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영어가 너무 힘들어요...
한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보스턴에서의 교환 대학원생으로 생활하며 가장 어려웠던 점을 3개 꼽자면 그중 하나는 역시 영어가 아닐까 싶다. 사실 미국 본토에서 영어를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 필자는 나름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능이나 각종 공인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스턴에서 겪은 여러 경험을 통해,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하기를 제외한 영역에서 생긴 자신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연구실 생활만 놓고 보면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한국인 포닥 선생님들이 계셨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어로 디스커션을 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랩미팅 발표나 저널 클럽 역시 영어로 진행해야 하긴 했지만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렇게 비교적 평화롭게 연구실 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어느 날, 교수님께서 학과 수업에서 각 연구실 대학원생들이 돌아가며 저널 클럽 발표를 하는데 우리 연구실 차례가 되었을 때 발표를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제안이었기 때문에 한 번쯤 거절을 고려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게다가 연구실에서 유일한 대학원생이었던 지라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겠다 싶었다. 다만 미국 대학원 수업의 분위기가 어떤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발표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래서 발표 전 주에 수업을 한 번 참관해 볼 수 있는지 교수님께 요청드렸고, 그 덕분에 다른 연구실 학생의 발표를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그날 발표를 했던 학생은 미국인이었고, 발표 자료의 구성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영어 발표의 흐름이 너무 좋고 자연스러웠다. 그 발표를 듣고 난 뒤, 다음 주에 발표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온갖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안일하게 발표를 하겠다고 한 건 아닐까?”, “혹시 발표를 망쳐서 교수님께 안 좋은 인상을 남기면 어떡하지?”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더욱이, 영어로 발표할 때 어려운 점은 단순히 발표 자체뿐 만 아니라 질문을 받을 때도 나온다. 만약 질문하는 사람이 너무 빠르게 말하거나 억양이 독특하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답변을 잘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표 전 한 주 동안은 최대한 논문 내용을 빠르게 이해하고 발표 자료를 완성한 뒤, 발표 연습에 집중하고자 했다. 발표 자료 역시 교수님께 보여드리며 피드백을 받았다. 마침내 발표 당일이 되었고, 무척 떨리는 마음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연구실 포닥 선생님들도 모두 와서 발표를 들어주셨다. 발표를 하는 동안 교수님께서 뒤에 서서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해 주셨는데, 그 모습이 돌이켜보면 참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발표를 마친 뒤 수업에 참석한 박사과정 학생들이 질문을 했는데, 그 중에는 필자의 background와는 다른 immunology 관련 질문도 있었다. 부족하지만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답변을 하였고, 연구실에서 면역학을 전공하신 박사님께서 추가로 설명을 덧붙여 주시기도 하였다. 그렇게 발표가 모두 끝났고, 그 자리에 계셨던 교수님들 중 한 분이 농담조로 “You are hired”라고 말해주기도 했는데, 그 말이 기분이 좋게 느껴졌다. 발표가 끝난 뒤 연구실 포닥 선생님들께서도 잘했다고 격려해 주며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보셨는데, 필자는 “정~~말 두 번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연수 기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인으로서 겪는 영어와 관련한 어려움에 관련해서는 교수님께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도 미국에 와서 영어가 한국어처럼 편해지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렸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당시 미국 학생의 발표를 보고 지나치게 걱정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모순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부담 속에서도 발표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경험에 대해 지금은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발표가 끝나고 건물 내에서 후련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보스턴의 풍경! 사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 살다 보면 language barrier로 인해 생기는 어려움은 단순히 일하는 공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정말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음식점에서 메뉴를 주문할 때 점원이 내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든지, 업체에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어가 잘 나오지 않아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러다 보니 미국에서 서러운 순간들도 몇몇 있었다. 