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오피니언
서울대 허대석교수님 글입니다.
foxberek (과기인)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님 글을 페이스북에서 가져왔습니다. 논란이되고있는 부분들을 잘 짚어주셨고, 제가 레지던트와 펠로우 그리고 석/박사를 거치며 관여했던 여러 의학 논문의 과정들이 녹아있어 공감되는 글이었습니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 의학계의 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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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교 2년생이 2주간 인턴을 하고 SCI급 의학논문 제1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의료계는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고 남다른 분노에 휩싸여 있다.
의과대학 교수로서 환자 검체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논문을 쓰는 작업을 약 30년간 지도하면서, 대학원 신입생이 논문을 1년 내에 완성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 상주하는 전일제 대학원생도 2년을 일하고 석사 논문을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른 분야와 달리, 실험을 통해 의학논문을 작성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있고 그것을 위한 기본적인 시간과 노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연구계획 과정이 필요하다. 지도교수와 어떤 주제로 연구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고 관련 분야의 참고문헌을 폭넓게 읽어 이해하는 과정에만 최소한 수개월이 걸린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미 다른 연구자가 수행한 실험을 반복할 위험도 있고, 아무런 의미 없는 연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시약이나 동물 등을 다루는 실험과 달리, 의학연구는 환자의 검체를 확보해야 한다. 검체를 채취하는 과정 자체도 쉽지 않지만, 환자에게 실험에 참여하도록 동의를 받는 과정은 더 어렵다. 이런 이유로 검체 수집에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셋째, 필요한 실험기법을 배우고 익히는 기간이 필요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단국대병원 논문은 genomic DNA 추출, gel electrophoresis, PCR 등의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 숙련된 연구자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실험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인 경우, 하나의 실험기법을 익히는 데만 몇 주씩 걸린다. 또, 기본 술기를 익혀도 믿을만한 자료를 얻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한다.
마지막으로, 논문 작성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험결과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관련 분야의 전문 지식을 토대로 논지를 정리하는 과정이다. 일단 정리된 원고를 영어 논문화하는 과정은 부수적인 일로, 전문성을 가진 native speaker의 scientific editing service 지원을 받아 처리하는 것이 관행화된지 오래되었다.
논란이 된 논문은 2002년부터 검체를 모으기 시작하여, 2008년 12월11일 논문 제출까지 6년 이상 여러 사람의 노력이 투자된 결과물이다. 이 논문에 고등학생이 인턴으로 일하면서 관여할 자리는 없다. 당사자의 천재성여부와 상관없이, 의학논문은 절차적 요건상 2주만에 제1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 사회적 논란이 된지 2주가 경과했음에도 제대로 된 입장표명도 하지 못하고 왈가왈부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한국의학계의 민낯이고 치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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