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진로
서러운 과학 인재...끝없는 '엑소더스'
등등 (비회원)
노컷뉴스 2005.04.12 11:51:30 "최근 정년퇴임한 선배 과학자들의 뒷모습은 제 마음에 사무칩니다. 과학계에 비전이 안 보입니다. 평생 국가를 위해 과학 분야에 종사했지만 남은 건 명예도 부귀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이대로 연구생활을 계속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30대 과학자)"박사 학위를 받고도 2년째 월급 100만원도 못 받고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어요. 먹여살릴 처자식 때문에 더이상의 연구는 못할 것 같습니다."(비정규직 연구원)일류 과학계를 짊어지고 나갈 한국 인재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올 들어 대덕의 출연연구소들마다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10여명 이상씩 연구소를 등지고 다른 직장을 찾아 자리를 옮겼다. 주로 대학과 외국 연구소, 기업체 등으로다. 더군다나 개인의 미래를 위해 출연연 ''탈출''의 길을 택한 이들은 대부분 연구활동이 가장 왕성할 30~40대 핵심 박사 인력들이어서 연구소 경쟁력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박사 인력뿐인가. 더욱 심각한 것은 출연연의 비정규직 비율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처우 개선 문제가 과학계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출연연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비중은 전체의 50%를 상회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비정규직의 임금과 처우는 그야말로 ''사각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과학계 인재들의 사기가 어느 정도인지 연구 현장을 들여다 보자. 우리나라 BT 과학 인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대덕R&D특구의 한 정부출연연구소. 이 연구소의 직원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청년 연구원들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한 연구원이 담배를 피우며 정신을 가다듬은 상태에서 "나, 여기서 이대로 살 수 없어. 선배들을 보니 희망이 없어. 다른 직장을 찾아야겠어..."라는 말을 되뇌었다. 옆에 앉아있던 동료 연구원도 분위기를 타는듯 얼굴을 붉혔다. 이곳에 모인 과학 인재들은 연구소에서 과학자에 대한 희망을 접고 마지막 탈출구를 논의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이들이다. 또 한 비정규직의 사례를 보자. 최근 B연구소에서는 4년차 연구원 C씨가 사표를 던졌다. C씨가 속한 실험실 동료, 선·후배들은 마음만 아팠다. 평소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 왔던 그를 실험실에서 잡아둘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실험실에 잡아둔다고 처우가 개선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해서 연구활동에 한창 물오르는 아까운 인재를 그냥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실험실에 닥친 건 비정규직의 ''설움'' 뿐이었다. 결국 우리나라의 연구인력들에 대한 처우 현실이 한국 과학의 연구불씨를 살릴 과학 인재들을 연구소 밖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C씨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희망을 잊은지 오래다. 자식도 있는데, 더 늦기 전에 빨리 다른 자리를 알아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았다. 퇴직해도 별다르게 뾰족한 대안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왜 떠나는가?..."교수처럼만 대접해줬어도…" 과학자들이 연구 현장을 떠나는 주요 요인중 하나는 ''정년''이다. 지난 IMF 금융위기 당시 박사급(책임연구원급)이 65세에서 61세로 정년이 줄어든 후 노후보장까지 안되기 때문에 나간다는 것이다. 현재 대학교수는 65세가 정년이다.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지난 2003년 정년 퇴임한 L 박사가 과학계의 정년과 관련, 옛 이야기를 들려줬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출연연 연구원을 천직으로 알고 즐겁게 연구에 임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연구단지에서는 ''때마다 연구소를 통폐합한다'', ''민간기업에 판다'' 따위의 얘기가 흘러 다녔지요. 이런 분위기에서 연구원들이 유행처럼 대학으로 빠져나갔어요.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바로 불안한 직장 분위기였죠."그는 박사과정까지 비슷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각각 출연연 연구원과 대학교수라는 직장을 선택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천지차이''로 달라진다고 했다. 수십년을 넘게 연구 현장에서 국부를 창출해온 그 원로 과학자가 한국의 일류 과학을 위해 내놓은 처방은 과학계 정년 보장이다. 그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연구원들이 장기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안정된 일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임금 피크제 등을 활용해서라도 하루 빨리 연구원 정년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금문제도 ''脫출연연''의 큰 요인이다. 퇴직 후 노후생활에 대해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이 연구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지난해 과학기술인공제회가 출범해 확정 기여형 퇴직연금과 적립형 공제상품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연구원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연구원은 "정년이 교수에 비해 4년이 짧아도 퇴직하고 나서 마지막 월급의 70%만 매달 연금으로 준다고 하면 교수로 가지 않을 것이다. 작년에 과학기술인 공제회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세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지금부터 돈을 붓기 시작하는데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서 받겠냐"고 한탄한다. ''정부출연연 혁신을 위한 TF팀''의 지적도 비슷한 맥락이다. TF팀이 연구원 1천500명을 대상으로 출연연 발전을 위해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출연연의 안정적인 연구 분위기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안정적 연구비 부족, 연구원 신분보장 미흡, 정년 및 노후 대책 미비 등 연구원 사기 진작책과 관련한 사항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연구원 정년보장''을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사안(23.6%)으로 꼽았다. 다음으로 안정적 연구분위기 확보(17.3%), 안정적 연구비 확보(15.6%), 연금제도 실시(14.6%), 획기적 임금지급(13.0%) 순으로 나타났다. 그 외 항목으로는 연구연가 직무교육 활성화(6.1%), 출연연 역할 기능 강화(4.9%), 공제사업 개선(3.2%), 창업제도 활성화(1.2%) 등으로 답변했다. B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공무원은 정년퇴임하면 훈포장 받고, 교수는 매년 두둑한 연금을 받지만, 과학자는 아무 것도 없다"면서 "과학자에 대한 처우가 이류, 삼류인데 세계 일류의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는게 신기하다"고 현실을 비꼬아 말한다. 사람이 없다...일류 연구 위한 인력 구성에 ''구멍''인력구성도 문제다. 연구 현장에서는 ''세계 일류 연구를 수행할 고급인력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D연구원의 기관장은 "도대체 쓸만한 사람이 없다.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면서 고급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개탄한다. C연구원 D 책임연구원 역시 "이공계 대학생들이 많이 배출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사람을 뽑으려면 찾을 수가 없다"며 "정부가 이공계 인력 우대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때문에 일부 연구소 기관장은 해외 유명 연구기관과 대학들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해외 우수인력 유치에 적지 않은 투자를 쏟고 있다. 1등 과학한국을 이끌기 위해 기본 밑바탕이 되는 고급인력이 대학에서 배출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다. 과학재단의 한 전문위원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력이 양적으로는 풍부하나 첨단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배출된 인력이 현장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국의 경쟁력은 사람이다. 앞으로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전력 투구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심지어 연구 현장의 한 과학자는 "매년 연구개발비로 투입되는 수조원의 예산중 5%만 과학기술 인력 질 향상을 위해 투자된다면 한국 과학계의 일류 성과는 자연스럽게 봇물을 이룰 것"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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