한번은 친구와 함께 아침을 먹으러 나가서 sausage croissant을 주문하고자 하였는데 이 메뉴의 이름을 2-3번 반복해서 말해도 점원이 못 알아들어 결국 친구가 대신 말해주기도 하여 주문하기도 하여 민망한 마음에 아침을 먹기도 하였다. 또한, 한 번은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가 bar 자리에 앉아서 먹게 되었는데, 점원이 친구와 나에게 다가와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선 우리의 영어가 서툰 걸 알고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양 옆 자리의 손님들에게만 가서 대화를 이어나간다던지 하는 조금은 서러운 상황들이 있었다. 물론 이러한 상황들 덕분에 (?)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더 부단히 노력했다.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전화 영어를 신청하는 조금은 웃픈 상황이 있기도 하였다. 문제의 sausage croissant과 불편한 마음에 먹었던 스테이크 (그래도 맛은 있었다...) 번외로, 저널 클럽 발표를 했던 시점 즈음에는 핼러윈 시즌이었는데, 유난히 필자의 아파트로 걸어가는 길에 있던 단독 주택들이 집 꾸미기에 정말 진심이었다.. 그래서 이때에는 집까지 데려다주는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30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면서 집 장식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였는데 그중 1등은 아래 사진에 있는 집이었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나름 독특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집 가는 길에 보았던 수많은 할로윈 장식으로 장식되었던 한 집 이렇게 여러모로 일들을 겪으며 어느덧 연수 기간의 절반이 지나가고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8화에서 계속됩니다…
해외에서 연구할 때의 장단점
당신이 AI를 쓰는데도 여전히 바쁜 이유 - 1화
연구자를 위한 AI 생존 키트 연재를 시작하며 ChatGPT가 연구실의 일상이 된 지도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AI를 도구로 활용하지만, 정작 연구자의 밤이 예전보다 여유로워졌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툴은 진화했는데, 우리의 업무 시간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아이러니를 매일 마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연재 [과학자의 말하기]에서 세상과 연결되는 법을 고민했다면, 이번 연재에서는 우리 곁에 온 가장 강력한 도구인 AI와 어떻게 제대로 일할 것인가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단순히 프롬프트를 몇 개 복사해 쓰는 기술보다는, 우리가 AI를 대하는 방식과 순서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연구자가 가치 있는 사유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는 실전적인 전략을 담았습니다. AI는 우리가 반복적인 노동에서 벗어나,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의미 있는 발견을 하도록 돕는 충실한 보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연구실 현장에서 지금 당장 활용할 수 있는 고민과 방법들을 연구자를 위한 AI 생존 키트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공유해 보겠습니다. 다들 쓴다고 했다. 재작년 이맘때쯤, 학회 뒤풀이 자리에서 누군가 말했습니다. “나 이제 논문 초안은 Chat GPT에 맡겨.”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나도 써봤는데 별로던데, 결국 다시 다 내가 쓰게 되더라.” 그로부터 2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연구실에서는 ChatGPT뿐만 아니라 Gemini, Claude, Perplexity 등을 목적에 따라 골라 가며 활용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도구는 훨씬 다양해졌고, AI의 추론 능력과 문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히 그 똑똑한 AI를 매일 켜주고 있는데, 왜 연구실의 야근은 줄지 않을까요? 분명 도구는 진화했는데, 우리의 업무처리 방식은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질문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I를 쓰면서도 여전히 바쁜 이유를 명확히 짚어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더 강력한 AI 모델이 등장해도 우리의 연구 효율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요. 사실 우리는 그동안, 혁신적인 도구를 쥐었지만 정작 그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은 익히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AI를 쓰는데 여전히 바쁜 사람들의 공통점 제 주변의 연구자들을 관찰해 보면, AI를 활용함에도 업무 시간이 좀처럼 줄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패턴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장면은 이렇습니다. AI에 뭔가를 시킵니다. 결과물이 나옵니다. “어, 이건 좀 아닌데.”라며 조건을 바꿔 다시 시킵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팩트를 체크하고, 고쳐 쓰는 일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몇 번의 반복 끝에 문득 깨닫습니다. “이럴 바엔 내가 직접 하는 게 빠르겠다.” 