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가 벌써 저물어간다. 2025 사자성어로 ‘변동불거’가 선정됐다.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며 변한다’라는 뜻이다. 많은 생태학자가 강조했듯이, 자연은 머물러 있지 않다. 자연에 단 하나의 진리가 있다면, 변화한다는 사실뿐이다. 오직 변하지 않는 진리는 변한다는 것뿐이다. 아, 역설이다. 삶에도 수많은 모순이 존재하듯이 이 자연 세계에도 ‘모든 것은 흐른다’라는 변수 같은 상수가 존재한다.
2025년,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더욱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바로 ‘신체이형장애’(Body Dysmorphic Disorder)로 인해 가정과 사회가 죽음에까지 이른 내용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1442회, 2025년 5월 10일)는 ‘사천 크리스마스 살인사건’을 보도했다. 핵심은 △신체이형장애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SNS 중독 △왜곡된 자기 인식이 만든 망상과 집착 △‘완벽한 타자’에 대한 이상화와 붕괴 △외모 집착의 심화와 통제 장치의 부재였다.
A군은 코로나 이후 급격히 심해진 외모 콤플렉스와 스스로를 기형적으로 보게 되는 신체이형장애적 사고에 빠져 학업을 그만뒀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고립된 상태로 지냈다. 그는 현실 검증 능력이 약화된 채 SNS에서만 관계를 유지했다. 그 세계가 유일한 인간관계의 장으로 굳어지면서 특정 대상에 대한 왜곡된 감정이 비정상적으로 강화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태가 자기비하·집착·망상이 서로 얽혀 폭력적 충동을 키운 배경이 됐다고 지적한다.
A군은 신체이형장애로 인한 외모 콤플렉스와 사회적 고립 속에서 현실 감각을 잃고 특정 대상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심화시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자기비하·망상·관계 단절이 안전망 부재와 맞물려 극단적 범죄로 이어진 비극적 결과라고 지적한다. 사진은 재연된 내용임. <참고사이트> 1 캡처.
외모 콤플렉스와 결핍에 대한 보상
A군은 B양을 현실의 인물이 아닌 ‘완전무결한 존재’로 떠받들며 자신의 결핍을 보상받고자 했다. 그는 스스로를 극도로 낮게 평가했다. B양이 자신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 관계에 대한 공포가 확대되면서 피해자를 통제하거나 소유해야 한다는 왜곡된 논리가 형성됐다. 결국 그는 ‘관계가 유지되지 않을 바엔 상대를 없애야 한다’라는 파괴적 망상에 도달했다. 결국, 실제 범행으로 옮겼다.
전문가들은 A군이 보여온 외모 집착, 강박적 자기비난, 단절된 사회적 관계 등이 신체이형장애의 전형적 위험 신호였지만 이를 교정해 줄 안전망이 거의 없었다고 분석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신체이형장애로 인해 불안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프라인 관계의 단절, 온라인 중심의 세계관, 애착의 혼란이 맞물리며 왜곡된 사고가 더욱 굳어졌다. 그러다가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상태에서 극단적 범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외모 콤플렉스와 신체이형장애가 방치될 때 개인의 인지·정서 체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신체이형장애는 “실제로는 외모에 결점이 없거나 그리 크지 않은 사소한 것임에도, 자신의 외모에 심각한 결점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질병”으로서 “많은 경우 신체이형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외모를 고치기 위하여 성형수술이나 피부과 시술에 중독되기 쉽지만 이러한 시술을 통해 궁극적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라고 설명된다. 그래서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 학업적 기능의 이상이 보통 동반되며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도 한다”라는 것이다. 문제는 신체이형장애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사건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점이다.
지각된 신체적 결함에 대한 집착
미국국립보건원(NIH) 산하 미국국립의학도서관(NLM)·국립생명공학정보센터(NCBI)에 올라온 한 논문(2024)을 보면, “종종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신체이형장애는 지각된 신체적 결함에 대한 집착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특징을 가진 흔한 정신 질환”이라며 “고통스러운 반복적 행동과 때로는 자살 행동 및 사고로 이어진다”라고 경고한다.
