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박사생으로서 작성하는 마지막 글. 다음 편부터는 가짜 포닥이 아닌 진짜 포닥으로서 글을 쓸 수 있게 됐다.
3월 24일에 박사 졸업 1차 심사를 통과한 뒤, 공개 청구일 당일까지 믿기지 않을 만큼 바빴다. 누가 1차 심사만 통과하면 덜 바빠진다고 했는지. 할 일이 산더미라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개 청구 날짜를 조율하는 것이었다. 학내 규정상 1차 심사를 마친 날로부터 2주에서 6주 사이에 반드시 공개 청구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가능한 한 빠른 날짜를 잡아야만 했다. 포닥을 위해 지원해 둔 연구비 조건에 5월 1일 전까지 학위를 받았음을 증명하라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류 처리가 유난히 느린 벨기에에서 두 번의 디펜스를 마치고 학위 취득 서류를 안전하게 4월 말까지 받아야 했으므로 머리가 더 아팠다.
다행히 날짜를 잡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심사위원 교수님들께서 당일에 바로 일정을 정리해 알려주시기도 했고, 나와 교수님이 그중 가장 빠른 날짜를 학교 행정처에 통보하자 그날 대형 강의실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 말도 안 되는 행정 처리들이 한가득 쏟아져 나올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나 싶었다. 안 그래도 프랑스어를 그렇게 잘하는 편이 아닌데, 모든 처리를 프랑스어로 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 가장 컸다. 그래도 결국 어찌저찌 잘 마무리했다. 다른 유럽권 국가도 비슷하겠지만, 벨기에는 학위기에 이름과 출생지, 석사 학위를 받은 대학과 석사 학위에 적힌 전공은 물론 현재 벨기에에서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번호까지 들어간다. 문제는 이 정보 중 하나라도 오타가 있으면 학위기가 자동으로 위조된 문서라고 판단한다고 해서, 행정 처리를 하며 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학교에서 이제 모든 서류 처리가 끝나면 사진처럼 공고를 내준다. 공고는 단순히 PDF 파일로 주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인쇄해 학교 압인을 찍고 캠퍼스 곳곳에 붙여 둔다. 그뿐 아니라 학교 공식 캘린더는 물론 의과대학 소속인 관계로 대학병원의 스케줄에도 올라간다고 하니, 말은 다 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뒤에는 리셉션 준비를 해야 했는데, 우리 학교는 리셉션을 알아서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다행이라면 대형 강의동 홀을 이용할 수 있었고, 모든 시설 사용료는 내부 행사로 분류가 되어 공짜라는 것. 사실 처음부터 디펜스 리셉션은 꼭 한식으로 하고 싶었기에, 벨기에에서 친한 언니를 통해 한식 케이터링과 와인 페어링으로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었다. 그리고 이제 초대할 사람들에게 연락해 참석 여부필요 만 확인하면, 정말 준비는 끝이다...
교수님과 프레젠테이션을 맞춰 보고, 연습도 두어 번 하다 보니 어느새 공개 청구일 당일이 됐다. 사실 그동안 계속 일을 해야 했으니, 공개 청구일이 그리 특별한 날인가 싶기도 했다. 특히 공개 청구일 전날 오후와 당일 아침에는 지도교수님께서 초빙하신 교수님과 미팅을 하고 세미나까지 들어야 해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오히려 날짜가 확정된 뒤 며칠 동안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며 동료들을 붙잡고 유난이란 유난을 다 떨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날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얼른 해치워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반, 어차피 내 연구인데 지도교수님을 제외하고 누가 나보다 더 잘 알겠냐는 생각이 반이었다. 소위 말하는 ‘퀸의 마인드’로 밀고 나가는 나를 보고 있자니 참 웃겼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나. 어차피 아침부터 벼락치기를 한다고 해서 더 잘할 거란 보장은 없기도 하다.
이 날 사진은 일로 만나 친해진 친구가 맡아 주기로 했다. 안 그래도 사진을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시름 덜었다. 우리 학교는 디펜스 때 정해진 복장이 없다는 것도 특징이라, 꼭 한복을 입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오죽하면 2024년 말 겨울 휴가로 한국에 갔을 때 생활 한복을 두 벌이나 사 왔으니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복을 입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는데, 이런 날 아니면 언제 또 구색을 맞춰 입겠나 싶어서도 있었다.