결국 처음부터 혼자 수행했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AI가 일을 줄여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AI의 편집자가 되어 기계가 뱉어낸 결과물을 검수하고 수정하는 업무가 하나 더 추가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진짜 병목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비효율의 굴레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문제는 AI의 성능이 아니라 사용 방식에 있습니다. 첫째, AI에 시키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이 AI를 켜고 가장 먼저 하는 일, 그리고 가장 많이 시키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글쓰기입니다. 논문 초안부터 이메일, 제안서, 보고서 작성까지 우리는 AI에 끊임없이 문장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는 AI가 가장 generic 한 결과물을 내는 영역입니다. 반면 AI가 당신의 시간을 압도적으로 아껴주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구조화와 분류입니다. 흩어진 정보를 정리하고, 카테고리를 나누고, 누락된 변수를 찾아내고, 복잡한 데이터 사이의 논리적 고리를 잇는 일 말입니다. 이런 작업은 AI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며, 지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연구자는 이 부분에는 AI를 잘 쓰지 않습니다. 둘째, AI를 쓰는 순서가 틀렸습니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무언가 시작하기 막막할 때 AI를 엽니다. 논문 방향을 잡아야 할 때, 발표 구성이 안 나올 때, 아이디어가 없을 때 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백지상태에서 AI를 열면, AI는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무난하고 평균적인 방향만을 제시합니다. AI는 학습된 데이터의 확률적 평균값을 따라가는 모델이라, 통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안전한 답안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AI가 내놓은 답이 내 의도와 맞는지 검토하고 판단하느라 시간을 쓰고, 다듬는 데 또 시간을 허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방향을 정한 후 그것을 구체화하는 데 AI를 쓰면 속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AI는 나침반이 아니라 엔진입니다. 엔진을 켜기 전에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오늘 당장 시작하는 실전 AI 활용법 그러면 어떻게 AI 써야 하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비효율의 패턴을 걷어내면 됩니다. 본질적 기능에 집중하십시오. 연구실에서 AI를 활용하는 사례를 보면, 글쓰기 요청, 단순히 자료 요약,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활용은 AI를 그저 자판기처럼 사용하는 일에 불과합니다. 정보의 파편을 그저 덩어리로 뭉쳐 놓기만 할 뿐,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통찰을 만들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AI는 훌륭한 글쓰기 파트너입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가장 마지막 단계여야 합니다. 그전에 AI의 본질적인 기능인 구조화와 분류에 먼저 활용하십시오. 예를 들어, 수십 편의 논문을 단순히 요약하게 대신 AI에서 이렇게 요청해 보십시오. (예시) "이 논문들의 실험 조건, 사용된 샘플 사이즈, 그리고 연구자들이 언급한 핵심 한계점을 매트릭스 (표) 형태로 정리해 줘." 이렇게 구조화된 정보를 얻는 순간, 여러분은 논문 읽는 시간의 70% 이상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논문뿐만이 아닙니다. 복잡한 실험 프로토콜의 변수, 연구 노트 속 정보의 파편 등, 흩어진 데이터를 비교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AI가 현재 시점에서 연구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연구 효율입니다. 막막할 때 AI를 열지 마십시오. 아무런 방향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AI를 열면(일을 시키면), 당신은 결국 AI가 던져준 정보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그 불확실함을 해소하는 데 시간을 다 뺏기게 됩니다. 대신 논문의 핵심 메시지나 실험 결과에 대한 당신만의 해석 등,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의 고민이 어느 정도 구체화하였을 때 AI를 여십시오. 이때의 AI는 비로소 가속 엔진이 됩니다. 물론, 백지상태에서도 AI를 활용하는 팁은 있습니다. 무작정 결과물을 요구하지 말고, AI에 내 실험 결과, 흩어진 아이디어, 풀리지 않는 고민 등을 쏟아내십시오. 투박해도 됩니다. 이 과정은 무언가를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엉킨 실타래 같은 당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 후에 비로소 AI를 가속 엔진으로 활용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이 연재에서 제안하는 방법은 AI를 활용해 연구실의 비효율적인 업무 시간을 최소화하고, 연구자가 더 창의적이고 가치 있는 본질적인 사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실전 생존 전략입니다. 다만, AI라는 새로운 도구의 특성을 탐색하거나 기술과 친숙해지기 위한 과정에 있는 분들이라면, 이러한 활용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AI와 대화하며 실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AI가 연구자를 바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AI를 잘못 쓰는 방식이 여전히 연구자를 바쁘게 만들고 야근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을 뿐입니다. 