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지는 없다
어떤 일들은 순리대로 일어난다.
대학은 연구비를 지원한 기관으로부터 부정 사용한 연구비를 반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대학은 그 요청에 응했고, 연구비를 부정 사용한 교원에게 반환금 일부를 대학에 보상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의 직위를 박탈했다. 문제의 교원은 그 자연스러운 수순에 반기를 들며 수년을 버텼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일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나아간다.
연구비 부정 사용에 대한 책임이 연구 기관에도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대학이 연구 기관에 배당하던 운영비와 연구비 규모를 줄이기로 한 것, 그래서 결국 소속 인원을 줄이기로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연구비를 부정 사용한 교원이 속해 있던 분과와, 비슷한 시기에 논문 날조가 발각된 교원이 속해 있던 분과에 내려진 조치는 ‘통폐합’이었다. 두 분과에서는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했고, 현직에 있던 무고한 교원들은 기관 내 다른 분과로 흡수되었다. 이 조치에 대해 지나치다는 말들이 나왔지만 개인들의 목소리는 미약했다. 그들에게 받아들이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그러나 교수 N에게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며 넘기기에는 이상했다. 그 일은 연구 기관장으로부터 온 전화 한 통을 통해 전해졌지만, 그에 맞서 어떤 행동을 하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누군가에게 불어닥치는 중요한 일들은 대개 그가 그 일에 대해 깨닫기 한참 전에, 그가 알 수 없는 시공간에서 이미 시작된다.
“○○학과면 되겠지?”
N이 속한 분과는 연구비 부정 사용과도 논문 날조와도 관계가 없었지만 ‘통폐합’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대학은 연구 윤리 위반 행위가 있었던 분과들을 없애는 것 이상으로 연구 기관의 규모를 축소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통폐합의 과정은 매우 경제적이었다. 끝까지 기관에 남게 된 분과들은 공통적으로 실험 장비와 실험동물 때문에 다른 조직으로 이전하려면 큰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N이 속한 분과는 그런 면에서 보면 비교적 이동이 수월했다. 그러나 인간사라는 게 계산기를 두드려 나온 가장 경제적인 결정에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아니다. ‘뭘 잘못했길래 내가 쫓겨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새도 없이 상황은 흘러간다. 기관장은 N의 연구 분야와 성향을 고려해 ○○학과가 어떨지 물었다. “아.. 네, 거기로 하시죠” N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그곳은 한 번도 가본 적도 가길 원해본 적도 없는 곳이다. 기관장 역시 이 연락을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 터였다. 개인들에게는 받아들이는 것 이외의 선택지는 없으니까.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
N과 비슷한 시기에 기관장으로부터 같은 연락을 받은 교수 둘이 퇴직했다. 한 사람은 퇴직 사유가 불분명하지만 좀 더 마음 편한 곳에서 일하겠다며 다른 나라의 연구 기관에 취업했다. 다른 한 사람은 국내의 다른 대학에 더 좋은 조건으로 취업했는데, 그의 학생들 말에 따르면 연구 기관의 재편으로 소속이 옮겨진 후로는 업무의 자율성도 효율도 급격히 떨어졌고, 심적으로도 편치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N 역시 더 이상 이 대학에 있고 싶지 않았다. 소속이 바뀐다는 건 명함에 적히는 소속 기관명을 새로 쓰는 일만이 아니다. 지금껏 익히고 다듬어온 일의 방식을 내려놓는 일이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N에게는 원치 않은 변화였다. 새 소속 학과 역시 사람을 뽑을 때가 되어서 N을 들인 게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선택지가 없었으리라. 그런 상황은 N을 쓸쓸하게 만들었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가족이 있고 학생들이 있으니 갑자기 그만둘 수는 없었다. 다른 대학에 지원한다 하더라도 당장 자리를 옮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N은 대학의 처분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대학 역시 그를 이곳으로 쫓아내고 싶어 그리 한 게 아닐 것이다. 소속 교원이 저지른 연구 윤리 위반으로 명예가 떨어질 데까지 떨어지고 갑자기 수억의 돈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챙길 여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 조직을 가장 지키고 싶은 건 대학이다. 다 필요해서 한 일이겠지.
그러나 이해와 정서는 꼭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거 같아.”
N은 급기야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내려 깎으며 말했다. 그는 일로부터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은 적잖이 놀랐다. 그는 스스로 연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대학의 교원으로 선발된 이후로 줄곧 남다른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 자기 분야 최전선의 연구를 해야 한다는 신념도 있었고, 남들 이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도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명감과 신념과 자긍심 모두 전 소속 기관—이제는 이름조차 남지 않아 끌어올릴 명예도 없는—에서 키워왔다. 그에게는 기관 내에서 기대되는 바가 있었고, 그는 한 해 한 해 기대를 충족시켜 왔다. 그러면 그도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새로운 소속 집단은 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도 채워질 수 없었다.
그를 인정하고 그에게 기대하고 그가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누가 그에게 그런 공간을 주는가. 그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자신을 원하는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누군가 떨어뜨린 바위들 때문에 내가 가야 할 길이 가로막혀 있을 때, 이치를 따지자면 바위를 떨어뜨린 이가 그 길을 치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가 유능하다면, 내가 그 길을 뚫고 가던 다른 길로 돌아가던 그때 드는 비용을 덜어주면 좋겠다 싶다. 그러나 그 길이 다 치워질 때까지, 사회가 내 기대에 반응해 주기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두 팔 걷어붙이고 내가 나아갈 길을 찾는 건 결국 내 몫이다.
개인의 몫
세상은 누가 얼마나 잘못을 했는지, 그래서 그 조직이 어떻게 됐는지,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에 관심을 둔다. 그 안에 있는 개인들이 어떤 짐을 짊어지게 되는지는 잘 보지 않는다. 그들의 분노와 동요, 불안과 체념이 너울을 치는 모습은 카메라로도, 글로도 잘 포착되지 않는다. 그들이 속한 조직조차 그 감정들을 돌봐줄 수 없으니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붙잡고 봐달라고 하는 건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은 건 아니다. 연구 윤리 위반 행위가 낳는 부정적인 나비효과는 사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뻗힌다. 그 일과 관계가 없어도, 위반 행위자와 관계가 없어도, 개인들은 하나의 조직 하에 있었다는 이유로 하나로 묶인다. 평소 연대감 따위 느끼지 않는데도 꼭 이럴 때만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끈이 말해준다. 그게 너희를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조직의 모습이라고, 그런데 그 안전도 성장도 모두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고 있을 때에만 보장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