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계에 첫 발을 들이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게 되면 주어진 일을 익숙하고 잘하게 된다. 그 결과 눈앞에 일만 보게 되었던 시야가 자연스레 넓어지면서 숲을 보게 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성공적인 신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거시적인 질문이 자연스레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성공적인 신약이란 무엇일까?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에서는 여러 가지 발견, 약물 개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사람의 목숨을 많이 구한 순으로 선정 사유를 밝혔다. 약이라는 본질의 가치에 주목한다면 사람을 더 많이 살릴수록 성공적인 약물이 될 것이다. 아니면 그동안 불치의 영역에 있던 질환에 대한 약물이 개발된다면 역시 성공적인 신약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약 회사의 문법에서는 조금 다른 표현을 쓴다. 바로 ‘매출액이 높은 약’이다. 단순히 제약 회사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가 아니다. 글로벌 제약회사는 수많은 판매약들을 가지고 있지만 약물 개발 비용, 기간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투자를 상쇄하고도 이익을 주는 약은 소수에 불구하다. 이런 관점에서, 블록버스터라고 불리고 있는 한 해 매출 10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약품들이 제약 회사가 지속적은 신약을 개발해 줄, 그리고 이익이 조금 덜 되더라도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지속적인 신약 개발을 하는데 바탕이 된다. 그렇기에 블록버스터를 얼마나 많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는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2021년 기준 매출액이 가장 높은 약은 애브비(Abbvie)의 휴미라(Humira, 성분명 adalimumab)로 류마티스 관절염을 포함하는 수많은 자가면역 질환들에 대한 적응증으로 승인을 받아 2021년 한 해에만 200억 달러(한화 25조 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했다. 하지만 2023년 바이오 시밀러 출시를 앞둔 휴미라는 매출이 꺾일 것으로 예상이 되고 매년 매출이 성장하는 머크(MSD)의 키트루다(Keytruda)가 곧 매출액 2위에서 1위로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키트루다는 2021년 한 해 17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며 머크의 2021년 매출이 487억 달러임을 계산하면 키트루다 단일 품목이 전체 매출의 3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키트루다 매출 추이, 출처: statista>2014년에 흑색종을 대상으로 처음 승인된 키트루다는 그 해 매출 550만 달러를 보였다. 이듬해 애 10배의 매출 상승을 보인 키트루다는 압도적인 매출 증가를 보이며 지금까지 2 자릿수 이상의 성장을 매해 보여주고 있다. 이런 키트루다는 가장 먼저 승인된 면역 항암제가 아니다. 이미 BMS (Bristol Myers Sqibb)에서는 CTLA-4를 타깃 하는 여보이(Yervoy, 성분명: ipilimumab)를 2011년에 출시하여 면역 항암제에 대한 경험을 먼저 쌓아오고 있었고 PD-1 항체인 옵디보(nivolumab)의 임상시험을 위한 IND도 머크보다 4년이나 먼저 신청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옵디보(2011년 매출 85억 달러)를 비롯한 로슈의 티쎈트릭 등 여러 항암제를 제치고 압도적인 판매 1위 약품이 될 수 있었을까?
바이오 전문 매체인 '키트루다 스토리' (저자: 김성민)은 여기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바이오 마커 그리고 과학-
이 책은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신약 마켓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적 힌트를 준다. 저자는 수년간 쌓아온 조사를 바탕으로 머크가 비임상/임상에서 얻은 과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입지를 다져갔음을 보여준다. 기초과학에 있던 사람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산업계에서는 아카데미만큼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지 않고 이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머크는 탄탄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허가와 마켓에서 승리를 가졌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머크는 철저하게 바이오마커를 통해 명확한 환자 기준을 가지고 과학적 임상시험을 진행하였다. 머크는 NSCLC 환자의 종양에서 PD-L1 발현율이 50% 이상일 경우에만 키트루다 투여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환자 중에서 아주 전체 환자의 23% 밖에 안 되는 극소수이다. BMS는 이에 반해 >5%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승인받을 수 있는 환자 수를 늘리려고 하였다. 이럴 경우 대상 환자는 최대 60%까지 늘어난다. 결국 확실한 바이오마커 컷오프를 기준으로 삼은 키트루다는 NSCLC 치료제로 승인을 받으며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적은 환자라도 치료가 확실한 환자를 중심으로 승인을 받고 이러한 전략을 다른 암종으로 확대하였는데 결론적으로 지금까지는 이 전략이 아주 유효하였다. 확장에 확장을 거듭한 키트루다는 최근 NSCLC 환자 중 수술 후 요법(Adjuvant)까지 투여 시기를 앞당겼는데, 놀라운 것은 PD-L1 레벨과 상관없이 투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작지만 확실한 승리, 이후 점점 더 많은 승리를 통해 영역을 확장하는 전략은 PD-L1 레벨과 상관없이 처방받을 수 있는 암종까지 확장시켰고 키트루다를 압도적인 1등에 오르게 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전개해 나간다.
-명확한 대상 환자 선정이 우선이다 -
나는 또한 이 책의 다소 독특한 도입부를 좋아한다. 이 책은 면역항암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고 비소세포암 (NSCLC) 환자의 분류와 그에 따른 표준 치료법으로 시작한다. 표적항암제의 개발 및 바이오 마커의 발달로 항암 요법을 위한 환자들의 분류는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하지만 제약 산업에 이제 막 입문한 사람들은 이런 분류가 익숙지 않다. 그들에게 환자는 간암, 폐암 등 커다란 분류일 뿐이다. 하지만 폐암에도 SCLC, NSCLC 가 있고 NSCLC에도 driven mutation이 있냐 없느냐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다. 더군다나 환자의 치료 이력에 따라 1차, 2차 3차 순으로 치료법이 달라진다. 항암제 개발을 하고자 하면 이러한 표준 치료 요법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고 자신들이 개발하는 항암제가 어디를 타깃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점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미 시장성을 잃은 약을 개발하는 모양이 된다.
-M&A의 중요성-
이 책에서는 간략히 다루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는 M&A에 관한 것이다. 머크의 키트로다 나 BMS의 옵디보 모두 M&A를 통해 들여오게 된 약품들이다. 키트루다는 오가논에서 처음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오가논은 쉐링플라우로 인수되었고 쉐링플라우는 이후 머크에 인수되면서 머크의 자산이 되었다. BMS의 옵디보나 여보이 역시 메다렉스의 인수를 통해 현재 높은 매출을 내는 많은 약품들 중 빅파마가 처음부터 개발하지 않고 타사의 제품을 여러 개발 단계에서 들여오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연구 경험과 인력이 풍부하더라도 모든 걸 다 해낼 수는 없다. 비용과 시간 면에서도 M&A를 통해 유망한 약품을 들여오는 게 이익인 경우가 많다. 내 개인적으로도 한국에서 글로벌 제약회사가 나오려면 기존 제약사든 벤처든 이러한 M&A에 큰 관심을 가지고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은 임상시험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다면 다소 지루할 수 있다. ORR, PFS 등과 같은 용어에 익숙지 않다면 선뜻 이해 안 가는 말들이 반복되어 보일 수 있고 비슷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임상 시험에서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약 개발을 하는 사람이라면, 면역 항암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은 대표적인 면역 항암제의 역사를 한 번쯤은 쭉 살펴봐야 한다는 점에서 추천을 한다.
제약 산업에 근무하면서 느낀 회사생활, 신약 개발 그리고 책에 대한 내용을 쓰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블로그에서 다른 글들도 보시고 서로 소통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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