유튜브에는 “이 프롬프트 쓰면 논문 뚝딱” 같은 영상이 넘쳐나지만, 실제 연구실에서 어떤 순서로, 어떤 맥락에서 써야 하는지를 짚어주는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매일의 연구 속에 녹아들어 실질적인 시간을 벌어주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AI는 당신이 반복적인 노동에서 해방되어, 더 깊이 사고하고,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더 의미 있는 발견을 하도록 돕는 가장 성실한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이 파트너를 제대로 부리는 법을 하나씩 익혀갈 것입니다. 다음 연재부터는 본격적으로 ‘연구자를 위한 AI 생존 키트’를 하나씩 꺼내보겠습니다.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당신의 연구가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뻗어 나가길 응원합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연구자를 위한 AI 생존 키트
3. 공동 1 저자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Wet-lab과 Dry-lab 연구자에 대한 이해 연재 두 번째, “2. 공동 1 저자는 갈등의 시작인가?” 에서 다양한 의견과 경험을 공유해 주신 플라즈마 님, 늘푸른꿈 님, 강시 님, 456 님, YYY 님, Penguin 님, 드로 님, Now4 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조금 예상했던 의견도 있었고 새로운 의견도 있었습니다. 의견 주신 모든 분들께서 wet-lab work와 dry-lab work을 하시는 연구자들의 고충과 기여도에 대해 다양하고 좋은 의견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Dry-lab work에 비하여, wet-lab work이 훨씬 어렵고 노동 집약적이고, 결과 도출도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동의합니다. 개인적으로, dry-lab work이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지, 이 또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Wet-lab work이 dry-lab work보다 고되고 힘든 일이라는 이유로, 저자 순서에서 우선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Wet-lab work 또는 dry-lab 연구자분들은 가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듯하여, 본 연재 주제와는 조금 다른 얘기이지만 세 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합니다. 첫번째 에피소드: 서로 다른 기술을 갖고 있음을 이해하고 공동연구를 진행하면 좀 더 좋은 논문을 발표할 수 있을 텐데요. [그림 1] Wet-lab 그리고 dry-lab 연구자들의 서로 다른 생각들 두 번째 에피소드: 저는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송유라 님의 연재, [해외 연구실 실전편 36]에서 몇 개의 단어를 조금 가져왔습니다. Dry-lab 연구자들을 조금 미워(?) 하시는 듯하여 가끔은 조금 서글픕니다. “바이오인포메틱스 하는 사람들은 데이터 분석을 한다는 핑계로 실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니 가능하면 western blot이나 qPCR 같은 기본적인 실험부터, 적어도 Mouse care까지 경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실험실 일원이니 실험 물품 주문/수령이나, -80 defrosting 참여시켜야 합니다.” 세 번째 에피소드: Dry-lab연구자로서 저는 이런 부탁을 가끔 듣습니다. 화장실 가려 복도를 걷다 보면, 옆 실험실의 PI가 저를 붙잡고 묻습니다. “Hey, how are you? 당신은 바이오인포메틱스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실험실에 조금 오래된 bulk RNA-seq data가 있는데, 분석을 조금 도와줄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일 겁니다. 물론 논문 투고 시 co-authorship에 포함시켜 드리겠습니다.” 잘 모르는 분일지리도 부탁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거절하면,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매정하다. 본인에게 어려운 일 아닐 텐데...” 그렇다고, 수락하고 얘기하다 보면, scRNA-seq 얘기도 나오고, 후속 추가 시퀀싱 계획도 나오고 그럽니다. 연구자 A와 연구자 B의 생각은? 그럼, 본 연재의 주제, 공동 1 저자 결정에 대한 갈등의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현재 많은 실험실에서 어찌하여 공동 1 저자 결정이 갈등이 되고 있는지, 많은 연구자들이 어찌하여 불만을 품게 되는지, 연재 2편에서 받은 의견과 제 의견을 반영하여 연구자 A 그리고 B의 생각을 조금 극단적인 방향으로 서술해 보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의견과 의도를 조금 잘 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댓글에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만일 연구자 A (wet-lab 박사과정) 혹은 연구자 B (dry-lab 포닥)라면, 공동 1 저자 안 받아들입니다. 안 받아들이고 싶은 이유는 여려가지가 있습니다. 연구자 A가 연구자 B의 도움을 받게 되면 반드시 연구자 B에게 공동 1 저자 두 번째 자리를 줘야 하는 원칙이 없듯이, 연구자 B 역시 연구자 A를 반드시 도와줘야 할 원칙도 없고 두 번째 자리를 받아야 한다는 원칙 또한 없습니다. 공동 연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아니고, 연구자 A와 B 모두 자유롭게 본인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얘기하고자 합니다. 