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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학술상 수상자: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 오병하 교수 (2)
"우수한 젊은이들이 패기를 가지고 안주하지 않기를..."

인터뷰 내용
 - 현재 분야를 연구하기까지…
 -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던 경험
 - 포스닥 시절에 대해서
 - 여유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 과학자가 겸비해야 할 덕목
 - 개인적인 바램이나 희망은?
 - 마지막으로…

일시: 2008년 2월 29일, 오전 10:00

장소: POSTECH 생명동

오병하 교수 약력

현재 분야를 연구하기까지…

"우리가 고등학생 때였던 시절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 때는 식품공학을 꼭 해야겠다, 아니면 과학자가 되어야겠다 라고 해서 대학을 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인터넷도 없었고 정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학에 조금 소질이 있는 것 같다' 또는 '나는 수학을 좋아하니까', '난 공학이 좋은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대학에 가곤 했다.

나는 집안이 원래 예술가 집안이어서 과학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몰랐었다. 굉장히 똑똑해야지만 과학을 하는 걸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동물 기르는 것을 참 좋아했었기 때문에 사실은 축산학과를 갈까, 또는 목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막연한 고등학생의 생각이었다. 목장을 하려면 커다란 땅도 있어야 되는데 그것도 안 되었었다.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 식품공학과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현실적으로 거기 가는 것이 그나마 좋을 것 같았다. 그 때까지는 과학자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리고 그 때는 신군부가 들어서는 암울한 시대였다. 공부하는 것을 자조적으로 생각하고 냉소적으로 생각해서 휴교하고, 탄압당하고 하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밀려서 대학원까지 갔었는데 실험하는 것이 아주 재미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내가 한 만큼 뭐가 나온다는 게 참 재미있어서 계속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과학이 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때는 recombinant DNA technology들이 나오고, 소위 '유전공학'이라고 해서 생물학이 아주 확장되던 때였다. 기초과학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 기초과학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위스콘신 생화학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 때부터 기초과학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과학자가 되어야겠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과학자구나' 라고 생각하고서 이렇게 왔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했던 경험

"연구 분야를 선택하는 것은 과학자라면 누구나 선택해야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화학 쪽을 주로 할 것이냐, 세포 생물학 쪽을 주로 할 것이냐 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모두 다 할 수는 없다. 나는 유학을 가서 그 선택을 해야 했을 때 나의 성격을 생각했다. 뭐든지 명료하게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것으로 생물리학(Biophysics)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NMR(핵자기공명학)을 했다. 박사과정 때 NMR을 가지고 단백질 구조 연구를 했었다.
그러나 NMR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도 사실 한계가 있는데, 구조를 규명할 수 있는 단백질의 분자량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40,000kD 정도가 Maximum size라고 얘기하는데, 40,000kD 이상 되는 단백질들도 많고 단백질 중 복합적인 형상은 그보다 훨씬 더 크다. 그 한계가 싫었다. 한계가 없는 것이 X-ray 결정학이다. 물론 결정을 만들어야 되는 한계가 있지만 단백질 분자량에 한계가 없는 X선 결정학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다. 그래서 포스닥 때부터는 X선 결정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 주로 하고 있는 일이 되었다."

포스닥 시절에 대해서

"포스닥은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의 김성호 교수님 실험실에서 했다. 김성호 교수님은 우리 나라가 낳은 대표적인 과학자이다. tRNA 구조를 연구해서 일약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신 분이다. 지금도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시고, 구조생물학 분야에서 world authority이다. 다행히 그 분이 경험이 없는 나한테 포스닥 기회를 주셔서 배우게 되었다.

김성호 박사님한테 크게 배운 것은 결국 중요한 일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자기가 하는 일 또는 연구가 재미있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impact가 크다 할 수 있다. 그러한 개념을 잘 몰랐었는데 그것을 그 분한테 배웠다."

여유 시간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우리가 하는 일은 9시부터 6시까지 일한다든지, 다 끝내 버리고 그 다음 일을 생각 안 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과학을 하는 것은 계속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장소와 시간에 별 구분 없이 계속 일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여가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다만, 잠깐 도망갈 기회를 만들기는 한다. 영화를 참 좋아해서, 여가가 생기면 영화를 보는 게 아니고, 영화를 볼 시간을 만드는 것이다. 일을 얼른 해 버리고, 2~3시간 짬을 만들어서 보고 와서는 다시 일한다고 얘기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 같다. 운동도 참 좋아한다. 더군다나 체육관이 가까워서 운동을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건강이 좀 안 좋아져서 젊은 사람들처럼 하지 못하고, 대신 많이 걷는다."

