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마당 별별소리
실험실 들어온 뒤 3개월이 지난 지금 자퇴에 대해 고민 중입니다...
안녕하세오 (대학생)
뭐부터 적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언을 듣고 싶은데 열심히 하고 계시는 실험실 분들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는 것도 그렇고,
친형에게도 고민을 얘기할 생각이긴 한데 자연과학 전공이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커뮤니티에 먼저 글을 올립니다.
저는 남자 대학원생입니다. 2019년 타 대학원 면접을 보고 합격하여 올해 1월부터 실험실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20살 현역으로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현재 24살 미필이고 식물 관련 실험실에 석박통합으로 들어왔습니다.
학부생 때 자교 식물 실험실에서 1년 동안 학부연구생으로 기초적인 실험을 하면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그 데이터들의 의미를 찾는 것이 재미있었고, 박사님이나 대학원생 형누나들이 하는 일들도 흥미로워보여서 식물 실험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학부연구생으로 1년 동안 실험실에 있으면서 자퇴하는 형도 한 명 봤을 때도 저 나름대로는 대학원 생활을 끝낼 때까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는 교수님과 박사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크긴 했지만 IF 3.6 정도 되는 저널에 주저자로 논문을 제출하기도 했었습니다.
대학원을 진학하는 김에 연구 주제가 흥미롭고, 과학기술원으로 군복무 관련해서 장점이 있는 곳을 선택해서 왔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짐작하고 있던 대학원 생활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학부연구생 때 실험실에는 10명 정도 되는 실험실에 두 명 정도만 외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붙여주신 사수도 한국인이었고, 그래서 실험을 하고 결과에 대해서 디스커션 하는 부분들이 원활하게 진행이 되었었는데 지금 실험실에는 인원도 많고 외국인이 거의 절반 이상 있습니다. 실험실 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별로 분배가 되어있는 느낌인데 제가 들어가게 된 프로젝트쪽에는 외국인이 대부분입니다. 제가 영어로 읽고 쓰는 건 어느 정도 하는데 말하는 걸 정말 못하겠습니다. 지금 사수도 외국인인데 감사할 정도로 도와주시긴 하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설명을 제대로 못하니 너무 답답합니다.
여기 계신 대학원생 분들은 어떠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영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주변 사람들은 '하지 뭐.' 이런 느낌인데 저는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부담이 되더라고요. 이전 실험실에서 논문을 작성할 때는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한국어로 상의를 하고 글은 영어로 쓰는 거라 크게 부담이 없어서 이런 점은 생각을 안 하고 있었습니다. 미팅을 하거나 수업을 할 때에도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만들고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그러려니 하는데 이제 두 명 이상 작업하면서 발생하는 문제 상황에 대해서 영어로 해결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들이 너무 큰 스트레스도 다가옵니다. 외국인 분들이 불친절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된 것들을 조금씩 받아서 진행을 하는데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질 못하니 예전 실험실에서 많이 해서 익숙했던 실험들에서 오류가 자꾸 발생하면서 지연되고 교수님은 이것밖에 못하냐고 닦달내시기도 하고... 세 달 동안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부분들에 좀 많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서 차라리 대학원을 그만 두고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어를 못하겠다는 이유로 자퇴를 생각한다는 게 안일한 생각인 걸까요... 주변 사람들을 봐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은 찾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차라리 석사 과정이었다면 몇 번만 참으면 된다 생각하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은데 3개월 밖에 안 된 지금도 석박통합 과정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부딪힌다고 극복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으니 더 걱정이 되고요. 현역으로 달려와서 대학원 생활은 3개월밖에 안 한 지금 차라리 일찍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교수님은 별생각 없이 말씀이신 것 같긴 한데 미팅 때 제가 일주일 동안 삽질해서 결과가 없으니까(하나는 사수로부터 제대로 전달받지 못해서, 다른 하나는 제 실수로) '너한테 줄 돈으로 업체 맡기면 다 되는 일인데 왜 너한테 돈 주면서 시키겠느냐 주변 사람들한테 안 물어보냐 ~'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자꾸 앞의 문장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흥미가 있더라도 적성이 있어야 좋은 결말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 '따위의' 문제로 이런 고민을 할 바엔 24살에 군대 2년 더하고 이십 대의 4년을 자퇴라는 결정을 교훈 삼아 귀하게 쓰는 게 저한테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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