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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토픽] CRISPR, 뜨거운 감자?
생명과학 양병찬 (2015-06-08)
"강력한 유전자교정 기술 CRISPR는 PCR 이후로 생물학계의 판도를 바꿀 최고의 기법으로 등극했지만, 엄청난 가능성 때문에 되레 우환(憂患)거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소재 글래드스톤 연구소의 브루스 콘클린 박사(유전학)는 연구의 모든 것을 바꿔놓을 획기적 기법을 만났다. 그는 'DNA 변이가 다양한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왔는데, 연구기법이 늘 마뜩찮았다. 환자에게서 채취한 세포를 갖고서 연구할 때, '어떤 시퀀스가 질병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어떤 시퀀스는 단지 배경소음(background noise)에 불과한지'를 알아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세포를 조작하여 돌연변이를 도입하는 것 역시 돈이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유전자 하나를 바꾸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었어요"라고 그는 술회했다.

그런데 2012년, 그는 CRISPR라는 듣보 보도 못한 기법을 설명한 논문 하나를 읽게 되었다(참고 1). 그것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거의 모든 생물체(인간 포함)의 DNA를 신속히 바꿀 수 있게 해주는 구세주였다. 콘클린은 기존의 질병모델링 접근방법을 즉시 포기하고 신기법을 받아들였다. 그의 연구실은 이제 다양한 심장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를 원없이 바꾸며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CRISPR는 모든 것들을 완전히 뒤집어버리고 있어요"라고 그는 말한다.

많은 이들이 콘클린과 같은 생각이다. CRISPR는 생명과학계에서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여느 유전자교정 기법과는 달리, CRISPR는 저렴하고 신속하며 사용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CRISPR는 전세계의 연구실들을 석권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CRISPR를 이용하여 질병치료법을 연구하거나, 까다로운 식물을 만들어내거나, 병원체를 제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등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나는 과학계에 입문한 후 두 가지 혁명을 목도했다. 하나는 PCR(유전자증폭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CRISPR다"라고 코넬 대학교의 존 시멘티 박사(유전학)는 말한다. "1985년 이후 유전공학에 혁명을 가져온 PCR과 마찬가지로, CRISPR는 다양한 방법으로 생명과학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CRISPR의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일부 과학자들은 'CRISPR의 전진속도가 너무 빨라, (실험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윤리나 안전과 같은 주요 문제점들을 논의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명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중국의 과학자들이 CRISPR를 이용하여 인간배아를 조작했다고 발표한 것이다(Nature 520, 593–595, 2015, 참고 2). 그들이 사용한 배아는 생존출산(live birth)이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CRISPR를 인간유전체 교정에 사용할 것인지, 만약 사용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부 과학자들이 좀 더 엉뚱하고 위험한 연구를 예감하며 전전긍긍하는 동안, 일각에서는 '교정된 생물체가 전(全)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CRISPR의 힘은 '뛰어난 접근성'에서 나온다. 그것은 고가(高價)의 장비나 다년간의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CRISPR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라고 스탠퍼드 대학교의 스탠리 키 박사(시스템생물학)는 말한다.

1. 연구혁명

생물학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다른 분자도구를 이용하여 유전체를 편집해 왔다. 약 10년 전쯤, 그들은 "징크핑커뉴클레이즈(ZFNs: zinc finger nucleases)라는 효소가 유전체 편집의 정확성과 효율을 보장해줄 것"이라며 환호했었다. 하지만 ZFNs는 널리 보급되지 않았는데, 브란데이스 대학교의 제임스 헤이버 박사(분자생물학)에 의하면 그 이유는 조작하기가 까다롭고 비쌌기(건당 5,000달러)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CRISPR는 차원이 다르다. CRISPR는 Cas9라는 효소에 의존하며, 표적 DNA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가이드 RNA(guide RNA)를 사용한다. 그리고는 병든 유전자를 제거하거나 원하는 시퀀스로 바꿔치기한다. 연구자들은 종종 RNA만 주문하고, 나머지 요소는 기성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그러니 총 비용이 건당 30달러밖에 안 들 수밖에. "CRISPR는 유전자교정 기술을 민주화시켰다.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CRISPR를 사용할 수 있다. 이건 엄청난 혁명이다"라고 헤이버 박사는 말한다.

