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 철회되었다고 하면 우리는 보통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뭔가 잘못했거나, 들켰거나, 그래서 학계에서 퇴출된 논문처럼 느껴집니다. 저 역시 철회 논문이라고 하면 거의 연구부정행위와 비슷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몇몇 철회 논문 사례를 듣고는 논문 철회라는 단어를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회는 과연 실패의 낙인일까요, 아니면 스스로 실수를 수정하는 과정일까요?
우선 철회의 목적부터 다시 생각해 볼게요. 철회는 저자를 처벌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잘못된 연구 기록을 바로잡고 연구 전반의 신뢰성을 지키기 위한 장치로 설명됩니다 (1). 이미 출판된 논문이라도 데이터 오류, 분석 오류, 윤리적 문제, 표절, 조작, 중복출판 등으로 인해 결론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면, 그 사실을 독자에게 알려야 합니다. 이때 철회는 “이 논문은 더 이상 근거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공식적인 표시입니다.
그래서 철회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자가 데이터 병합 과정에서의 오류, 통계 코드의 오류를 논문을 발표하고 난 후에 발견하고 스스로 논문을 철회하는 경우, 오히려 본인의 실수를 해결하려는 정직한 노력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은 그 문제가 크든 작든, 논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것, 혹은 저널에서 그걸 알고도 아무 표시 없이 계속 논문을 남겨두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잘못된 논문이 정상 논문처럼 인용되고, 후속 연구의 근거가 되고, 더 나아가서는 정책이나 환자 치료 과정에서 판단에 영향을 준다면 그 피해는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철회 근거는 보통 철회된 논문에 함께 표시되고는 합니다. 혹은 Retraction Watch라는 철회된 논문들을 정리해 둔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2). 이 데이터베이스에는 철회뿐 아니라 수정, 우려 표명, 복권 등 다양한 출판 후 조치가 기록되어 있고, 사유도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특정 논문이 왜 철회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어떤 분야에서 어떤 유형의 문제가 반복되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연구자 입장에서는 참고문헌을 점검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가 있고, 연구자를 채용하거나 그랜트를 수여하는 입장에서는 cv를 검증하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 철회 논문 목록이 맥락 없이 그냥 사용된다면, 쉽게 “이 사람은 문제가 있는 연구자”라는 식의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논문 단위의 기록과 사람 단위의 블랙리스트는 다릅니다. 어떤 연구자가 철회 논문에 공저자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이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대형 공동연구에서는 모든 저자가 모든 데이터 처리 과정을 직접 확인하기 어렵고, 철회 사유도 매우 다양합니다. 그래서 철회가 왜 발생했는지 이유를 고려하지 않고 그저 이 연구저자 혹은 이 연구기관에서 논문 철회가 발생했다는 점만 이용된다면, 이런 데이터베이스는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망신 주기, 혹은 차별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Nature에 소개된 논쟁도 이것과 연결됩니다. 해당 글은 미국에서 연구부정행위가 확인된 연구자 정보를 기관들이 채용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국가적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자는 제안을 다루었습니다 (3). 글을 읽어 보면 제안의 취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반복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기관을 옮기며 책임을 피하는 것을 막자는 것입니다. 특히 데이터 조작이나 연구비 부정, 연구윤리 위반처럼 중대한 문제가 있었는데도, 다음 기관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채용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동료 연구자, 학생, 환자, 그리고 학문 전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방식은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합니다. 무엇을 “연구부정행위”로 볼 것인지, 누가 판단할 것인지, 어떤 수준의 증거가 필요한지, 이의제기는 가능한지, 기록은 얼마나 오래 남길 것인지, 정직한 오류와 고의적 조작은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가 보다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투명성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회복 불가능한 낙인의 시스템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 진실성을 지키기 위해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개인의 권리와 맥락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둘 다 중요한 주장입니다.
당연히, 철회된 논문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더 이상 과학적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철회 공지는 명확해야 하고, 독자가 왜 철회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가 있어서 철회한다”는 식의 모호한 문장은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결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연구부정행위가 확인된 것인지 아니면 오류였는지 가능한 범위에서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독자도, 후속 연구자도, 연구기관도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철회 논문의 연구자 혹은 연구기관을 평가할 때는 더 많은 것들을 살펴봐야 합니다. 논문의 철회 이유가 오류인지, 윤리 문제인지, 조작인지, 출판 과정의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봐야 합니다. 결국 연구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연구는 그런 오류가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서 판단될 것입니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기록을 수정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는 과정이 신뢰를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철회는 부끄러운 일만은 아닙니다. 제대로 이루어진 철회는 과학이, 그리고 연구자 스스로가 스스로를 수정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다만 철회가 책임을 흐리는 말이 되면 안 됩니다. 정직하게 오류를 밝히고 수정하는 것은 발전의 기회로 다루어야 하지만, 고의적 조작과 반복적 부정행위는 분명히 다르게 여겨져야 합니다. 철회 사실 하나만으로 개인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반복적이고 고의적인 조작이 확인된 경우라면 당연히 더 본격적인 조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철회를 무조건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는 태도도 아니고, 철회를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넘기는 태도도 아닐 것입니다. 철회된 논문을 단순히 지우는 것이 아니라 표시하고, 사람을 단순히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철회가 발생한 이유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명백한 부정행위에는 책임을 묻는 연구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References
1. https://publicationethics.org/guidance/guideline/retraction-guidelines
2. https://retractionwatch.com/
3. Nature. Should academic misconduct be catalogued? Proposed US database sparks debate. 2026.
4. 본문은 생성형 AI를 구성 아이디어 정리와 문장 표현 개선 등 작성 과정 전반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최종 원고의 표현은 직접 검토 및 수정 후 완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