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GIST, 총장 임기철)은 화학과 김정욱 교수 연구팀이 생명체가 단백질을 정확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산소를 직접 활용해 작동하는 새로운 효소 반응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세포가 단백질 합성 과정에서 오류를 어떻게 막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처음으로 설명하는 한편, 금속 이온이나 유기 조효소와 같은 복잡한 보조 요소 없이도 효소가 산소를 직접 활용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 성과다.
이를 통해 기존 효소 반응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한편, 향후 저비용·친환경 수산화 반응(분자에 산소 성분을 결합시켜 성질을 바꾸는 반응)을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생촉매 설계 가능성을 제시했다.

화학과 김정욱 교수, 신기루 박사과정생
생명체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DNA의 유전 정보는 RNA로 옮겨진 뒤, 번역(translation) 과정을 거쳐 단백질로 만들어진다.
이때 단백질은 세포의 구조를 이루고 생명 활동을 수행하는 핵심 물질로, 단 하나의 오류만 발생해도 세포 기능 이상이나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오류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tRNA(운반 RNA)다. tRNA는 유전 암호인 코돈*을 정확히 읽어, 단백질을 이루는 기본 재료인 아미노산을 전달함으로써 단백질이 올바른 순서로 합성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 코돈(codon): mRNA에 존재하는 3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유전 암호로, 단백질을 만들 때 어떤 아미노산이 사용될지를 지정한다. 번역 과정에서 각 코돈은 특정 아미노산과 대응되며, tRNA가 이를 인식해 단백질 합성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도록 한다.
세포는 단백질 합성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tRNA의 특정 구성 요소(염기)를 화학적으로 변형하는 ‘tRNA 변형’ 과정을 거친다.
특히 tRNA의 워블 자리*는 하나의 tRNA가 여러 코돈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부위로, 이 위치에서의 미세한 화학적 변형은 번역 정확성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워블 자리(wobble position): tRNA의 34번째 염기 위치로, mRNA 코돈의 세 번째 염기와 짝을 이루는 부위이다. 코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염기에서는 A–U, C–G와 같은 표준적인 결합이 형성되지만, 세 번째 염기에서는 보다 느슨한 비표준 결합이 가능해 하나의 tRNA가 여러 코돈을 인식할 수 있다.
TrhO 효소는 tRNA 워블 자리에 위치한 유리딘* 염기에 수산화기(–OH)를 도입해, 유전 암호가 정확히 해독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TrhO가 어떻게 분자 산소를 활성화하고, 그 산소를 반응 대상인 유리딘에 전달하는지는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산소를 사용하는 효소는 철이나 구리 같은 금속 이온, 또는 FAD·NAD처럼 반응을 돕는 유기 조효소의 도움을 받지만, TrhO가 보조 인자를 반응에 사용하는 지 여부는 알려져 있지 않아 그 반응 원리가 중요한 미해결 문제로 남아 있었다.
* 유리딘(uridine): RNA를 이루는 기본 성분 중 하나로, 유라실이라는 염기와 리보스 당이 결합된 구조다. RNA에서는 DNA의 티민 대신 유라실이 사용되며, 유리딘은 이러한 유전 정보를 전달하고 해독하는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 특히 tRNA에서는 유리딘이 화학적으로 변형돼 코돈 인식의 정확성을 높이고 단백질 합성이 오류 없이 이루어지도록 돕는다.
이러한 반응 원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효소가 실제로 반응 대상과 결합한 상태에서 어떤 구조를 이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고된 TrhO 구조는 실제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것으로, tRNA와 결합해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특히 해당 효소는 다른 생물에서 발견된 TrhO보다 크기가 작아, 반응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변화시키는지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을 활용해 TrhO 효소가 tRNA와 결합해 실제로 작동하는 상태의 구조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이를 통해 TrhO가 tRNA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또 tRNA의 구조 일부가 변형되면서 반응이 일어나는 위치의 유리딘이 효소의 반응 중심에 정확히 놓이게 되는 과정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 초저온 전자현미경(cryo-EM): 시료를 매우 낮은 온도에서 급속 냉각한 상태로 관찰해,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생체 분자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 가깝게 분석할 수 있는 첨단 연구 장비다. 결정화 과정 없이도 분자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관찰할 수 있어, 효소와 기질이 결합한 복합체 구조를 규명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TrhO–tRNA 복합체 구조를 분석한 결과, tRNA의 핵심 위치에 있는 유리딘이 TrhO 효소의 반응 중심에 정확히 배치되며, 이 과정에서 반응을 직접 일으키는 시스테인* 아미노산과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확인됐다. 이는 해당 시스테인이 산소를 이용한 수산화 반응을 시작하는 핵심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이어진 실험을 통해 연구팀은 TrhO 효소가 금속 이온이나 별도의 보조 물질 없이도 이러한 수산화 반응을 수행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실제로 효소를 정제해 분석한 결과, 반응을 돕는 유기 조효소는 검출되지 않았으며, 구조에서 함께 보인 아연 이온 역시 효소의 작동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시스테인(cysteine): 단백질을 이루는 기본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로, 황(S) 원자를 포함하고 있어 화학 반응에 특히 잘 참여한다. TrhO 효소에서는 이 시스테인이 산소와 반응을 시작해, 유리딘에 산소 성분을 붙이는 핵심 역할을 한다.
