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는 BRIC과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함께 만들어 가는 기획 인터뷰로, 이번 주제는 ‘with 해외포스닥’입니다. 해외 포스닥 준비 과정부터 귀국 후 국내 정착까지, 연구자의 생생한 경험과 현실적인 조언들을 진솔하게 전해드립니다. (BRIC 운영진)
BRIC x 과커 <톡톡인터뷰> #개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BRIC과 함께하는 톡톡 인터뷰, 이번 시즌은 해외 포닥 연구자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인데요. 오늘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개굴과 함께합니다. 이번 시즌 게스트는 바로 새내기 포닥 조상혁 박사님이십니다.
Q. 박사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상혁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BRIC, 그리고 개굴님과 톡톡 인터뷰를 함께 할 수 있어서 매우 영광입니다.
저는 KAIST 시스템 및 합성생물학 연구실에서 조병관 교수님 지도하에 작년, 25년 2월에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예일대에서 이번 주부터 포닥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을 하면서는 "주로 박테리아를 대상으로 하는 멀티오믹스 분석,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한 엔지니어링을 했다"고 말씀드리는데, 사실 제가 학위 기간 동안 주제가 여러 번 바뀌었어요. 그래서 박사학위를 하나의 키워드로 딱 설명하기보다는 방향성으로 설명하곤 하는데요, 단일 박테리아에서 깊이 있는 멀티오믹스 분석으로 시작해서 여러 종들의 공배양 혹은 환경 샘플을 가지고 오믹스 분석을 진행했고, 이후에는 균주 엔지니어링 연구들을 수행했습니다. 이게 처음부터 의도했던 방향성은 아니었는데, 지나고 나니까 이 방향성이 꽤 괜찮아 보였고, '아, 내가 점점 더 복잡한 시스템을 분석하고 엔지니어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구나.' 이 방향성에서 어떤 연구 주제들이 아직 미완으로 남아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결정한 바로는 앞으로 장내 미생물 군집을 원하는 방향으로 처음부터 설계 및 구축하는 엔지니어링 연구를 하고 싶다고 목표를 정한 상태입니다.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 현재는 예일대 의과대학 면역학과 Ruslan Medzhitov 연구실에서 포닥을 시작했습니다.
Q. New Haven에 처음 도착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예일대학교가 있는 도시가 New Haven입니다. 제게는 이름부터 굉장히 생소한 도시였어요. 제가 이번 5월에 미국에 입국해서 6월 1일에 포닥을 시작했지만, 사실 New Haven에 처음 도착한 것은 작년 8월이었습니다. 작년 8월에 저는 아직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연구실 생활을 정리하고, 포닥 생활을 먼저 시작하는 아내를 따라 미국에 입국했었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미국에 왔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불안함과 싸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에 비하면 당연히 올해 5월에는 갈 곳이 정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훨씬 안정감을 느끼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New Haven에 돌아왔습니다.
Q. 미국 포닥을 시작하기 전 상상했던 모습과, 도착 후 가장 달랐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포닥을 시작하면 어떤 '임계점'이 딱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포닥 시작은 생각보다 어떤 임계점 통과 없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제가 생각했던 것과 가장 다른 점이었습니다. 포닥 시작은 인터뷰부터 오퍼레터 수령, 각종 행정 처리, 비자 인터뷰, 그리고 입국 심사까지 이어지다 보니 저에게는 특별히 실감 나는 임계점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생각보다 점진적으로 포닥이 되어 있었습니다.
Q. 해외 포닥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요?
저는 연구와 연구 이외의 삶,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분들은 본인의 삶 속에서 위대한 성취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시는데, 정말 대단하고 존경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저는 연구 외의 삶도 균형 있게 발맞추어 가져가고 싶어요. 그런 저에게는 해외 포닥이 딱 그런 선택이었습니다. 제가 앞에서 제 소개를 할 때, 박사학위 동안 주제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나중에는 '졸업은 할 수 있나?' 되게 불안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구에 정말 지치는 순간도 있었어요. 그렇게 지치는 순간에도 옆에서 제 모습을 지켜봐 준 아내, 당시에는 여자친구 이성주 박사님이 응원을 정말 많이 해줬습니다. 새로운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새로운 해석과 결과들을 볼 때 제가 정말 신나 보였다면서, "너 아니면 누가 연구하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말이 정말 큰 응원이 되었고, 아내 이성주 박사님 덕분에 불안함이 많이 해소되면서 '내가 여전히 연구를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이런 용기를 주는 사람과 함께라면 앞으로도 연구를 계속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해외 포닥이라는 결정은, 미국에 꼭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면서 연구도 할 수 있는 그런 선택이었습니다.