공개 청구는 총 45분. 하지만 다행히 마진을 주셔서 50분 정도에 프레젠테이션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박사과정 중에 쓴 논문 네 개를 꾸역꾸역 다 집어넣은 탓도 있었겠지만, 유독 정이 가지 않던 결과에 대해 준비를 많이 하지 않은 게 가장 큰 탓이었을 것. 내가 발표하는 모습을 보내준 분들이 꽤 있어서 나중에 들어봤는데, 정말 정이 안 간다 싶었던 논문에서 대놓고 버벅거리는 걸 보고 있자니 용두사미가 이런 것이었구나 싶은 생각을 좀 했다.
이 날은 당연하게도 사고가 있었다. 캐나다, 미국, 한국 등지에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어 온라인 미팅 링크를 만들어 배포했다. 문제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미팅 시스템이 호스트를 지정해 권한을 몰아줄 수 없는 구조였다는 것. 그래서 누군가가 자꾸 내 마이크까지 꺼 버렸다. 청중 중에는 지도교수님의 연락처를 아는 사람이 있어, 메시지로 확인해 달라는 연락이 여러 번 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이크가 켜진 것을 확인하고 발표를 재개하면, 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또 전체 뮤트를 누르는 대참사가 반복됐다. 결국 내용의 절반쯤 지나서야 더는 전체 뮤트를 누르지 않으셨다는데, 하여튼 예측할 수 없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게 또 묘미가 아닐까. 감동적인 건, 친구들이 ‘그동안 고생해서 박사 과정 끝맺는데, 소리가 안 나와도 피피티라도 보자’고 하며 모두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발표를 마치고 나면, 교수님들께서 학위 수여에 대한 논의를 하기 위해 강연장을 나가게 된다. 물론 다들 이게 절차상 필요한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고, 학위기와 관련 서류에 서명을 하기 위함인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여튼 그렇게 5분 정도 지나 다시 심사위원단이 들어오는데, 장내가 조용해지면 심사위원장을 맡은 교수님이 프랑스어로 학위 수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날씨가 좋았던 2026년 4월 중순에 박사를 달게 됐다.
이 날 정말 여러모로 감동한 순간이 있었다. 결과를 발표하고 나면 교수님께서 단상으로 나가서 편지를 읽어주시는데, 이래저래 정말 좋은 말씀을 많이 해 주셨다. 나에 대해서 한참 칭찬을 하다 못해 비행기를 태우고 에어쇼를 하시더니, 갑자기 급커브를 틀어 ‘personal anecdote’라며 내 이야기를 하셨다. 연구실 워크숍마다 한식을 만드는 데 도가 터버린 요리사, 귀여운 것들을 모아 연구실에 다 붙여놓은 카와이 헬로키티 (라고 진짜 말했다), 크로스핏을 좋아하다 못해 연구실에서 연구실 비품 정리를 맡게 되었다 등등. 뭐 다시 말하면 교수님께서 나를 얼마나 관찰을 하고 계셨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그나마 들어온 꽃 대부분과 선물 일부는 내리기도 전에 찍은 것.사실 손님들을 여럿 초대했는데, 일정상 어렵다고 답하신 분들이 많아 참석 인원은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디펜스 이틀 전부터 다들 일정이 될 것 같다고 하더니, 당일까지도 확실하지 않다던 사람들마저 나타났다. 심지어 기차와 버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서 나를 위해 와 준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래서 결국 100명이 들어가는 대형 강의실을 거의 다 채웠고, 오신 분들과 인사하는 데만 30분 넘게 걸렸다. 그뿐 아니라 이날 선물과 꽃을 너무 많이 받아 승용차 트렁크를 채우고도 모자라서 뒷자리를 터야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무런 연고도 없던 유럽 땅에서 어쨌든 잘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드랬다. 그리고 함께 든 생각은, 정말 감사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초심을 잃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박사에 지원할 때 ‘환자와 환자 가족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연구’를 하고 싶다고 다짐했던 그 마음을 잃지 않고, 박사과정 때처럼 열심히 연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3년 15일간의 가짜 포닥을 청산하고, 이제는 진짜 포닥을 달고 출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