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진로
대학교 1학년 진로 및 반수고민
민트초코 (비회원)
안녕하세요? 저는 카포 중 하나에 재학 중인 학부 1학년 학생입니다.
주위에 생명과학을 전공하신 분이 없어서ㅜㅜ 여기에 고민글을 올립니다.
긴 글이지만, 꼭 읽고 답변 달아주시면 정말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일반고를 졸업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서, 1학기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한 게 전부라.
연구 활동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 못하고, 과학에 대한 이해도 깊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것 저것 다 잘하지만, 특출한 게 없고, 문이과 성향이 다 있어서, 진로를 정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였는데,
생명과학 수업 시간에 유전이나, 인체의 작동 원리 같은 것을 배우면서, 신비하다는 생각이 들고, 재밌어서 생명의 원리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또, 막연하긴 했지만, 아픈 사람들을 돕는 직업이면 보람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종합대 생명과학과와 과기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든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부터였는데요.
혼자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문제를 푸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내고, 원리에 대해 탐구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가 수과학을 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타임 어택 식으로 문제를 푸는 수능 공부를 하면서, 저보다 적은 시간을 들였음에도 훨씬 좋은 결과를 내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고, 그걸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많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다른 과목들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은 점수가 나와서, 적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결국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종합대를 가지 못하고 과기원으로 오게 된 하나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모든 선생님들이 너가 거기서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졌고, 과목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를 많이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학부 1학년이라, 아직 생명과학과 과목을 수강하지는 못하고 공대기초과목 여러 가지를 수강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좌절감을 맛 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로, 제 능력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너무 크게 느꼈습니다. 저는 시간이 모자라서 풀지도 못한 문제를, 바로바로 해내는 학생들이 많았고, 그 많은 과제들을 다 완벽하게 해내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일반고 학생이 처음에 따라가기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입학했지만, 생각보다 그 차이가 컸고, 다른 일반고 출신 학생에 비해서도 제 능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하면 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사실 그 대단한 친구들도 그저 머리만 좋은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살아 왔고 계속 그러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친구들이랑 같이 공부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많이 배워가는 것 같아 그 점은 너무너무 기뻤지만, 결국 경쟁이라는 게 존재하고 그 속에서 제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이게 맞는 길일까 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생명과학과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해왔던 거랑 현실과 많이 달랐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다, 그저 생명과학이 재밌다고 전공을 생명과학으로 하면 안된다. 전망이 어둡다. 이런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많이 보았고, 사실 지금도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게 사람을 매우 피폐하고 여유 없게 만든다는 점을 어릴 때 크게 겪어서, 이런 점이 고민이 됩니다. 또한 수요가 작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 번째 이유와 같이 뛰어난 친구들을 많이 본 저는 제가 그 경쟁을 뚫고 원하는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제가 원하는 보람을 추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이 솔직히 없습니다. 생명과학과는 복전이나 부전하고 다른 과를 가라는 분들도 많았는데, 과기원에서 생명과학과를 제외한 다른 공대과에 대한 흥미는 없습니다. 애초에 생명과학과를 진학하기 위해 과기원에 온 것이기도 하구요.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의대 반수를 고민 중 입니다.(아니면 다른 과로의 편입이 자유로운 종합대로의 반수를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외 때문에 수능공부도 쭉 해오고 있었고, 교과 전형으로 가면 메이저급은 힘들더라도, 지방의대는 갈 수 있을 것 같기에, 올해 수능을 친다면.. 무모한 도전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딱히 해부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고, 생명과학을 좋아하면 의대 공부도 재밌다고 해서, 적성에 안 맞아 힘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성향 자체도 제너럴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일이 많은데, 의사로서 안정성이 확보된 후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그냥 모르는 것을 배우는 공부가 좋았는데,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매우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잘해야 하는 강박에, 배우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좋아하는 것들을 도전해 보는 삶도 의미 있는 것 같습니다. 의사가 된 후, 제가 원한다면, 기초의학연구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처음 합격했을 때, 이 학교에 내가 인정받았다는 기쁨,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설렘, 저희 학교만의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오는 행복감, 남들과는 다른 꿈을 좇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뿌듯함을 포기하고, 결국 선택권이 없는 보편적인 길로 돌아서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 속상합니다. 부딪쳐보지도 못하고 포기한다는 자괴감도 들고,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오는 즐거움이 좋았는데 그걸 잃어버리는 것 같기도 해요.
나름 생각정리를 하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글이 매우 두서없어서 읽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아직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학부생이 너무 이것저것 재면서 선택을 하는 것 같아 제가 생각해도 우습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깊은 고민 없이 진로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어서, 이번엔 후회 없는 선택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주절주절 글을 적었습니다. 이제 그만 고민하고 싶습니다.ㅜㅜ 고민을 계속할수록 더 조급해지고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혹시나 저와 같은 고민을 하셨던 분이 있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얘기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습니다. 조언을 구할 곳이 없어서 여기에 글을 쓰네요ㅜ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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