CRISPR의 등장으로 ZFNs를 비롯한 기타 교정도구는 졸지에 '지는 해'로 전락했다(☞ 【CRISPR의 부상(浮上)】 참고). 일부 과학자들은 다년간 공들여 연마했던 기술을 미련없이 버렸다. 영국 웰컴트러스트생어연구소의 빌 스칸스 박사(유전학)도 그런 과학자들 중의 하나다. 그는 상당기간 동안 구닥다리 기술을 사용해 왔다. 그것은 1980년대에 개발된 것으로, 배아줄기세포에 DNA를 삽입한 다음, 그것을 이용하여 유전자변형마우스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 기술은 연구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 왔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데다 비싸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러나 CRISPR가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시키자, 스칸스 박사는 2년 전에 CRISPR로 갈아탔다. "약간 섭섭한 건 사실이지만, 너무 행복하다"라며 그는 솔직한 심정을 토로한다.

【CRISPR의 부상(浮上)】

CRIPSR는 본래 세균의 방어시스템의 일부로, 2012년 유전체 교정에 응용될 수 있음이 증명된 후 급속도로 보급되고 있다. 크리스퍼의 상승세를 논문, 특허출원, 연구비조달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논문: 크리스퍼를 다룬 논문은, 다른 유전자교정 기술인 탈렌(TALENs)이나 ZFNs를 다룬 논문을 수적(數的)으로 능가한다.
※ 크리스퍼를 다룬 논문의 상승세는, 생명과학계의 또 다른 핫토픽인 유도만능줄기세포(iPS cell)와 비견된다.

2. 특허출원: 2014년 전세계적으로 크리스퍼를 언급한 특허출원 건수가 대폭 증가함으로써 특허전쟁이 가열되고 있다.
※ 크리스퍼 관련 특허 보유자 Top 5: ① MIT(62건), ② 브로드 연구소(57건), ③ 장 펑(MIT의 생명공학자)(34건), ④ 다니스코(29건), ⑤ 다우 애그로사이언스(28건)

3. 연구비 조달: 미 국립보건원(NIH)이 크리스퍼를 다룬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연구비 규모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 2014년 말 현재 iPS 세포에 대한 연구비 지원액은 1억 6,000만 달러로, 아직 크리스퍼에 대한 연구비 지원액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CRISPR의 부상


과학자들은 전통적으로 마우스나 초파리와 같은 모델동물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는데, 그 이유는 단 하나, 마우스나 초파리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툴킷이 많이 출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CRISPR는 보다 많은 동물들의 유전자편집을 가능케 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3월, 화이트헤드생명과학연구소의 연구진은 "CRISPR를 이용하여 칸디다 알비칸스(Candida albicans)를 연구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참고 3). 칸디다 알비칸스는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진균인데, 실험실에서 유전자조작을 하기가 어려운 걸로 정평이 나 있었다. CRISPR의 선봉장인 UC 버클리의 제니퍼 다우드나 교수는 「CRISPR를 이용하여 변형한 생물 목록」을 갖고 있는데, 현재 이 목록에는 30여 개의 생물들이 등재되어 있으며, 그중에는 파동편모충(trypanosomes)과 바이오연료 생산에 사용되는 효모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워낙 발전속도가 빠르다 보니 문제점도 있다. "과학자들은 CRISPR의 매우 기초적인 특성조차 파악할 시간이 없다. '시스템이 당장 돌아가기만 한다면, 과정이나 이유는 따질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UCSF의 황 보 박사(생물리학)는 말한다. 이는 과학자들이 사소한 문제에서도 곤란에 부닥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황 박사는 최근 두 달 동안 CRISPR를 영상화연구에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해 왔는데, '가이드 RNA 설계를 최적화하는 방법만 알았어도 연구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고 있다. 황 박사가 제기한 문제는 매우 기초적이지만 중요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같은 갭을 '강력한 기법이 치러야 할 소소한 대가'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다우드나 교수는 CRISPR의 안전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문제제기는 2014년에 열린 한 학술모임에서 시작되었는데, 그녀는 이 모임에서 한 박사후연구원의 논문을 예로 들었다. 그 논문에서는 마우스에게 CRISPR 시스템을 전달하도록 조작된 바이러스를 다뤘는데, 마우스에게 바이러스를 흡입시켜 돌연변이를 일으킴으로써 인간의 폐암을 앓는 마우스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참고 4). 다우드나는 이 논문을 보고 소름이 오싹 돋았다고 한다. '만약에 가이드 RNA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는 경우, 인간에게 폐암을 일으키는 CRISPR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도하는 학생이 그런 연구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사람들에게 CRISPR의 위험성을 인식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메모리얼슬론케터링 암센터의 안드레아 벤추라 박사에 의하면, 그의 연구실에서는 안전성 문제를 늘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이드 시퀀스를 설계할 때는 마우스의 유전자만을 선택적으로 겨냥하도록 주의하고, 전달체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생체 내에서 복제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유전체를 절단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가이드 시퀀스라도, 만에 하나 인간의 유전체에 해(害)를 끼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확률이 매우 낮다고 하여 방심하는 것은 금물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2. 의학에 미치는 영향

