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오피니언
고2학생의 의학논문과 황우석 사태의 공통점
egorak (과기인)
며칠전 새벽에 올라온 동아일보의 철저하게 기획된 한 기사때문에 온나라가 난리법석입니다. 처음 기사를 접했을 때 또 세상이 시끄러워지겠구나 싶었는데 정말로 시의적절하게 올라와 모든 이슈를 삼켜버렸으니 올해의 기사로 뽑혀도 좋을 정도이군요. 하지만 대중들을 던져놓은 떡밥에 몰려들어 아귀다툼을 하는 붕어들 마냥 바라보며 웃고있을 그 언론사의 얼굴이 떠올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요.
여기에서 이 기사가 철저히 기획되었다 함은 그 기사에 쓰여진 언어와 그 이후에 이어지는 기사들을 보면 알수있습니다. 먼저 기사의 요지는 일개 '고2학생'이 무려 'SCIE급 의학논문'을 '영어'로 그것도 '2주만에' 써서 입시에 부정하게 이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성을 건드리는 사건이란 말입니까. 이 기사는 일단 이런 단어들을 나열함으로써 해당분야에 낯선 대중들로 하여금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자격이 안되는 사람'이 '불가능한 시간'에 하였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나왔을 거라는 결론에 성급히 도달한 학부모, 학생, 연구자들의 분노를 자아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말들이 가지는 의미/인상을 누구보다 잘 아는 기자의 선동질이죠. 왜냐하면 그 이후에 언론들이 본질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는 그 논문이 가지는 '배경', '난이도' 또는 그 과정에서의 반칙, 선의의 피해자가 나왔는지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자신이 이 분야에 무지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부족한 정보를 던져주고서 그것만 가지고 추측을 더해 분노를 표출하는 수많은 선의의 학생/연구자들을 이용하는 측면도 있는것 같습니다.
먼저 이 사태를 볼때 간과하면 안되는 사실은 이 논문이 어린 학생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증진 시키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의 산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어린 학생의 수준에 맞게 계획되어진 실험이라는거죠. 처음 기사가 뜨고 호기심에 논문을 다운받아서 읽어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파이펫이 손에 익은 연구자라면 1시간 정도 준비해서 PCR돌리고 전기영동해서 결과 얻는데 많아야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 작업에 그들이 사용한 SPSS로 클릭 몇번이면 끝나는 통계분석이 전부인 실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실험실 체험온 고등학생이 한 2주정도 배워가며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의 실험이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샘플링에 들어가는 시간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이미 논문에 참여한 의대 교수들이 몇년전에 체취하여 냉동고에 가지고 있다가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분들은 그 샘플 사용을 용인하면서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겠죠. 대학원생은 실험을 가르치고 감독한 공으로 이름이 올라간 것으로 보입니다. 논문의 내용이야 기존에 나왔있던 방법을 다시 재확인 하는 정도로, 조건 잡는데도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아 보입니다. 여기서 일단 비전공자들이 '난이도'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은 걷어내야 할것 같습니다. 교신저자인 교수가 다른 저자들이 오히려 이득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2주라는 물리적 시간동안 다른 저자들이 실질적으로 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샘플의 제공이라던가 실험지도등의 공으로 공저자로서의 credit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사실 과학논문을 평가하는데 '방법론의 난이도' 보다는 그 내용의 '과학적 중요성'이 더 중요한데 해당 전공자가 아닌이상 그 논문이 가지는 새로움, 시의성등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이미 말한 대로 기존연구를 반복하는 수준의 내용으로 보아 중요성에 대해 그리 놓은 점수들 줄 수는 없는것 같고 그 결과는 그 논문이 실린 IF 0점대 저널이 가지는 위상에서 어느정도 알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 저널이나 논문을 폄하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인턴학생의 체험학습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는 만큼의 결과가 적절히 평가된 것이란 말입니다. 아마 논문에 참여한 교수들이나 대학원생이 제1저자를 주장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란 말이죠. 딱히 논문의 수가 급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요.
아무리 그래도 그 학생이 Introduction과 Discussion을 주도적으로 쓸 수는 없었을 것이고 교신저자인 교수가 그 역할을 담당했을 것입니다. 또 문제가 되었던 2주라는 시간은 단지 실습/실험 기간을 말하는 것이고 논문작성에 걸린 시간은 저널에 제출하기 까지의 시간으로 보아야 하므로 1년 넘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보입니다.
제가 참을 수 없었던 지점은 선정적인 키워드들을 던져놓고는 정작 그 학생이 얼마나 그 논문에 기여했는지, 그 학생에게 제 1저자를 줌으로써 피해를 본 사람들이 있는지 등에 대한 취재는 없이 즐기고 있는 언론들의 행태입니다. 저도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어느정도의 추측을 가지고 위의 글을 썼지만 지금 분노하고 계신 분들은 그 분노의 방향이 제대로 되었는지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의학논문'과 '고2학생'을 바로 비교함으로써 거기에 덧씌워진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이 분노를 일으킨건 아닌지.
언론들이 과학을 이용하여 여론조작에 이용한 대표적인 예가 황우석 사태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15년전쯤 한 KBS기자가 9시 뉴스에서 한 말이 기억납니다. "네이처, 사이언스 같은 논문은 온라인에서 아무나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저널인데 거기에서 인정한 논문이 잘못되었을리 없다"던 그 기자는 돈 내고 구독신청을 해볼 만큼의 성실함도 없었던지...지금에 와서도 언론들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나 방어한다고 나오신 분들이나 그들을 바라보며 분노하는 많은 분들이 과연 실체가 있는 사실들을 가지고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의학논문', 'SCI(E)', '영어'등의 키워드에 씌워온 막연한 두려움이나 자신들이 처한 삶의 어려움을 이유로 선동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그 논문에 어떤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이상 애써 변호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습니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이상 증거를 가지고 결론을 내는 과학자의 마음으로 관계자에 대한 정확한 취재를 기다리겠습니다. 또한 이제는 그 정도의 논문은 고등학생들의 체험학습으로 넘기고 논문숫자가이 아닌 질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연구환경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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