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연구원들이 필수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연구과제 보고서다. 속해있는 연구실, 연구 기관에 따라 그 양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매년 이맘때쯤이면 연구과제 보고서를 시작하면서 1년을 되돌아보게 되는 게 연구원들의 연말정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고서는 주로 연구과제가 어디서 돈을 주느냐에 따라 다르다. 국가연구원, 과학원, 정부지자체, 혹은 사기업. 분량과 형식은 가지각색이다. 또한 2개 이상의 협력된 가관들이 있다면 보고서를 부분별로 나누어 작성하기도 한다. 장기간의 과제라면 초반의 몇 해는 간략한 보고서로 마무리할 수도 있겠지만, 연구과제가 끝나는 해는 다르다. 최종보고서는 책 한 권 정도의 분량을 거뜬히 요구했다. 게다가 작성하다 보면 부족한 데이터나 추가실험이 필요한 경우도 발견되었다. 그럴 때면 안 그래도 촉박한 일정을 더 쪼개고 쪼개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곤 했다.
처음 연차보고서를 쓸 때 있던 일이었다. 처음 쓴 보고서는 연구과제 1차 연도 보고서였고, 10장 이내 정도의 짧은 분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내가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하면서 봐왔던 보고서의 형식이 아주 딱딱하고 체계가 옛날 방식이었던 것이었다. 보고 배운 것이 그것뿐인지라 아무리 선배들의 연구보고서를 여러 개 참고하여도 예전의 틀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때는 그게 정말 마음에 안 들었었다. 더 고치려면 고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시간도 부족하고 일정도 촉박했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다음에는 더 열심히 하고 말겠다, 다짐했던 것이 보고서와 나의 첫 대면이었다.
혹자는 그동안 학술발표했던 내용이나 작성했던 논문에서 취합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어디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료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수정되어 적용되어야 했는데, 그걸 수정하는 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보고서 작성 시에 항상 가장 먼저 시작했던 그래프 이미지 다시 수정하기
그래프를 수정할 때 있었던 일이다. 실험에 대한 그래프 여러 개를 동일한 양식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때, 한동안 열심히 배웠던 R을 이용하여 그래프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기본적인 그래프는 얼추 잘 그렸었는데 문제는 R에 넣기 위한 엑셀파일을 수정하는 데 있었다. 미생물 배양실험 결과는 대부분 시간 순으로 많이 나타나 있고, 시간에 따라서 물질 생산, 혹은 생장 변수와 관련된 데이터를 그래프로 제작하게 된다. 실험 세트가 늘어날수록 데이터가 복잡해진다는 뜻이다. 어느 순간, 똑같은 명령을 넣어도 똑같은 양식의 그래프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다시 파워포인트로 그 이미지 파일들을 불러와서 다시 하나하나 수정해야 하는 작업을 거쳤다. 왜 프로그램은 진화한다는데 나는 여전히 노가다로 마우스질을 하는지. 매년 이 과정을 거치면서 다음 보고서 쓰기 전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다른 프로그램들을 배우고, 다른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하면서 제자리걸음을 한다. 새로운 것을 하나 더해서 배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느끼게 된다. 이걸 넘어서야 또 한 단계 성장할텐데 올해의 나는 여전히 이 자리구나, 를 느끼며, 마음속으로 눈물 흘리며 보고서를 작성한다. 울고 반성하는 건 나중일이다. 보고서는 완성해야 하니까.
연말이다. 나는 올해 연구과제를 마무리하면서 최종 연구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대략 2년 동안 했던 실험결과들을 다시 확인하고, 작성했던 논문, 발표했던 발표자료와 포스터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부족한 데이터는 없는지, 생략해야 하는 부분은 어디인지, 꼭 들어가야 하는 결과와 고찰은 어떤 게 있는지 정리하고 있다. 2년간 실험을 하면서 이 데이터들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는지 고민하던 것들이 어떠한 의미를 갖게 되는 걸 보면서 지난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앞으로의 방향성을 결정하게 되는 일이 되었다.
연구를 계속하는 한, 우리들의 연말은 항상 보고서로 마무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이제 이 시즌이 지나면, 이제 곧 새해가 온다. 새해는 설렌다. 새로운 연구과제도, 계속하는 연구과제도 마찬가지다. 새로 들어오는 연구비와 다시 시작하며 1년을 계획하는 시간을 계획하다 보면 작년보다는 좀 더 나아진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이번 연말이 지나면, 다가올 새해에는 또 어떤 연구를 마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