연구자 A: “교수님, 저는 현재 박사 과정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이 논문이 앞으로 나의 경력(career)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알고 있습니다. 이 논문을 높은 저널에 발표하고, 이를 실적으로 크고 유명한 실험실에 포닥으로 가고 싶습니다. 공동 1 저자로 논문을 발표하면, 이 논문으로 입증할 수 있는 저의 경력과 실력은 약 50%로 줄어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이오인포메틱스 분석을 제가 직접 익히든지 외주 업체에 맡겨 결과를 얻고, 논문은 제가 다 완성하겠습니다. 안되면, 바이오인포메틱스 분석 계획을 줄이겠습니다. 교수님, 단독 1 저자로 논문 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지도교수: “Wet-lab work을 하면서 바이오인포메틱스를 익혀 직접 하는 것은 시간이 정말 많이 걸립니다. 배우는 것도 결국은 경험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외주 업체에 맡겨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쉬운 분석은 아닙니다. 분석의 양이 많아 일 년은 걸릴 듯한데, 비용도 많이 부담될 듯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석 중간중간 논의 과정을 거쳐 분석 방향도 수정하고 추가 분석을 요구할 경우도 많이 생길 텐데, 그때마다 미팅 잡고 결과 설명 듣고 원하는 방향 이해시키는 것도 매우 어렵습니다.” 연구자 B: “교수님, 저도 공동 1 저자 제안을 따르기가 곤란합니다. 제가 현재 맡고 있는 프로젝트도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연구자 A의 프로젝트에서 요구하는 분석은 절대 단순한 분석 업무가 아닙니다. 연구자 A의 바이오인포메틱스 분석만 매달린다 해도, 중간중간 논의하면서 분석 방향 결정하고, 그림 만들고, 수정하고 결과 작성하려면 제 시간도 많이 뺏기고, 최소 1년 반은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될 공동 1 저자의 두 번째 자리는, 제가 투입한 시간과 노력 대비 실익이 크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연구자 A의 분석을 맡게 되어, 제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진행에 차질이 생기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현재 제 프로젝트 잘 되고 있으니, 집중해서 좋은 논문 내고, 제 경력을 위해 다음 단계로 어서 가고 싶습니다" 지도교수: “그 마음 이해합니다. 그래서 공동 1 저자 자리를 제안하잖아요? 그리고 이 프로젝트는 연구자 B의 연구 경험에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연구자 A: “설령 연구자 B가 bioinformatics 분석 결과를 만들어 준다 해도, 저는 제가 단독 1 저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의 시작, 가설 및 방향 설정, 지금까지의 wet-lab work 진행, 데이터 분석의 필요성 모두 제가 제시했습니다. 더군다나 시퀀싱 데이터도 제가 생산하게 될 테니 **제 데이터입니다** 이미 개발된 분석 tool들 돌려서 단순히 분석을 도와주었다는 공로로 공동 1 저자로 논문의 실적을 나눈다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Wet-lab 실험으로 이만큼 결과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시간을 보냈는지 아시잖습니까?” **제 데이터,** 본인이 실험한 cell line이나 mouse에서 시퀀싱 데이터를 얻었으니, 본인 테이터라고 생각하시는 분을 본 적 있습니다. 저는 그 시퀀싱 테이터가 실험실 데이터이지 본인 데이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시 다른 의견 있으시면 의견 남겨주세요. 지도교수: “연구자 A는 공동 1 저자 첫 번째 저자가 됩니다. 그리고 단순히 분석을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많은 연구 결과를 담은 좋은 논문은 혼자의 힘으로 완성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연구자 B의 공로를 인정해 줘야 합니다.” 연구자 B: “바이오인포메틱스 분석일이 wet-lab 실험에 비해 조금 쉬운 건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이미 개발된 분석 tool들 돌려서 단순히 분석을 도와준다.’라고 얘기하는 건 서운합니다. 그렇게 단순한 일 같으면 wet-lab 하시는 분들도 코딩 간략히 배우고 분석 tool 사용하는 방법 직접 익히셔서 바이오인포메틱스 일도 동시에 하면 되겠습니다. Public WGS 테이터를 dbGaP에서 다운 받으려면, IRB, 데이터 사용 신청서 (Data use agreement) 작성 등의 행정업무부터, 슈퍼컴퓨터 (리눅스), 아마존 AWS S3, 구글 클라우드 다 사용해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WGS, bulk RNA-seq, scRNA-seq, scATAC-seq, Cut&Tag-seq, 서로 다른 multi-omics 데이터 전부 분석해야 하는데, 이 많은 시퀀싱 데이터 분석하고 그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코딩을 해야 하는지 상상이 안 갑니다. 이 많은 시퀀싱 데이터 분석, 절대 1년 반에 마칠 수 없습니다. 이 많은 일을 하고 ‘겨우' 공동 1 저자 얻는다면 저는 사양하겠습니다.” 공동 1 저자는 50% vs 50%라 말하기 어려움 연재 1편에서 설명하였듯이, 공동 1 저자 첫 번째와 두 번째 자리는 동등하게 대우받는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공동 1 저자 두 번째 자리가 기분상 조금 밀리는 느낌을 넘어섭니다. 예를 들어, 일반 2 저자가 될 연구자가 공동 1 저자 두 번째 자리로 투고 전 갑자기 올라온다면 감사할 일지만, 단독 1 저자에서 공동 1 저자의 첫 번째 저자가 된 연구자에게는 절대 행복한 일이 아닙니다. Wet-lab 그리고 dry-lab연구자는 서로 이해해야 Wet-lab 실험, 저도 해 보았기에 결과 얻는 과정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web-lab 실험 연구자들의 시간과 노력이 dry-lab work에 비하여 훨씬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인정을 받고 싶어 하시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연구자 A의 입장에서는 연구자 B에게 공동 1 저자의 두번째 자리를 갑자기(?) 