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 같은 재능 vs 애매한 재능 ]
나는 어린 시절, 늘 확실한 장래희망을 가진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어떤 분야에서 뚜렷한 재능을 보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길을 택하기만 하면 되는 운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내세울 만한 뚜렷한 재능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나에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애매한' 재능들은 가장 큰 고민이자 스트레스였다. 진로를 선택하는 시기가 오자 고민은 더 깊어졌고, 결국 나는 생명 분야를 전공하게 되었다.
[ 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
다소 열려 있는 선택지들 속에서 나는 어떤 근거로 생명 분야를 전공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을까? 대학교 4년과 대학원 5년이라는 시간을 휴학 한 번 없이 달려오다가, 그 길의 끝에 다다라서야 처음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돌아보니 내가 생명 분야를 전공하고 싶었던 데에는 특별한 계기나 뚜렷한 근거, 혹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 생명 분야의 길에서 박사과정까지 밟는 것은 나의 계획 밖의 일이었고, 어쩌면 관성처럼 가던 길을 그냥 걸어온 것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나누다 보면 늘 화두에 오르는 주제 중 하나는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할 것인가, 제너럴리스트가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산업화와 전문화가 진행되며 특정 분야에 깊이 있는 지식을 가진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하게 됨과 동시에, 다양한 분야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연결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더 나아가 융합과 포괄을 통해 다양한 분야가 서로 연결되고 협업해야 하는 흐름 속에서 제너럴리스트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부러워했던 뚜렷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자라서 스페셜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고, 나와 같이 애매한 재능을 가진 나는 제너럴리스트로 성장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러나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는 것은 보통 제너럴리스트보다는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해 나가는 길로 여겨지며, 이를 깨달았던 대학원 5년 차에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이것저것 기회가 될 때마다 모아 온 나의 애매한 재능들은 나를 제너럴리스트에 더 가깝게 만들었지만, 내가 선택한 박사 학위의 길은 보다 스페셜리스트에 어울리는 길이었다. 어디에도 나의 길이 없을 것만 같아서 조바심이 났던 나는, 더욱더 내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가 아닌 다른 길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무료 코딩 수업이나 생명정보학 수업 또는 데이터 분석 수업을 수강했고, 관련 스터디 그룹을 찾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빙산의 일각이지만 그 분야를 경험하며 기초 지식과 실력을 쌓아갔다. 한편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각종 네이밍 공모전이나 캐치프레이즈 공모전에 도전하며 여러 번의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나는 더욱 나의 애매함을 키워가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 애매한 스페셜리스트 ]
그렇다고 해서 박사학위라는 스페셜리스트의 길에서 나의 애매한 재능들이 영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나의 애매한 재능들은 매 순간 서로 힘을 합쳐 나를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나는 디자인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데이터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편하도록 도표를 제작하는 것을 잘한다. 또한 프레젠테이션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PPT 구성과 의미 전달을 잘하며, 데이터 분석 전문가만큼은 아니지만, 각종 데이터 분석 도구를 활용하여 흩어져 있는 데이터들을 모아 정리하고 연결하여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을 잘한다. 이러한 나의 애매한 재능들 덕분에, 스페셜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학위 과정 동안 포스터 발표도 잘 해내고, 논문들도 게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나의 애매한 재능들과 나의 박사 학위가 함께 사용될 수 있는 적절한 곳이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껏 해왔던 대로 가능한 넓은 시야를 유지하고, 폭넓은 사고를 행한다면 어딘가에서는 나와 같은 애매한 스페셜리스트를 원하는 곳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을 한창 하던 당시, 우연히 마주친 유투버 이연님의 ‘애매한 재능으로 충분히 성공하는 법’이라는 주제에 대한 영상도 이러한 나의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다. (애매한 재능으로 충분히 성공하는 법) 우리가 애매함을 꾸준히 쌓아 나가다 보면, 그것들이 모여 자신만의 독창성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 시기부터 나는 지금처럼 애매한 재능들을 꾸준히 쌓아 나가고, 이 재능들을 조각조각 기워내어 나에게 딱 맞는 멋진 옷을 만들어내 보자고 다짐했다.
[ 애매하다는 것 ]
사실 애매한 재능에 대한 나의 고민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학원을 졸업하기 전만큼 조바심이 나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같은 분야에서 다양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들을 접하면서 세상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수많은 갈래의 길이 존재하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재능들을 모아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애매하다는 표현의 사전적 의미는 ‘희미하여 분명하지 아니하다.’이다. 그리고 한자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할 애’, ‘어두울 매’ 자로 구성되어 있다. 즉, 우리가 스스로의 재능에 ‘애매한’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재능에 빛을 비추는 방법을 아직 모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둡고 희미하여 과소평가하고 있을 뿐이지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 그러니 애매하다는 것으로 스스로의 재능을 무시하지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애매한 재능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법을 고민해 보자.
@ Image by Mohamed Hassa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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