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오피니언
그 논문에 모욕감을 느낍니다
연구자 (비회원)
외국의 재료 분야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입니다.
이번 고2 학생의 제1저자 논문 뉴스를 보고, 답답한 마음에 한 마디 남깁니다.
엄연한 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두고, 에쎄이니 보고서니 하면서, 제1저자에 문제가 없다고 하는 글들을 보면, 한심하고 답답할 따름입니다. 도대체 논문을 써 보기나 하고 하시는 말인지요? 아니 논문이란 걸 읽고 있는 분야에는 계신지요? 제1저자 연구 논문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한지 모르니까, 아니면 힘 안 들이고 저자에 이름을 올리는 행운을 경험해서, 하시는 말들이라고 이해는 하려고 합니다만, 그런 말을 들으면, 우리가 하는 이 노력들이 모욕감을 넘어 허망하게까지 느껴집니다.
한 편의 논문을 위해, 계획과 실험과 해석에 들이는 노력은 둘째 치더라도, 정리된 결과를 문장과 그림 표현으로 끝맺기 위해 들이는 정성이, 그렇게 가벼워 보이는가 봅니다. 원고의 문장 하나를 고치기 위해 관련 논문을 다시 읽어보고, 단어 하나도 적합한 용어를 쓰기 위해 애쓰고, 주장의 전개와 내용은 논리적인지 몇 번이고 돌아보고, 그리고 한 페이지의 서론을 쓰기 위해 보통 수십 편의 관련 논문을 머릿속에 넣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과정을, 학생 때는 지도 교수로부터 꾸지람을 들어가며 훈련하고, 박사 후에는 투고 잡지의 레뷰어로부터 날카로운 지적을 들으며 성장하지요.
예전에 소설가 이문열이 말한 걸로 기억하는데, 자신의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어느 것이냐고 물으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논문 쓸 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임팩트 팩터가 문제가 아니라, 10년 후, 20년 후에 봐도 부끄럽지 않은 논문을 쓰기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 데이타 하나가 이해 안 되도 처음부터 다시 실험하고, 그렇게 해야, 이 논문에 나온 건 모두 재현 가능한 자연 현상이고, 그 현상에 관한 나의 견해는 이렇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고2 학생이 2주 실험 (또는 영문 교정)하고 논문의 제1저자라고요? 책임 저자가 논문을 얼굴로 안 보고, 한 쪽에 다는 액세서리 정도로 여긴 것 같아, 심한 모욕감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이런 연구 윤리가 이해 안 갈 거라 생각합니다. 보통의 연구자라면, 그런 경우를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열심히 한 게 기특하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아무튼, 매일 발전하시고, 자신과 세상에 공헌하는 논문들 쓰시길 바랍니다.
Bio일정 프리미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