Q. 지원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는데 의외로 너무 중요하고 필요했던 게 있나요?
제가 진짜 과소평가했던 요소가 바로 '네트워킹'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주 잘난 연구를 해온 사람은 아니지만, '결국 연구자가 연구만 잘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포닥 지원에 있어서는 네트워킹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우선 모든 포닥 기회가 균등하게 세상에 공개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교수님들은 본인의 SNS나 학교 공식 채널로 구인 공고를 올리시기도 하지만, 당장 제가 합류한 Medzhitov 교수님 연구실만 해도 공개된 연구실 홈페이지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학위 과정 동안 좋은 성과를 쌓아오신 지원자라도,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연구실에 기회가 없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이미 연이 닿아 있었고 포닥 지원에 대해 미리 논의가 있었다면 그 가능성을 훨씬 높일 수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학회'라고 생각합니다. 학회에 가면 본인의 연구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 있는 연구실 교수님들과 안면을 틔울 수 있거든요. 학위 기간 중에 열심히 성과를 내서 관심 있는 연구실 교수님이 참석하시는 학회에 참여하거나,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는다면 이메일이라도 보내서 사전에 관심을 표하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Q.미국 포닥을 떠나는 후배에게 생존 가방을 싸주신다면 어떤 물품들을 넣어주실건가요?
'생존 가방'이라는 표현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요, 저에게 힘이 되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 힘이 되었던 것 중 하나가 제가 연구실을 떠날 때 후배들과 친구들이 써 준 '롤링 페이퍼'였거든요. 저도 아직 가진 게 많거나 큰 힘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보니까, 후배들에게 무언가 챙겨 준다면 ‘마음’과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딱 떨어지는 생존책까지는 안 되더라도, 먼저 고생해 본 제 경험이라도 나누고 ‘누군가가 너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그런 마음을 챙겨 주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연구직이 되게 불안할 일이 많은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연구가 항상 잘 풀리지만은 않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과학자의 역할이기 때문에 늘 불안함과 맞서 싸워야 하는데요, 그럴 때 누군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있다는 마음을 꺼내 보면, 다시 용기를 얻게 되는 큰 힘이 되더라고요.
Q. 아무도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막상 미국에 가니 중요했던 게 있었나요?
제가 정말 생각하지 못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미국은 '협상의 나라'인 것 같아요. 보통 미국하면 떠오르는 세계 최강대국의 이미지가 있어서, 우리나라보다 시스템이 훨씬 더 잘 갖춰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오히려 사람 사는 편의성은 우리나라가 훨씬 잘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웬만한 일은 비대면으로 처리할 수 있고, 물건을 사더라도 정찰제로 되어 있어서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같은 질문은 안 한 지 정말 오래됐죠.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어디까지 알아보고 왔는가'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비대면보다는 대면이나 전화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실무자나 책임자의 재량이 많이 작용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쩌면 나라 전체가 네트워킹의 나라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건 정말 와보기 전에는 제가 생각지 못했던 점이라, 미리 알아 두셔도 좋을 것 같아요.