특히 연구팀은 TrhO 효소 안에서 반응을 시작하는 시스테인 아미노산 하나(C179)의 성질을 바꾼 실험을 통해, 이 효소의 작동 원리를 검증했다.
그 결과, 해당 시스테인이 반응 도중 산소와 결합하면서 일시적으로 작동이 멈췄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면 효소 기능이 회복되는 현상이 확인됐다. 이는 TrhO의 수산화 반응이 바로 이 시스테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팀은 시스테인이 분자 산소와 직접 반응해 잠시 중간 단계의 상태를 거친 뒤, 그 산소 성분을 워블 자리에 위치한 유리딘으로 전달하는 완전히 새로운 수산화 반응 메커니즘을 제시했다. 이는 금속 이온이나 별도의 보조 물질에 의존해 산소를 사용하는 기존 효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다.
* 점 돌연변이(point mutation):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가운데 한 자리를 다른 아미노산으로 바꾼 변이를 의미한다. 특정 아미노산의 기능을 선택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효소 반응에서 어떤 부분이 핵심 역할을 하는지 규명하는 데 활용된다.
* 싸이오하이드로퍼옥시(thiohydroperoxy): 효소 반응 과정에서 황(S)을 포함한 시스테인과 분자 산소가 결합해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반응 중간체로, 산소 원자를 기질에 전달하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TrhO 효소에서는 이 중간체를 통해 수산화기가 유리딘으로 전달되며, 효소가 조효소 없이도 산소를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김정욱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자 산소를 이용해 화학적으로 반응이 일어나기 매우 어려운 구조(‘방향족 고리’)에 산소를 도입하는 반응을, 다른 보조 물질의 도움 없이도 단 하나의 효소만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원리를 규명한 것”이라며, “향후 이 효소의 특성을 활용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기존 화학 공정을 단순화하고, 저비용·고효율 수산화 반응을 구현하는 한편, 실제로 활용 가능한 효소를 새롭게 설계·개량하는 기술로 확장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GIST 화학과 김정욱 교수가 지도하고 신기루 박사과정생이 수행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연구재단 글로벌선도연구센터(IRC) 지원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첨단 바이오 대형장비 공동활용 체계 구축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Nature Chemical Biology)》에 2026년 1월 19일 온라인으로 게재됐다.
한편 GIST는 이번 연구 성과가 학술적 의의와 함께 산업적 응용 가능성까지 고려한 것으로, 기술이전 관련 협의는 기술사업화센터(hgmoon@gist.ac.kr)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논문의 주요 정보
1. 논문명, 저자정보
- 저널명 : Nature Chemical Biology (IF: 13.7, 2024년 기준)
- 논문명 : Unconventional monooxygenation by the O2-dependent tRNA wobble uridine hydroxylase TrhO
- 저자 정보 : 신기루(제1저자, GIST 화학과), 한다빈(공저자, GIST 화학과), 김현우(공저자, GIST 화학과), 김정욱(교신저자, GIST 화학과)
[그림1] 다양한 조건의 TrhO 활성 실험. 그림 (a)는 환원제가 없는 조건에서 TrhO의 농도를 높여가며 기질과 반응했을 때 생성물이 증가함을 보여준다. 그림 (b)는 TrhO를 공기 중에 7일간 노출시키며 반응성을 확인했을 때 노출이 길어질수록 반응성이 감소함을 보여준다. 감소된 반응성은 환원제의 한 종류인 TCEP을 넣었을 때 회복되었다. 그림 (c)는 환원제 TCEP의 농도를 증가시키면 반응성이 증가함을 보여준다. 그림 (d)에서는 산화된 단백질을 환원시킬 수 있는 TrxA라는 단백질의 점 돌연변이를 실험에 도입하여 TrhO와 결합할 수 있게 했다. 공기 중에 노출된 TrhO와 기질 tRNA와 반응한 후의 TrhO는 TrxA C32S 돌연변이와 결합을 형성했고, 촉매 시스테인을 변이시킨 경우(C179S) 결합을 형성하지 않았다.
[그림2] 연구팀이 규명한 고초균 TrhO 효소와 기질 tRNA 복합체 구조. 그림 (a)의 위쪽에 단백질의 도메인이 표시되어 있으며, 도메인별로 색상을 지정했다. 아래쪽은 초저온 전자현미경으로 재구성된 TrhO-tRNA 복합체의 전자 밀도 맵(왼쪽)과 원자 모델(오른쪽)이다. 각 부분은 도메인 표시를 따라 색칠되었다. 그림 (b)는 안티코돈 고리의 33번 유리딘과 35번 구아노신과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그림 (c)는 34번 수산화유리딘과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점선은 수소결합을 나타낸다.
[그림3] 연구팀이 제안한 TrhO의 유리딘 수산화 반응 메커니즘. 본 연구에서 얻은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워블 유리딘에서 일어나는 수산화 반응의 반응식을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