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의료산업 현장까지] 바이오 연구가 ‘폭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다기관·다국가 임상, 결국 표준화와 지원의 문제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논문입니다. 그리고 그 논문을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연구자금입니다.
교수가 되어도 “오늘 공모 떴대” 한마디면 눈빛이 달라지십니다. 그 순간부터 연구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설계’가 됩니다. 주제를 정리하고, 팀을 꾸리고, 예산표까지 한 호흡에 그려냅니다. 빠를수록 유리하고, 정확할수록 살아남습니다.
제가 연구실에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연구비를 직접 따오기 어려운 위치라면, 연구비가 많은 연구실로 옮기는 일이 생존 전략이 되기도 했습니다. 선택지가 늘어나고, 실험의 폭이 넓어지고, 연구 환경이 조금은 덜 팍팍해집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의 귀는 늘 공고 알림에 꽂혀 있습니다. ‘언제’가 아니라 ‘지금’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자로 보냈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더 이상 실험대 앞에 서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의료기기 분야의 사업개발(BD)로 일하면서, 국내 새로운 의료기기를 어떻게 론칭할까에 대해 더 자주 고민합니다. 시장을 보고, 병원을 보고, 제도를 보고, 제품이 통과해야 할 문을 계산합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제 눈길은 계속 연구자의 시선에서 ‘연구자들의 자리’로 발길이 이끌리고 있습니다.
바로 연구 교류와 지원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런 자리에 서면, 누가 어떤 주제에 투자하는지, 어떤 방식의 협력을 원하는지, 다음 프로젝트의 무늬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원의 방향은 연구의 방향을 바꾸고, 교류의 밀도는 협력의 속도를 바꿉니다.
저는 더 이상 연구자가 아니지만, 연구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읽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저는 결국 그 자리로 다시 가게 됩니다.
2025년 12월 18–19일 진행된 양국의 청년교육자 교류 좌담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중국 연태(烟台)에서 진행된 이번 일정은, 이름만 들어도 그럴듯한 ‘교류’가 아니라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서로의 언어와 속도를 맞춰보는 자리였습니다. 처음 만나는 얼굴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 설렘이 먼저 오기도 하지만, 솔직히 긴장이 더 큽니다. 말 한마디, 고개 끄덕이는 타이밍, 질문을 던지는 방식까지 평소보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게 됩니다. 괜히 과장되게 보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심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도 않으니까요.
이번 자리는 한·중 청년 과학자들이 만나 연구와 협력의 접점을 넓히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였습니다. 상징만 있는 만남이 아니라, 앞으로의 협력 구조를 더 ‘상시화’해보자는 의도가 분명하게 읽혔습니다. 무엇보다 규모가 작지 않았는데 현장에는 대략 150명가량이 모였고, 체감으로는 연구자만 모인 컨퍼런스라기보다 연구가 굴러가게 만드는 주변의 톱니까지 함께 모인 자리였습니다. 학계·연구기관·기업 관계자들이 섞여 있었지만, 중국 쪽 정부기관, 공공 성격의 지원·연계 조직이 두텁게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구자들만 모여서 진행하는 학술대화와는 말의 톤이 달랐습니다. 연구 결과의 ‘의미’를 말하기보다, 그 연구가 놓일 ‘판’을 먼저 이야기하는 톤이었습니다. 어떤 분야를 중점으로 보고 있는지, 어떤 방식의 프로젝트를 선호하는지, 협력은 어떤 형식이어야 오래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초청을 받아 10분 남짓 발표를 했는데, 슬라이드를 만들면서부터 평소 연구자로서 하던 발표 흐름을 그대로 가져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보통은 배경–목적–방법–결과 순으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그래서 연구 결과에서 민감도를 어떻게 올렸는지처럼 기술적인 디테일부터 꺼내기보다, 왜 연구자에게서 바이오 분야의 연구가 필요한지, 이 연구가 더 크게 진행되려면 무엇이 걸리는지,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를 먼저 말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 전환이 쉬운 일은 아니어서, 어떤 내용을 앞에 두고 무엇을 뒤로 보낼지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특히 바이오 쪽은 요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기술은 앞서가는데, 현장에서는 늘 같은 벽을 만납니다. 좋은 결과가 있어도 표준화가 안 돼서 연결이 끊기고, 검증을 더 하고 싶어도 인프라가 부족하고, 다기관을 돌리려면 행정과 비용이 먼저 발목을 잡습니다. 저는 그런 장면들을 산업 쪽에서 자주 봐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구가 더 잘 되려면”이라는 말 대신, 정책 결정자가 어떤 지점을 같이 봐줘야 연구가 폭발적으로 진행되는지, 현장이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지원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현실적인 언어로 옮겨보려고 했습니다.