2014년 MIT의 대니얼 앤더슨 박사(생명공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CRISPR를 이용하여 '인간의 티로신혈증(tyrosinaemia) 관련 돌연변이를 지닌 마우스'의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참고 5). CRISPR를 이용하여 성체동물의 질병을 초래한 돌연변이를 교정한 것은 이것이 처음으로, CRISPR를 이용한 유전자치료법을 인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쾌거라 할 수 있다(【CRISPR 약사(略史)】 참조).

【CRISPR 약사(略史)】
CRISPR 약사

※ 출처: http://www.nature.com/polopoly_fs/7.26734.1433173649!/image/...

'CRISPR를 이용하여 유전자치료를 가속화한다'는 아이디어는 과학계 및 바이오 분야에서는 흥미로운 주제지만, 앤더슨 박사의 연구결과를 찬찬히 읽어보면 CRISPR의 잠재력과 함께 한계점(당면과제)도 눈에 들어온다. 그가 이끄는 연구진은 Cas9 효소와 가이드 RNA를 표적장기(간)에 전달하기 위해 다량의 액체를 마우스의 혈관에 주입해야 했는데, 이것은 인간에게는 실행불가능한 방법이다. 또한 (티로신혈증을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교정된 세포의 비율이 고작 0.4%에 불과하여, 질병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2년 동안 몇 개 바이오 업체들이 「CRISPR 기반 유전자치료」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앤더슨을 비롯한 전문가들은 '향후 1~2년 내에 첫 번째 임상시험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초기 임상시험에서는 CRISPR 요소들을 조직(예: 눈)에 직접 주입하거나, 세포를 몸밖으로 꺼낸 다음 유전자를 교정하여 체내에 다시 집어넣는 방식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후자의 예로는, 조혈모세포의 유전자를 교정하여 겸상적혈구빈혈이나 베타지중해성빈혈을 치료하는 것을 들 수 있다. 효소와 가이드 RNA를 그밖의 다른 조직에 전달하는 작업은 매우 까다로울 것으로 보이지만, 과학자들은 언젠가 CRISPR를 이용하여 다양한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CRISPR를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려면 갈 길이 아직 멀다"며 경고하고 있다. 우선 유전자교정의 효율성을 높여야 하며, 이와 동시에 엉뚱한 유전자를 변화시켜 질병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유전자가위가 엉뚱한 유전자를 절단할 경우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헤이버 박사는 말한다. 이와 관련하여, 메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유전자교정을 연구하는 케이스 정 박사는 'Cas9의 비표적절단(off-target cuts)을 추적하는 방법을 개발해 왔다. 그에 의하면, 비표적절단의 빈도는 세포와 시퀀스에 따라 매우 다르게(0.1%~60%)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비표적절단율이 낮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절단된 유전자가 세포증식을 억제하는 유전자라면, 이 유전자가 절단됨으로서 암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많은 문제점들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만큼, CRISPR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라고 에디타스(Editas: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소재, CRISPR 기반 유전자치료 전문 바이오 업체)의 CEO인 카트린 보슬리는 말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신기술 상업화의 베테랑으로서, 보슬리가 생각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들에게 CRISPR의 능력을 확신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CRISPR에는 이율배반적인 면이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커다란 기대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CRISPR를 임상에 응용할 때는 현실감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3. 농업에 미치는 영향

앤더슨과 동료들이 인간세포의 DNA를 변형하려고 애쓰는 반면, 다른 과학자들은 농업용 동식물의 DNA를 겨냥하고 있다. 유전자교정 기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작업은 세균, 바이러스, 기타 종(種)의 유전자를 동식물의 유전체에 무작위로 삽입하는 방식으로 수행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이런 육종방식은 효율이 낮은 데다, 비판자들로부터 '상이한 종의 DNA를 뒤섞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든지 '삽입된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를 방해할 수 있다'는 등의 비판에 시달려 왔다. 설상가상으로 유전자변형 농산물을 승인받는 절차가 복잡하고 돈이 많이 들다 보니, 대형 상업작물(예: 옥수수, 콩) 외에는 엄두를 내기 힘든 실정이었다.