내주는 게 아닌가, 본인이 쌓아올린 연구 업적을 뒤늦게 승차한 연구자 B와 나눠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만이 분명 생길 수 있습니다. 연구자 B 입장에서, 만일 bulk RNA-seq, scRNA-seq 정도의 분석 요청이 들어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web-lab 연구자가 도움 청하면 한 번 정도는 기꺼이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연재 2편에서 소개한 공동 연구의 예는 dry-lab work 분석량이 예상보다 너무 많습니다. 연구자 B는 현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연구자 A와 지도교수의 여러 가지 시퀀싱 데이터 분석 요청을 받아들이면 1.5년 정도를 소요해야 하는데,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연구자 A와 연구자 B는 서로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야 연구자 A와 B의 사이가 돈독하고 지도교수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연구자 A는 공동 1 저자 두 번째 자리를 연구자 B에게 기꺼이 주겠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자 B는 공동 1 저자 두 번째 자리를 흔쾌히 받아들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몇 개월 분석 일을 하다 보면 업무량이 너무 많아 분명 불만이 생기고, 공동 1 저자의 두번 째 자리가 주어지는 대가로 작아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연구자 A입장에서는 연구자 B가 얼마나 고생(?)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처음의 결정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음 글, 연구자A가 공동 1저자 첫번째로 연구를 계속할 때 다음 이야기에서는 연구자 A와 연구자 B가 잘 협력하여 공동 1 저자로 연구를 계속해 나가는 상황이라는 가정에서, 연구자 A가 두려워해야 할 사항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혹시 어떤 상황을 두려워해야 하는지 짐작이 간다면 댓글에 작성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연구의 시작을 연구자 A가 했다 하여, 끝맺음 혹은 결정권이 연구자 A에게 모두 가는 것은 아닙니다.
논문 저자 순서 결정 시 생기는 갈등: 누가 제1 저자가 되어야 하는가?
37. 오늘, 졸업했습니다! - 축제 같은 이 분위기와 함께
사실상 박사생으로서 작성하는 마지막 글. 다음 편부터는 가짜 포닥이 아닌 진짜 포닥으로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3월 24일에 박사 졸업 1차 심사를 통과한 뒤, 공개 청구일 당일까지 믿기지 않을 만큼 바빴다. 누가 1차 심사만 통과하면 덜 바빠진다고 했는지. 할 일이 산더미라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개 청구 날짜를 조율하는 것이었다. 학내 규정상 1차 심사를 마친 날로부터 2주에서 6주 사이에 반드시 공개 청구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가능한 한 빠른 날짜를 잡아야만 했다. 포닥을 위해 지원해 둔 연구비 조건에 5월 1일 전까지 학위를 받았음을 증명하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 처리가 유난히 느린 벨기에에서 두 번의 디펜스를 마치고 학위 취득 서류를 안전하게 4월 말까지 받아야 했으므로 머리가 더 아팠다. 다행히 날짜를 잡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심사위원 교수님들께서 당일에 바로 일정을 정리해 알려주시기도 했고, 나와 교수님이 그중 가장 빠른 날짜를 학교 행정처에 통보하자 그날 대형 강의실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 말도 안 되는 행정 처리들이 한가득 쏟아져 나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싶었다. 안 그래도 프랑스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닌데, 모든 처리를 프랑스어로 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 가장 컸다. 그래도 결국 어찌저찌 잘 마무리했다. 다른 유럽권 국가도 비슷하겠지만, 벨기에는 학위기에 이름과 출생지, 석사 학위를 받은 대학과 석사 학위에 적힌 전공은 물론 현재 벨기에에서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번호까지 들어간다. 문제는 이 정보 중 하나라도 오타가 있으면 학위기가 자동으로 위조된 문서라고 판단한다고 해서, 행정 처리를 하며 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학교에서 이제 모든 서류 처리가 끝나면 사진처럼 공고를 내준다. 공고는 단순히 PDF 파일로 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인쇄해 학교 압인을 찍고 캠퍼스 곳곳에 붙여 둔다. 그뿐 아니라 학교 공식 캘린더는 물론 의과대학 소속인 관계로 대학병원의 스케줄에도 올라간다고 하니, 말은 다 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뒤에는 리셉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우리 학교는 리셉션을 알아서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다행이라면 대형 강의동 홀을 이용할 수 있었고, 모든 시설 사용료는 내부 행사로 분류가 되어 공짜라는 것. 사실 처음부터 디펜스 리셉션은 꼭 한식으로 하고 싶었기에, 벨기에에서 친한 언니를 통해 한식 케이터링과 와인 페어링으로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이제 초대할 사람들에게 연락해 참석 여부필요 만 확인하면, 정말 준비는 끝이다... 교수님과 프레젠테이션을 맞춰 보고, 연습도 두어 번 하다 보니 어느새 공개 청구일 당일이 됐다. 사실 그동안 계속 일을 해야 했으니, 공개 청구일이 그리 특별한 날인가 싶기도 했다. 