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IN 단백질의 새로운 조절 원리 규명… 식물 호르몬의 방향성 이동과 뿌리 중력 반응 이해에 새로운 단서
연구 필요성
식물은 고착 생활을 하지만 나름 움직임을 통해 주어진 환경조건에서 생존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줄기나 뿌리와 같은 식물 기관이 빛 또는 중력과 같은 환경 자극에 따른 움직임, 즉 방향성 생장을 주관하는 호르몬이 옥신(auxin)이다. 이런 방향성 생장을 일으키는 배경에는 옥신의 비대칭 분포가 있고, 이는 옥신 수송체 단백질인 PIN이 세포막의 한쪽 면에만 위치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결국 식물의 생존과 발달의 핵심에 PIN 단백질의 극성분포 조절이 있다. 따라서 PIN의 극성분포 조절을 규명하는 메커니즘의 연구는 식물 발달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본 연구는 PIN 자신이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세포내 분포를 조절한다는 새로운 PIN 조절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연구성과/기대효과
이번 연구는 식물이 생장호르몬의 흐름 방향을 조절함으로써 스스로의 발달 과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오랜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를 제시했다. 이 성과는 식물 발달의 원리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동물을 포함한 모든 진핵생물에서 세포의 극성과 조직 형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이러한 발견을 통해 식물이 환경 변화에 따라 생장과 발달을 조절하는 적응 메커니즘을 규명함으로써, 향후 생리.생태 연구와 농업 기술 발전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내용
식물은 움직일 수 없지만 빛, 중력, 물과 같은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그에 맞춰 성장 방향을 바꾼다. 이러한 방향성 생장에는 식물 호르몬인 ‘옥신(auxin)’이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옥신의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대표적인 단백질이 “PIN-FORMED(PIN) 옥신수송체 단백질”이다. PIN은 식물 세포막의 한쪽에 치우쳐 위치함으로써 옥신을 특정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치 건물의 출입문이 어느 벽에 설치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이동 방향이 달라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 연구에서는 PIN 단백질의 세포 안쪽에 위치한 “수용성 루프(hydrophilic loop, HL)”라는 부위가 단순히 다른 조절 단백질이 붙는 장소가 아니라, “서로 다른 PIN 단백질의 HL끼리 직접 결합하면서 PIN의 움직임과 위치를 조절하는 능동적인 조절 장치”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HL 안에 존재하는 보존된 “β-sheet 구조”가 이러한 HL-HL 결합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쉽게 비유하면, 이 β-sheet는 이웃한 PIN 단백질들이 서로 ‘손을 잡게 하는 작은 연결 고리’와 같다.
옥신수송체 PIN 단백질 사이에 β-sheet를 통한 손잡기 [그림=서울대]
흥미롭게도 이 연결 고리를 제거하자 PIN 단백질들은 서로 손을 잡지 못하게 되었고, 오히려 세포막의 특정 부위에서 더욱 강하게 뭉치는 현상을 보였다. 그 결과 PIN의 방향성이 지나치게 강화되고 세포 내부로 이동하거나 분해되는 과정에도 이상이 생겼으며, 최종적으로 식물 뿌리가 중력 방향으로 정상적으로 굽어 자라는 능력도 저하되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히 β-sheet 구조를 제거했기 때문인지, 실제로 HL끼리의 결합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인공 연결 장치’를 이용했다. β-sheet가 없는 PIN 단백질의 HL끼리 약물을 이용해 다시 결합시키자 PIN의 비정상적인 뭉침과 방향성, 세포 내 이동, 뿌리의 중력 반응이 상당 부분 정상 상태로 회복되었다. 이는 “PIN 단백질 사이의 HL-HL 결합 자체가 정상적인 PIN 기능에 중요하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또한 연구진은 PIN의 HL이 인산화될 경우 HL끼리의 결합이 약해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즉, 세포는 PIN 단백질에 인산기를 붙이거나 제거함으로써 PIN끼리의 ‘손잡기’를 조절하고, 이에 따라 다른 조절 단백질의 결합과 PIN의 이동·뭉침·방향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주로 다른 조절 단백질이 PIN에 결합하여 그 기능을 조절한다고 생각해 온 기존 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PIN 단백질 자체가 서로의 상태를 인식하고 직접 상호작용함으로써 자신의 위치와 움직임을 조절한다는 새로운 원리”를 제시한다.
특히 이러한 조절 방식은 세포막 단백질이 단순히 외부 조절인자의 지시를 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서로 결합하거나 떨어지는 상태 자체를 이용해 세포 내 이동과 막에서의 배열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식물의 옥신 수송과 방향성 성장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동시에, 향후 작물의 뿌리 성장과 환경 적응성을 조절하는 새로운 연구 기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 연구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에 2026년 9월 28일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 논문명: A conserved β-sheet motif mediates PIN2 hydrophilic loop-loop interactions to regulate PIN2 dynamics(교신저자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조형택 교수, 맹광호 박사후연구원)
연구 이야기
❒ 연구를 시작한 계기
식물 호르몬 옥신(auxin)은 식물 기관의 발생과 생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그 기본 메커니즘은 옥신의 비대칭적 수송(asymmetric transport)에 있다. 따라서 옥신 수송을 담당하는 막수송체 PIN 단백질이 세포막의 어느 위치에, 어떤 방식으로 분포하는지를 규명하는 것은 식물 생장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이다. 본 연구실은 이러한 PIN 단백질의 세포막 분포를 조절하는 요인을 밝히기 위해 다년간 PIN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단백질 후보를 탐색하는 연구를 수행해 왔다. 이런 PIN-상호작용 단백질 중 PIN 단백질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PIN의 조절 방식을 규명하게 되었다.
❒ 이전 연구와의 차별화 포인트
이전에는 PIN을 직접 조절하는 단백질들이 체계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본 연구실에서는 PIN 상호작용 단백질들을 pull-down(상호작용 기반 스크린) 방식으로 추출해 낸 뒤 단백질 질량분석을 통해 각 단백질의 정체를 규명하여 다수의 잠재적인 PIN 상호작용/조절 단백질 후보군들을 확보하고 각 단백질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규명해 왔다. 본 연구에서는 이 중 PIN 자신의 수용성 도메인 부위가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PIN의 세포내 분포를 조절한다는 새로운 레벨의 조절 방식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