과학자가 겸비해야 할 덕목

"먼저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 후학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예스맨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선생 또는 그런 비슷한 사람들이 '이거다' 그러면 그대로 믿지 말고 '아닐 것 같은데' 라고 생각 해 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새로운 것을 밝히는 것이고 문제를 찾아 해결해야 된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그래서 항상 '이건 아닐 것이다' 라는 삐딱한 자세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능력 있는 우수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교육, 즉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육이 참 안 좋다. 그냥 일방적인 수업 방법으로만 배워왔고, 그것이 대학교까지 이어져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을 많이 본다. 도전을 안 해 본다는 것이다. '저것이 정말 맞나?', '저것이 맞다면, 그 다음은 또 어떻게 될까?', '또 요것은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들을 별로 안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자로서 좋은 자세가 절대 아니다. 그래서 예스맨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같은 사람(과학자)들이 어떤 덕목을 가지면 좋을 것인가는 글쎄다. 어느 정도 일한 다음에 정년퇴직하고 말 사람들이다. 그 후에 계속 후학들이 이어서 일을 하기 때문에, 결국 후학들한테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전에 나의 제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 '끝까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근데 그게 나한테 힘이 된다. '내가 열심히 하긴 했나 보다', '계속 그렇게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계속 진화할 생각이고 실험실의 연구 수준을 계속 높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 실험실의 소프트웨어적인 면과 하드웨어적인 면에도 계속 업그레이드해서 진화해야 한다. 약 10년 정도 남았는데 연구 테마도 생물학적으로 더욱더 중요한 거를 찾아가 보려고 한다."

과학발전을 위한 지원책과 정책 방향

"내가 94년에 (한국에) 왔을 때는 우리 나라의 과학 수준, 특히 생물학 수준이 굉장히 일천했고 낮았다. 그러다 갑자기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가 2002년 정도 라고 생각되는데, 한국에서 한 일들이 최고 저널에 나오기 시작했고 요즘은 한 달에 한 두 편은 꼭 나온다. 그 정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게 2002년도 인데, 이러한 경향이 개인 연구비가 증가했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1994년에는 개인이 한 과제당 받는 연구비가 천 만원도 안 됐다. 그러다가 1억이 넘어가고, 2억이 넘어가고, 0이 하나 더 붙게 되었다. 분명히 지원이 과학 발전 진흥에 기여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규모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규모는 크지만 어떻게 나눠주느냐 하는 것이다. 창의과제는 그룹과제가 아닌 개인과제이지만 규모가 아주 크다. 나를 비롯해서 창의과제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참 좋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창의과제보다 규모가 작은 NRL(국가지정 연구실)인데 역시 마찬가지로 개인과제이고, 사람들이 다 좋은 과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개인과제에 비중을 많이 두도록 연구비가 분배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개인과제는 일이 잘되고 못되고에 대해서 개인이 책임져야 되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룹과제는 그러한 것이 희석된다. 또, 그룹 과제는 top-down인 경우가 많아 거기에 맞춰야 되기 때문에 자기가 전문가이든 아니든 마쳐야 될 경우가 생긴다. 그럼 일을 잘 못할 수가 있다. 효율적인 면에서는 개인과제가 그룹과제보다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룹과제도 필요할 때가 있다. 미국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하고 있지만, 개인 과제의 비율이 훨씬 크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연구를 분배 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에도 연구하다 보면 필요에 따라 다른 사람들과 공동연구를 하고 돈이 될 것 같으면 회사랑 같이 공동연구를 한다. 꼭 묶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개인과제로 해도 자연적으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바램이나 희망은?

"내가 연구비를 얘기했지만, 아무리 돈이 있어도 일할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 돈은 빚을 내서도 할 수 있지만, 우수한 인력이 없으면 일을 못하기에 우수 인력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다들 아시겠지만,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고 의학전문대학도 생겨서 그런 것을 오히려 부추긴다. 우수한 학생이 생명과학을 한다고 왔다가도 분위기에 휩쓸려 전문대학 등으로 많이 빠져 나가버리는 것이 참 안타깝다. 나한테도 안타깝고, 그렇게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좀 안타깝다. 의료 행위라는 것은 우리보다 훨씬 테크니컬한 것이다. 테크니컬한 것이 재미있는지, 아니면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생각해보면, 당연히 과학이 더 재미있다. 우수한 학생들이 그 쪽으로 빠져나가는 게 그 사람들한테도 참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젊은 학도들과 대학생들이 패기에 넘쳐야 되는데, 그냥 장래를 걱정하고 안주하려고 하면 좀 답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국가적으로도 점점 지식 기반 사회가 되어가고, 결국 지식이 부를 창출하는 그런 시대가 되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이공계를 사랑했으면 좋겠고, 특히 나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과학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에는 과학을 선택한 것에 후회가 전혀 없고, 참 잘했다, 참 재미있다, 남보다 훨씬 더 좋다, 다른 직업보다 훨씬 좋다, 과학자가 된 것이 좋다 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주저 없이 우수한 젊은이들은 패기를 가지고 안주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관련 사이트: POSTECH 구조생물학 연구실

기자: 박지민
촬영/사진: 이강수
동영상 편집: 유숙희,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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