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이메일
M은 내가 속한 학과의 사무직원이었다. 주로 교수들의 비서 업무를 수행했고 소속 연구원이나 대학원생들의 잡다한 사무 처리도 도와주었다. 출장 신청을 하거나 비품을 살 때, 연구비나 장학금을 신청할 때 모두가 M의 도움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그의 의무라고도 할 수 있는 일인데, M은 부탁받은 일뿐 아니라 상대가 잊어버린 일이나 상대에게 필요하겠거니 싶은 일들을 챙겨준다는 점에서 특별했고 우수했다. 일 처리도 신속했다. 퇴근 전에 그에게 이메일을 보내놓고 가면 다음 날 아침에 내 요청을 해결했다는 혹은 해결 중이라는 답이 오곤 했다. 그에게 일을 맡기면 걱정이 없었다.
아마 나 말고도 모두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나 내게 M은 함께 일하기 편한 상대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그에게서 이메일이 오기만 하면 그것을 유심히 읽었다. 집에 있을 때는 소리 내어 읽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보내다가 막히면 그에게 받은 이메일을 다시 열어 적절한 문장과 단어를 옮겨 왔다. 누구라도 기대하는 평범한 시작, 그다음에 달린 과하지 않은, 그러나 내 사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한 안부 인사, 군더더기 없는 용건, 내가 묻기 전에 설명해 주는 섬세함, 공적인 본문과 나의 건강과 생활을 염려하는 추신. 나는 격식을 갖춘 말투가 따뜻하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서 배웠다.
언제나 정중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이메일이 딱딱하기만 했던 때가 한 번 있었다. 내가 수개월간의 출장에서 막 돌아와 미뤄둔 일들을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 그가 학과 구성원 전원에게 보내는 이메일이 도착했다.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는 사실과 마지막 근무일까지 조금 남아있으니 그동안 맡길 일이 있으면 신속하게 대응하겠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에는 이 학과에 있었던 2년 여의 시간 동안 감사했다는 인사가 있었다. 아주 담백하기 그지없던 이메일. 그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오래도록 후회했다. 이미 한참 늦어버린 일이지만.
만약 그가 스스로 그만두는 결정을 했더라면, 몇 줄 더 적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그만두게 되었는데 참 아쉽다고, 이곳에 있으면서 이러저러한 일들이 참 좋았고 기억날 것 같다고. 서로 각자의 장소에서 힘내자고. 그가 자신의 의지로 그만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그가 떠나고 몇 달 뒤에야 알았다. 내가 그 이메일에 위화감을 느끼고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그에게 물었다면, 아니면 주변에라도 물었다면, 그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은 딱히 비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연구 윤리 위반의 나비효과
M이 퇴직하기 직전의 상황은 이랬다. 어느 교수가 수억 대의 연구비를 부정 사용했다는 사실이 학내뿐 아니라 세간에까지 알려지고, 연구비를 지원했던 기관은 대학 측에 이미 지급한 연구비와 일정 기준에 의해 계산된 가산 금액을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대학은 그 반환 요구에 즉각 대응했고, 연구비 부정 사용의 당사자에게 일부 금액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연구 기관에 대해서는 재정적 지원을 줄이고 회계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다음 분기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연구 기관 내에서 사용하는 소모품은 저렴한 것으로 바뀌었고 각 학과에 지원되던 운영비의 규모가 줄었다. 학생들을 위한 실습도 그에 따라 규모가 축소되었다. 특정 부서들은 대학 내 다른 기관으로 흡수되거나 사라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교원 수도 줄었다. 그런 변화들이 일어나기 전에 가장 먼저 일어났던 일은, 근무 중이던 사무직원이 해고되는 일이었다.