Q. 협상이나 흥정에 있어서 꿀팁이 있을까요?
제가 와서 경험했던 사례가 하나 있는데요, 처음 미국에 와서 가구를 사러 이케아에 갔는데, 학생 계정으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코드를 받아서 갔지만 현장에 가니 코드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정을 매장 직원에게 설명했더니, 그 코드를 직접 다시 찾아주지는 못했지만 본인들 재량으로 똑같이 할인을 적용해 주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시스템이라 얘기하는 데 안에서 '나 이거 요청해 봐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면, 겁내지 말고 실무자에게 일단 이야기해 보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방금처럼 금전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행정 처리를 원활하게 하는 데 있어서도 겁내지 않고 요청해 보는 것이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Q. 새내기 포닥의 검색 기록을 한번 여쭤보려고 합니다. 먼저 미국 도착하기 직전에 가장 많이 검색했던 내용이 뭘까요?
미국에 오기 직전에는 사실 연구와 관련된 내용들을 가장 많이 검색해 보기는 했어요. 제가 현재 미국에 오기 전에 소속이 없고, 랩도 정해지기 전에 혼자 지내는 몇 개월간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거든요. 어떤 연구실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저널 클럽 모임에 참여하거나 도움이 될까 싶어 Public Data를 활용해 분석해보고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도 검색이라면 검색이겠죠?
이렇게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해 둔 덕분에 관심 있었던 교수님들과 개인 프로젝트 상황을 공유하면서 다시 연락을 이어 나가기도 했고, 연구 관련된 것들을 많이 검색했던 것 같습니다.
Q. 연구 관련된 검색 말고 일상생활과 관련해서 가장 자주 검색하신 건 무엇인가요?
저는 좀 걱정이 많은 타입인 것 같아요. 그래서 미국에 들어오기까지 여러 절차를 거쳤는데, 절차마다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하면 최대한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검색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비자 인터뷰가 정말 무서웠거든요. 막상 비자 인터뷰를 할 때는 질문을 세 개 정도밖에 안 받았지만, 그 앞에 서기까지 많은 절차를 거치고 서류를 준비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비자 인터뷰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검색해 보고, 관련 절차들에 대해 정말 많이 찾아봤었습니다.
Q. 인터뷰 과정이랑 질문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포닥 구직 과정 전체를 놓고 보면 정말 다양한 고난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제가 작년 8월에 다니던 랩을 정리하고 미국에 ESTA로 입국했는데, 당장 입국심사대에서 쫓겨날 뻔했거든요. "도대체 뭐 하는데 80일 넘게 미국에 체류하려 하느냐, 아내 정착 도와주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이냐"라며 바로 태클이 들어왔습니다. 집 정리도 도와주고 친구들도 만나고, 무엇보다 한국 돌아가는 출국편 비행기 표도 이미 끊어뒀다고 설명하고 겨우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미국에 들어왔는데, 하필 미국 연구비 삭감 정책 때문에 학계가 휘청거리던 시점에 제가 딱 들어왔더라고요. 예일대의 경우 8, 9, 10월 세 달간 아예 고용 동결이 내려졌습니다. 직접 미국까지 와서 교수님들을 만나려 했던 노력이 허탕이 될까 봐 정말 걱정을 많이 했고, 우울증도 살짝 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10월이 지나면서 고용 동결이 풀렸고, 그때부터 여기저기서 다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불안함 속에서도 답장이 안 올 줄 알면서 교수님들께 메일을 보내고, 교내 세미나에 참석해 질문하고, 사비를 털어 학회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며 명함을 돌렸습니다. 이런 모든 노력이 바로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계속 축적되고 있었나 봐요. 그러니까 행동을 했을 때 바로 결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고민하고 노력했던 과정들이 절대 의미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포닥을 알아보고 계신 분들도 빨리 일이 잘 안되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마시고, 그 방향성을 계속 유지하고 계시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계시는 연구실을 선택하신 계기 궁금합니다.
딱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Medzhitov 교수님이 장 면역 분야에서 한 획을 그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장기적으로 장내 미생물 군집 공학 연구를 수행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게 복잡한 시스템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다양한 균주들에 대한 분석, 그리고 엔지니어링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종이나 데이터를 다루는 데는 부담이 없습니다. 하지만 의학적인 관점, 숙주의 입장에서의 연구 경험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Medzhitov 교수님은 ' Toll-like receptor'라는 단백질의 면역 기능을 최초로 규명하신 분으로 매우 유명하신데요, 이 유전자가 인간이 장내에서 미생물의 존재와 그들의 활동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내셨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장내 미생물의 공학적 이용을 생각하면서 숙주와 장내미생물 간의 관계를 공부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한 축을 놓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Medzhitov 교수님에게서 배우고,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장기적인 커리어 구축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회인 거죠.