특히 공개 청구일 전날 오후와 당일 아침에는 지도교수님께서 초빙하신 교수님과 미팅을 하고 세미나까지 들어야 해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오히려 날짜가 확정된 뒤 며칠 동안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며 동료들을 붙잡고 유난이란 유난을 다 떨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얼른 해치워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반, 어차피 내 연구인데 지도교수님을 제외하고 누가 나보다 더 잘 알겠냐는 생각이 반이었다. 소위 말하는 ‘퀸의 마인드’로 밀고 나가는 나를 보고 있자니 참 웃겼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나. 어차피 아침부터 벼락치기를 한다고 해서 더 잘할 거란 보장은 없기도 하다. 이 날 사진은 일로 만나 친해진 친구가 맡아 주기로 했다. 안 그래도 사진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시름 덜었다. 우리 학교는 디펜스 때 정해진 복장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라, 꼭 한복을 입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오죽하면 2024년 말 겨울 휴가로 한국에 갔을 때 생활 한복을 두 벌이나 사 왔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복을 입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또 구색을 맞춰 입겠나 싶어서도 있었다. 공개 청구는 총 45분. 하지만 다행히 마진을 주셔서 50분 정도에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박사과정 중에 쓴 논문 네 개를 꾸역꾸역 다 집어넣은 탓도 있었겠지만, 유독 정이 가지 않던 결과에 대해 준비를 많이 하지 않은 게 가장 큰 탓이었을 것. 내가 발표하는 모습을 보내준 분들이 꽤 있어서 나중에 들어봤는데, 정말 정이 안 간다 싶었던 논문에서 대놓고 버벅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용두사미가 이런 것이었구나 싶은 생각을 좀 했다. 이 날은 당연하게도 사고가 있었다. 캐나다, 미국, 한국 등지에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어 온라인 미팅 링크를 만들어 배포했다. 문제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미팅 시스템이 호스트를 지정해 권한을 몰아줄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가 자꾸 내 마이크까지 꺼 버렸다. 청중 중에는 지도교수님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있어, 메시지로 확인해 달라는 연락이 여러 번 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이크가 켜진 것을 확인하고 발표를 재개하면, 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전체 뮤트를 누르는 대참사가 반복됐다. 결국 내용의 절반쯤 지나서야 더는 전체 뮤트를 누르지 않으셨다는데, 하여튼 예측할 수 없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게 또 묘미가 아닐까. 감동적인 건, 친구들이 ‘그동안 고생해서 박사 과정 끝맺는데, 소리가 안 나와도 피피티라도 보자’고 하며 모두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발표를 마치고 나면, 교수님들께서 학위 수여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강연장을 나가게 된다. 물론 다들 이게 절차상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학위기와 관련 서류에 서명을 하기 위함인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여튼 그렇게 5분 정도 지나 다시 심사위원단이 들어오는데, 장내가 조용해지면 심사위원장을 맡은 교수님이 프랑스어로 학위 수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날씨가 좋았던 2026년 4월 중순에 박사를 달게 됐다. 이 날 정말 여러모로 감동한 순간이 있었다. 결과를 발표하고 나면 교수님께서 단상으로 나가서 편지를 읽어주시는데, 이래저래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나에 대해서 한참 칭찬을 하다 못해 비행기를 태우고 에어쇼를 하시더니, 갑자기 급커브를 틀어 ‘personal anecdote’라며 내 이야기를 하셨다. 연구실 워크숍마다 한식을 만드는 데 도가 터버린 요리사, 귀여운 것들을 모아 연구실에 다 붙여놓은 카와이 헬로키티 (라고 진짜 말했다), 크로스핏을 좋아하다 못해 연구실에서 연구실 비품 정리를 맡게 되었다 등등. 뭐 다시 말하면 교수님께서 나를 얼마나 관찰을 하고 계셨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그나마 들어온 꽃 대부분과 선물 일부는 내리기도 전에 찍은 것. 사실 손님들을 여럿 초대했는데, 일정상 어렵다고 답하신 분들이 많아 참석 인원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디펜스 이틀 전부터 다들 일정이 될 것 같다고 하더니, 당일까지도 확실하지 않다던 사람들마저 나타났다. 심지어 기차와 버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서 나를 위해 와 준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결국 10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을 거의 다 채웠고, 오신 분들과 인사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그뿐 아니라 이날 선물과 꽃을 너무 많이 받아 승용차 트렁크를 채우고도 모자라서 뒷자리를 터야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런 연고도 없던 유럽 땅에서 어쨌든 잘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드랬다. 그리고 함께 든 생각은,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초심을 잃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박사에 지원할 때 ‘환자와 환자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을 잃지 않고, 박사과정 때처럼 열심히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3년 15일간의 가짜 포닥을 청산하고, 이제는 진짜 포닥을 달고 출근을 한다.