연구 기관 내 모든 학과에서는 한 학과에 배치되어 있던 두 명의 사무직원을 한 명으로 줄이는 결정을 해야 했다. 인사(人事)와 가장 먼 곳에 있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교원들이 무슨 이유로 M을 해고 대상으로 결정했는지 잘 모른다. 그 결정을 발표하던 회의가 아주 형편없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을 뿐이다. 학과의 대표였던 교수는 해당 회의에서 M의 해고 결정을 무미건조하게 말한 뒤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 한 후 회의를 마쳤다고 한다. 해고 자체는 교수의 본의가 아니었으나, 학과 내 누군가는 원치 않는 희생을 당해야 함을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알고 있는 마당에 좀 더 함께 안타까워해야 했다고 다른 직원들은 말했다. ‘교수들은 잘릴 위험이 없으니 남의 일 같겠지’라고 직원 하나가 서운함을 드러냈다.
M의 이메일은 이런 과정의 끝에 쓰인 거였다. 교수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고 자신의 자리에 돌아와 앉은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임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휴게실과 붙어 있던 그의 공간. 누군가 휴게실에 들어올 것을 생각하면 맘껏 욕하지도 울지도 못했겠지. 다시 그의 이메일을 본다. 내가 그였더라도 곧 그만두게 되었으며 감사했다는 말 이외에 달리 선택할 말이 없었을 것 같다.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시의 나는 연구 윤리를 위반한 사람들을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동료들 앞에서 드러냈다. 그들을 향한 분노가 진심이었기 때문이고, 그 일을 마치 가십 다루듯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이나 별일 아닌 양 대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다시 한번 그 사건을 봐주기를 바랐다. 그때는 내 분노와 염원이 내 손익과는 무관한 정의(正義)라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연구자로서 자긍심을 잃고 싶지 않았고, 내가 속한 연구자 커뮤니티의 정당함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발버둥일 뿐이었다. M의 퇴직의 경위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연구비 부정 사용은 연구자로서 자긍심에 상처를 내고 연구자 커뮤니티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연구 기관에 갑작스러운 재정 위기를 가져왔고, 그 일과 전혀 무관한 직원을 해고했다. 직위를 보존하게 된 교원들 이상으로 무고한 사람을. 참 무서운 일이다. 개인의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무고한 희생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 숨어서 일으킨 바람이 의도치 않은 곳에 닿아 어느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폭풍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M이 맞고 있던 폭풍을 금방 알아채지 못한 것은 내 좁은 시야와 마음 탓이었다. M을 향한 존경과는 별개로 그는 내게 ‘우리’가 아니었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내게 일어나는 일과는 별개의 것’이라는 무심함이 내 안에 있지 않았을까. 그가 퇴직 사실을 알린 이메일에 대해 내가 고심하다 보낸 답장은 그 무심함의 결정체였다. 나는 ‘앞으로 뵙지 못하게 되는 것이 정말 아쉽지만, 더 좋은 일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응원하겠습니다’라고 쓰고 말았다. 그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그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퇴직이 그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알았다면 절대 쓰지 않았을 말이다. 그에게 곧 답장이 왔다. 그는 내 이메일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하거나 해명하지 않았다. 나의 좋은 점을 칭찬해주고 연구자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보겠다며 응원해 줄 뿐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정중하고 따뜻하게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이메일을 정정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와 이메일로 마지막 인사를 주고받은 후 직접 얼굴을 보고 인사해야겠다 싶어 몇 차례 그의 오피스를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그는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 중이었다. 결국 그의 퇴직 일주일 전쯤 집에서 구운 치즈케이크를 포장해 그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그에게 케이크 정말 고맙고 잘 먹었다는 이메일이 도착했고 나는 그 이메일에 마음이 충만해짐을 느꼈다. 부끄럽게도.
그 부끄러움—M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의 마지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착각했던 것—을 친구에게 고백하자, 친구는 M을 향한 나의 부끄러움이 그가 해고된 사건을 실제보다 더 중대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나를 안정시키기 위한 말이었을 테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부끄러움은 그 사건을 또렷하게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일 뿐이다. 나는 친구에게 전한 부끄러움보다 훨씬 큰 감정에 압도되어 있다—무력감. 내가 M의 해고 사실을 이미 알았더라도, 그래서 그를 위로하는 적절한 답장을 보냈다 하더라도, 그래서 지금처럼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되었더라도 무언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삶이 뒤흔들린 개인을 위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은 계속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