하지만 CRISPR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CRISPR는 기술의 용이성과 저가(低價)를 무기로 하여 가축은 물론 채산성 낮은 소형 특용작물에까지 파고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과학자들은 CRISPR를 이용하여 '미니 돼지', '병충해에 강한 밀과 벼'를 만들어냈다. 나아가 과학자들은 '뿔없는 가축', '질병에 강한 염소', '비타민이 강화된 오렌지' 등을 만드는 데 한걸음 다가섰다. 다우드나 교수는 자신이 보유한 「CRISPR를 이용하여 변형한 생물 목록」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상업적으로 중요한 농산물은 물론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식물, 나아가 가정용 채소밭에 이르기까지 CRISPR의 활용범위는 실로 무궁무진하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CRISPR의 정교한 교정능력은 보다 정확한 유전자변형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일단 농산물이 출시된 후에는 농업당국이나 농부들조차 변형된 농산물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 "유전자를 교정하게 되면, 유전자가 조작된 농산물을 더 이상 추적할 수 없게 된다. 그럴 경우 '전통적 육종방식으로 변형된 농산물'과 '유전자가 조작된 농산물'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라고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의 제니퍼 쿠즈마 박사(과학정책)는 말한다.

그러다 보니 GM 작물을 반대해 온 사람들이 긴장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들이 유전자교정 동식물을 규제하는 데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경우 FDA는 유전자변형 식용동물을 아직 승인하지 않았으며, 유전자교정 동물의 처리방안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현행법규를 잘 읽어 보면, 유전체편집으로 탄생한 작물이라고 해서 반드시 미 농무부의 규제를 받을 필요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Nature 500, 389–390; 2013). 그러나 지난 5월, 미 농무부는 GM작물의 규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미 농무부가 CRISPR 등의 기술을 감안하여 법규를 재평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제 규제의 창문은 깨졌다. 깨진 창문으로 뭐가 들어올지 궁금하다. 창문은 깨졌지만. 왠지 걱정스럽기보다는 흥미진진하다는 상각이 든다"라고 쿠즈마 박사는 말한다.

4.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CRISPR는 필연적으로 농장을 넘어 생태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관심을 모으고 있는 방법이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다. 유전자 드라이브란 교정된 유전자를 개체군 전체에 신속히 퍼뜨리는 방법을 말한다.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은 현재 초기단계에 있지만, 치명적 질병을 옮기는 모기와 진드기를 박멸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 식물과 제초제저항성 잡초를 제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개체에 일어난 유전자 변화가 개체군 전체에 퍼지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염색체쌍 중 하나에 담긴 돌연변이가 자손의 50%에게만 유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자 드라이브는 CRISPR에 의한 돌연변이가 모든 세대마다 파트너 염색체에도 복사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는 해당 돌연변이 유전자가 야생형 유전자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빨리 개체군 전체에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전자 드라이브】  참조). 예컨대 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돌연변이를 일으킬 경우, 계절이 끝나기 전에 모기집단 전체에 돌연변이를 퍼뜨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만약 그 돌연변이가 말라리아 모기의 생식능력을 저하시키는 것이라면, 모기 집단 전체가 멸종함과 동시에 말라리아 기생충까지도 동반멸종하게 될 것이다.

【유전자 드라이브】

CRISPR 유전자교정 기술은 유전자 돌연변이를 여러 세대에 신속하게 전파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예컨대, 질병을 퍼뜨리는 모기를 박멸시키는 데 응용될 수 있다.

1. 표준 유전
①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부/모와 야생형 부/모는 각각 자녀의 염색체쌍 중 하나에 유전자를 물려준다.
② 자손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할 확률은 50%다.
③ 돌연변이 유전자가 집단 전체에 퍼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2. 유전자 드라이브 유전
① 유전자 드라이브 시스템은 파트너 염색체를 절단한 다음, 수리과정을 통해 돌연변이 유전자를 복사한다.
② 거의 100%의 자손들이 돌연변이 유전자를 보유한다.
③ 돌연변이 유전자가 집단 전체에 신속하게 전파된다.