임상은 다기관이 사실상 기본값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기관을 한다는 건 단순히 참여 병원을 늘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같은 근거가 성립하는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국가가 달라지면 환자군도 달라지고, 진료 프로토콜도 달라지고, 데이터가 쌓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결국 “여러 국가에서의 임상 검증”은 선택지라기보다, 신뢰도를 만드는 단계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이 다기관·다국가 임상이 돌아가려면, 기술이나 의지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표준화가 먼저 깔려야 합니다. 어디까지를 같은 변수로 볼지, 어떤 기준으로 데이터를 정의할지, 어떤 형태로 기록하고 공유할지 이게 맞춰지지 않으면 기관이 늘어날수록 데이터는 쌓이는 게 아니라 서로 엇갈립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 결과’보다 ‘연구가 굴러가는 조건’에 더 시간을 쓰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이 표준화가 연구자들만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표준을 도입하려면 결국 정책적 기준과 제도적 요구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개인정보·데이터 거버넌스, 윤리 심의(IRB)와 같은 절차, 기관 간 데이터 활용의 규정, 평가와 지원의 기준까지 표준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규칙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부분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더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만큼이나, “그 연구가 여러 기관과 국가를 넘어갈 때 무엇이 필요해지는가”를요.

바이오 분야에서 다기관·다국가 임상이 중요해질수록, 연구의 성패는 실험실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습니다. 데이터가 모이려면 정의가 같아야 하고, 정의가 같으려면 표준이 필요하고, 표준이 굴러가려면 정책과 제도의 언어가 따라와야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은 늘 연구자 개인의 의지로만은 해결되지 않고, 기관과 국가 단위에서 합의와 기준이 필요한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저는 그 지점을 “연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연결의 조건이 부족해서” 막히는 장면으로 산업 현장에서 자주 보아왔고,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짧은 발표 안에 최대한 현실적으로 담아보려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십여 년 전 이런 프로그램의 흐름 속에서 연구를 하던 시절과 지금이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는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 온 에너지가 쏠렸다면, 지금은 그 결과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더 먼저 보게 됩니다. 누가 데이터를 함께 쌓을 수 있는지, 어떤 인프라가 필요한지, 어떤 기준을 맞춰야 다기관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기준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설계해 줄 수 있는지. 이번 자리에서 제가 확인한 것도 결국 그 부분이었습니다.
교류의 가치는 사람을 많이 아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서로의 문제를 “같은 규칙” 위에서 풀 수 있는지까지 이어질 때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경험을 ‘한 번의 방문’으로 남기기보다는, 다음으로 이어지는 체크리스트처럼 가져가고 싶습니다. 표준화와 데이터 거버넌스, 다기관 운영의 현실적인 병목, 그리고 현장이 필요로 하는 지원의 형태들을 연구자들끼리만 이야기하지 않고 정책과 산업의 언어로도 계속 꺼내는 일. 연구가 멈추지 않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묻고 연결하는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논의가 협력으로 이어지도록 한 걸음 더 붙여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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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연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면 결국 학계로 이어지고, 박사학위 이후에는 교수나 포닥이 되는 길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도 그 생각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연구실이 아니라 의료기기 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구실 밖의 세계”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연구만이 연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생명·의료 분야에서 연구와 산업은 서로 멀리 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복잡하게 연결된 하나의 구조라는 사실을 공유하려 합니다. 연구실 밖의 길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그 길의 모습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