특히 신체이형장애 환자는 타인이 알아채지 못하거나 아주 미미하게만 인지할 수 있는 신체적 외모의 결함이나 흠에 집착한다. 예를 들어, △과도한 거울 확인 △위장(즉, 화장이나 옷으로 결함을 가리는 행위) △피부 뜯기 △과도한 몸단장 △지나친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반복적 행동 △자신의 외모를 타인과 비교하는 것과 같은 만연한 정신적 행위 등이 있다. 이러한 증상은 사회적·학업적·직업적 기능 또는 기타 영역에서 현저한 장애를 초래하게 된다.
1891년,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 엔리코 모르셀리(1852∼1929)는 그리스어 ‘디스모르피아(dysmorfia)’(추함을 의미)에서 유래한 ‘디스모르포포비아(dysmorphophobia)’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 용어로 뚜렷한 신체적 기형이 없는데도 자신을 결함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을 설명했다. 프랑스 심리학자 피에르 자네(1859∼1947)는 이러한 증상의 사례를 논의하며 “몸에 대한 수치심 강박”으로 명명했다.
“약 43% 정도 유전적 영향받아”
특히 신체이형장애 환자 57명과 건강한 대조군 58명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GABA-A 수용체의 감마2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GABRG2)가 신체이형장애 환자에게서 더 자주 발견되는 경향이 확인됐다. 또 다른 쌍둥이 연구에서는 신체이형장애가 약 43% 정도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신체이형장애가 환경적 요인뿐 아니라 특정 유전자와 유전적 소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체이형장애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청년들의 사회적 고립은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학 입학이 좌절되거나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청년들은 스스로를 낙오자로 판단하며 갇힌다. 어찌 됐든 비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분명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봐야 할 텐데, 지금은 개별 사건들을 하나씩 살펴보기에도 벅차다. 몇 년 전 한 연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이 최대 약 50∼60만 명에 이른다. 과연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앞서 언급된 방송 바로 1주일 후, ‘갇혔거나, 가뒀거나 - 어느 캥거루족 이야기’(1443회, 2025년 5월 17일) 편이 공개됐다. 취업·학업에서 멀어진 ‘쉬었음’ 청년이 고립 속에서 분노를 키우고, 그 감정이 결국 가족을 향한 살해 위협으로 번진 사례를 다뤘다. 고립된 청년의 분노와 이로 인한 가족 내 위협이 끔찍했다. 사회적 안전망 부재와 ‘은둔 청년’ 지원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장기간 고립된 동생은 자존감 붕괴와 반복된 실패 속에서 극단적 사고에 빠져 결국 형을 향한 살해 예고까지 하며 가족의 안전을 위협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은둔이 가족 전체를 소진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며, 문제를 숨기지 않고 사회적 개입과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이런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픽사베이
사회적 실패와 은둔 그리고 살해 예고
직업 없이 장기간 집에 머물던 동생은 자존감이 무너지고 실패 경험이 누적되면서 극단적 사고에 빠졌다. 감정의 통로가 막힌 상태에서 형을 향한 살해 예고라는 위험한 행동을 보였다.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고립된 청년의 심리적 취약성이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청년의 장기적 은둔이 개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를 소진시키고, 공포·연민·죄책감이 뒤섞인 관계를 만들어 위험을 더욱 키운다고 지적했다. 가족이 문제를 숨기거나 혼자 해결하려 하면 골든타임을 놓치기 쉽고, 이미 가정만으로 회복이 어려운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회적 개입과 또래 지원 체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잠시 멈춰 있는 시간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려면, 청년 고립을 개인의 실패로 보지 않고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붕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사회가 이대로 흘러가도 되는 것일까? 호주는 2025년 12월 10일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메타 역시 16세 미만 이용자의 계정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강력한 조치를 통해 끊임없이 비교되는 입구를 차단하려는 것이다. 신체이형장애나 사회적 실패는 SNS 중독에 빠지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살인이나 살해 위협이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뉴스에 따르면, 30대 ‘쉬었음’ 인구가 11월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구직 활동을 아예 중단한 청년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다섯 달째 70만 명대를 유지하는 20~30대의 장기적 비경제활동 증가가 고용 절벽 심화를 예고한다. 사회 많은 부분에서 청년이 고립돼 있다는 증거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러한 사회를 기성세대가 만들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