유전자 드라이브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집단 전체를 변형시키거나 아예 멸종시키는 방법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생태계에 (지금껏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예기치 않았던 천적이 증식하여 더욱 큰 해(害)를 끼치거나, 상위포식자에게 영향을 미쳐 먹이사슬을 교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과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이드 RNA에 돌연변이가 일어날 경우 유전체의 다른 부분을 겨냥할 수 있으며, 이 돌연변이가 개체군 전체에 퍼질 경우 불의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드라이브는 비가역적 결과를 초래하므로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다. 그 대가는 의도하지 않은 것이기에, 다른 종에게 미치는 영향은 계산할 수도 없다"라고 하버의 의대의 조지 처치 박사(생명공학)는 말한다. 2014년 4월, 처치 박사가 이끄는 과학자와 정책 전문가들은 Science에 기고한 사설에서, 연구자들에게 유전자 드라이브 실험의 위험을 경고하고 그 예방책을 제시한 바 있다(참고 6).

현재로서, 유전자 드라이브의 폐해는 먼 훗날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처치 박사의 경고가 나온 지 1년도 채 안 되어, UCSD의 에탄 비어 박사(발생생물학)와 발렌티노 간츠는 초파리를 대상으로 유전자 드라이브 시스템을 설계했다고 보고했다(참고 7). "우리는 좀 더 복잡한 연구에 착수하기 전에, 유전자 드라이브의 원리를 증명하고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은 말라리아 모기 연구에 준하는 안전조치를 취했지만, 처치 박사가 제안한 가이드라인(예: 조작된 변화를 되돌릴 수 있는 장치 마련)을 모두 따르지는 않았다.

비어와 간츠의 연구는 CRISPR로 인한 유전체교정 기술의 민주화가 가져올 파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및 각국의 당국자들은 유전자 드라이브의 규제방안을 꼭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라고 Science 사설의 집필에 참여한 MIT의 케네스 오여 박사(정치학)는 말한다. 미국 과학원 산하 국립 연구위원회는 유전자 드라이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고, 그밖의 고위기관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여 박사는 "과학이 광속으로 발달하고 있는 만큼, 정책이 과학을 따라가지 못하고 뒷북을 칠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유전자 드라이브 문제는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처음 유전자 드라이브 이야기를 듣고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고 앞으로 환경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 보니, 지금보다는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텍사스 A&M 대학교의 미키 유뱅크스 교수(곤충생태학)는 말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과거에 등장했던 신기술을 예로 들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신기술이 나올 때는 늘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다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실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1990년대에 유전자치료법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였지만, 급기야 임상시험에서 한 청년이 희생되면서 몰락하고 말았다. 유전자치료 분야는 한동안 침체에 빠져 있었다가, 최근에 와서야 겨우 회복세를 보이는 중이다"라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제임스 윌슨 박사(의료유전학)는 말한다(윌슨 박사는 1990년대를 휩쓴 유전자치료 광풍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CRISPR 기술은 아직 초기단계에 있으며, 그 잠재력이 실현되려면 몇 년이 더 지나야 한다. 아직은 모색단계에 있는 만큼 생각이 좀 더 무르익어야 한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윌슨은 천생 과학자인가 보다. 그는 이번에도 영락없이 CRISPR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직접 CRISPR를 사용해 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 가능성에 회의를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그는 CRISPR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다. "CRISPR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 한몫 할 것이 틀림없다. 그건 정말 굉장하다"라고 그는 말한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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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Barrangou, R. et al. Science 315, 1709–1712 (2007).
11. Cong, L. et al. Science 339, 819–823 (2013).
12. Mali, P. et al. Science 339, 823–826 (2013).
13. Jinek, M. et al. eLife 2, e00471 (2013).

※ 출처: Nature 522, 20–24 (04 June 2015) doi: 10.1038/522020a(http://www.nature.com/news/crispr-the-disruptor-1.17673)

※ 참고기사: 유전자가위 논란의 배경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355100015&ctcd=C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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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찬 (약사, 번역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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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 댓글작성: 회원 + SNS 연동  
회원작성글 부끄부끄  (2015-06-08 22:16)
1
잘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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