Q. ‘박사 과정까지의 나’와 ‘연구실에서의 나’는 어떤 점에서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박사 과정까지의 저는 연구 입맛을 찾아가면서 경험을 쌓는 '학습 단계'에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지도받는 위치에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당시에 특정 연구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 비교적 수동적으로 주어진 과제들을 수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의 눈에는 제 박사 학위는 중구난방인 연구들의 묶음으로 보였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다양한 탐색 과정 덕분에 남들보다 좀 더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 봤다고 자부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앞으로 '스스로 어떤 연구를 하고 싶은지' 목표를 확고히 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Medzhitov 교수님 랩에서 포닥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이제는 제가 목표한 연구를 하기 위해 훨씬 더 능동적이고 집중적으로 연구에 임하려고 합니다.
Q. 공학분야에서 의학분야로 전공을 바꾸셨는데, 박사님의 경험이 주는 본인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학적 사고와 의학적 질문 사이, 그 '교집합'에 제가 있는 것이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학문이 생명과학이라는 큰 틀 안에 있지만 차이가 큽니다. 저의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아내와 저는 같은 논문을 읽어도 생각하는 것이 참 다르더라고요. 저는 공학 배경이다 보니 '이 연구를 어떻게 더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기초 연구 배경인 아내는 '이게 왜 그럴까?'라며 그 기작에 대해 더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박사 과정 동안 공학적인 훈련을 끊임없이 받아왔기 때문에, 여기에 의학적인 사고를 더한다면 두 분야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공학의 목표 지향적인 태도로 의학적 질문들을 선별하고 답을 찾아간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 포닥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이제 막 도착한 연구원으로서 가장 생생하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일까요?
다시 '네트워킹'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학계에서는 탄탄한 네트워크가 성장 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예일대에서 포닥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는데, 본인의 지도교수뿐만 아니라 그 외의 멘토들을 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더라고요. 저는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인데, 가까이서 내 연구를 봐주는 지도교수가 있지만, 조금 다른 시각과 분야에서 내가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멘토들이 있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진행 중인 연구를 원활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 기회도 많이 접할 수 있고요. 제가 말씀드리는 네트워킹은 누군가에게 아부를 하거나 비위를 맞추라는 뜻이 절대 아닙니다. 본인의 연구 영역에서만큼은 그게 아무리 작더라도 주눅 들지 않는, "너도 박사? 나도 박사!" 할 수 있는 건강한 네트워크를 지향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건강 이야기가 나온 김에, 건강을 꼭 챙기라는 것도 조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체력은 미리미리 챙겨 놓으시면 좋겠어요. 결국 연구자는 머리를 쓰는 일을 하고, 뇌 역시 몸의 일부이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연구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네트워킹'과 '본인 건강', 이 두 가지를 잘 신경 써 주시면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일단 이렇게 새내기 포닥으로 짧은 경험에서 이것저것 말씀드렸는데요, 인터뷰를 보시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인터뷰하면서 연구와 연구 이외의 삶이 모두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느샌가 저에게는 연구가 삶이고 삶이 연구인, 뗄 수 없는 인생이 된 것 같습니다. 제 아내 이성주 박사님은 최근 BRIC 한빛사 인터뷰를 했는데요, 저도 다음에는 논문 인터뷰로 BRIC에서 다시 찾아뵙고 싶습니다. 오늘 인터뷰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BRIC과 과학커뮤니케이터가 함께 만드는 톡톡인터뷰.
시즌 3은 ‘해외 포스닥 예정자’ 또는 ‘해외 포스닥 후 귀국한 연구자’들을 과커들이 직접 만나 인터뷰합니다.
해외 포스닥 준비 과정부터 귀국 후 국내 정착까지 생생하고 진솔하게 담아낼 “톡톡인터뷰 with 해외 포스닥”
많이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