영롱한 빨간 맛이 딸기 사탕 맛이 아니었을 때 – 해외 연구실 실전편

동향리포트BRIC VIEW 2026-T12
동물의약품 개발에서 세포외 소포체(Extracellular Vesicles)의 역할과 응용 전망
김정한(우진비앤지(주) 백신연구소)
엑소좀(exosome)을 포함한 세포외 소포체(extracellular vesicles, EV)는 세포에서 분비되는 지질 이중막 구조의 나노 크기 소포로, 유래 세포의 miRNA, 단백질, 지질 등 다양한 생체분자를 운반하며 세포 간 신호전달과 생리적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이러한 EV 기반 기술은 반려동물 의료, 산업동물 건강관리, 축산 생산성 향상, 그리고 동물백신 개발 등 다양한 동물헬스케어 분야에서 새로운 접근법으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중간엽 줄기세포(mesenchymal stromal/stem cell, MSC) 유래 EV는 항염증 및 조직 재생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며, 면역원성이나 종양화 가능성과 같은 기존 세포치료(cell therapy)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세포유래 생물학적 제제(cell-free biologic)로서의 잠재력을 지닌다. 이러한 배경에서 EV는 진단용 바이오마커, 재생의학 기반 치료제, 그리고 면역반응 조절 및 백신 전달 플랫폼 등 다양한 동물의약품 응용 분야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본 리포트에서는 엑소좀을 중심으로 한 EV의 기본적인 생물학적 특성과 분석 기술을 정리하고, 수의의학 및 동물용 의약품 분야에서의 주요 응용 사례(진단, 치료, 백신 등)를 종합적으로 고찰한다. 또한 EV 기반 기술의 산업화 가능성과 규제 환경을 함께 논의하고, 향후 연구 및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와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학회참관기BRIC VIEW 2026-C07
Keystone symposia, Fueling MASH: Metabolic Drivers and Inflammatory Crosstalk
이소빈(연세원주의과대학원)
본 학회에서는 MASLD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tic Liver Disease)/MASH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hepatitis)를 전신 대사질환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면서, 역학적 부담과 질환 분류 체계의 변화, 비침습적 진단 전략, 치료제 개발, 세포 및 장기 수준의 기전 연구를 유기적으로 다루었다. Keynote 세션에서는 MASLD의 글로벌 유병 현황과 동반질환, 비침습적 마커, 최신 치료 전략이 정리되었고, human liver chip과 micro-physiological system이 동물모델의 한계를 보완할 차세대 전임상 플랫폼으로 제시되었다. 이후 세션들에서는 hepatocyte의 대사 조절 기전, stellate cell과 hepatocyte 간 paracrine 신호, macrophage·CD8⁺ T세포·혈소판 등 면역세포의 역할, 그리고 근육·피부·장·뇌와 간 사이의 interorgan crosstalk이 MASH 진행의 핵심 축으로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전반적으로 이번 학회는 MASH 연구가 단일 경로·단일 세포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세포 특이적·단계 특이적·다기관 연계형 연구로 전환되고 있음을 뚜렷이 보여주었으며, 인간 질환에 보다 가까운 모델과 정밀 치료 전략의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하였다.
IBS 유전체 교정 연구단 구본경, 이희탁, KAIST 윤기준, 국가독성과학연구소 우동호 연구팀
Nucleic Acids Research 논문
Bio통신원
우리 연구 현장에서 흔히 들리는 말 중 하나가 "연구비를 땄다"는 표현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과제를 확보한 연구자의 기쁨과 노고가 담긴 말임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따다'라는 동사는 위험하다. 그 안에는 연구비를 승자의 전리품이나 개인 소유물로 여기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뉴스
국가 연구개발(R&D)에서 바이오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과제 수 기준 30% 안팎, 집행액 기준 20% 내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집행 규모만 약 5조원 수준이다.
데일리메디
박사학위를 받아도 독립 연구자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현실의 젊은 연구자들은 학위 취득 후에도 1~2년짜리 계약직 연구를 반복한다. 안정적인 연구직으로 이어지는 경로는 갈수록 좁아지고, 박사후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포닥) 기간은 과학자로 가는 '징검다리'가 아닌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생존의 늪'이 되고 있다.
아시아경제
과학 연구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단순히 자료를 검색하거나 문장을 요약하는 수준을 넘어, 연구자가 살펴볼 만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검증 과정을 보조하는 형태다.
Chosun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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