝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는 TM과 암에 관한 문헌들을 꼼꼼히 검토하고 있다"라고 윌슨 세라퓨틱스의 CEO인 조너스 핸슨은 말했다. "우리가 TM의 임상시험을 선뜻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평가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상시험을 지원하려면 뭘 좀 알아야 할 것 아닌가?"라고 그는 반문했다.
 
윌슨 세라퓨틱스가 검토 운운하며 자꾸 뜸을 들이자 바흐다트의 조바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윌슨 세라퓨틱스의 관심은 온통 윌슨씨병에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투자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암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므로, 적절한 때가 되면 임상시험을 지원할 것으로 기대한다. 나는 당장이라도 임상시험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바흐다트는 말했다.
 
※ 출처: Science, 10 JULY 2015 • VOL 349 ISSUE 6244

【구리가 암의 증식을 촉진하는 메커니즘】

구리는 전자를 쉽게 제공하거나 받아들임으로서 핵심적인 생화학 반응을 촉매하므로, 인간의 수십 가지 효소가 구리를 포함하거나 이용한다. 그러나 종양은 구리에 대한 의존성이 특히 크다. 예컨대 구리는 혈관생성(angiogenesis)을 촉진하는데, 혈관은 증식하는 종양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므로 구리를 고갈시키면 암의 성장을 멈출 수 있다.

최근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스위스 프리드리히 미셔 연구소의 낸시 하인스 박사는 2014년 《Science Signaling》에 발표한 논문에서, "구리가 Memo라는 효소에 결합하여 이를 활성화 시킨다"고 보고했다. Memo는 종양세포로 하여금 단독으로 움직여 다른 곳으로 전이할 수 있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듀크 대학교의 연구진은 2014년 《Nature》에 기고한 논문에서, "구리가 돌연변이 BRAF 단백질의 신호전달에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돌연변이 BRAF 단백질은 흑색종의 절반과 다양한 암세포의 증식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듀크 대학교의 연구진은 최근 구리 억제제와 BRAF 저해제를 결합하여 흑색종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시험(1상)에 착수했다.

구리의 역할은 또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교의 야니너 에를러는 "구리를 포함하는 Loxl2(lysyl oxidase-like 2)라는 효소가 전이하는 암세포의 콜라겐 뼈대를 형성한다"고 보고했다. 유방암 환자에게 구리 킬레이제제를 투여한 임상시험에서는, 환자의 Loxl2의 수준이 하락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리가 암의 증식을 촉진하는 데는 이상의 모든 메커니즘들이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특정 암이 구리 의존성 과정에 에 특히 민감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암이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듀크 대학교의 도니타 브래디(약학)는 말했다.

http://news.sciencemag.org/biology/2015/07/cancers-copper-conn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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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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