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 그건 언제까지 하는 건데?”
포닥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이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 스스로도 아직 모르기에 ‘그건 사람마다 매우 달라요~’하고 너스레를 떨며 대답하곤 한다. 과학계 외의 사람들은 더욱 생소하겠거니와, 심지어 과학계에 직접 몸을 담고 있어도 학생 신분이면 ‘포닥’이 정확히 무엇인지, 대학원생이나 교수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는 경우도 있다. 나 또한 학생 때는 그러했으니.
미국으로 해외포닥을 나오기 전, 나는 박사학위과정을 했던 연구실에서 포닥으로 1년을 더 지냈다. 6년을 매일같이 출근하던 연구실에 신분만 바뀌어서 나가는 게 뭐 그리 다를 게 있겠나 싶었는데, 이런 내 안일함을 비웃듯 너무도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일단 호칭이 달라진다. 지도교수님을 비롯한 주변 교수님들, 같은 연구실의 학생들, 메일을 주고받는 얼굴 모르는 발신자들까지, ‘~박사님’이라는 존칭으로 나를 칭하기 시작했다. 아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는 예외이지만, 적어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연구실에서 스스럼없이 지내던 친구들도 나를 ‘~박사님’으로 호칭하였다. 특히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연구실 신입생들은 이 호칭으로 인해 나를 더 높은(?) 존재로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이와 같은 관례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나, 길고 힘든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받은 자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갖추는 건강한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사님이라니. 다소 오글거리고 여전히 적응이 안 되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고된 박사학위과정에 대한 보상과 인정을 받는 느낌이라 조금 우쭐한 기분이었달까. 특히 학회장에서 만난 선배 교수님들께서 ‘여어 ~박사님, 졸업 축하해’라며 악수를 청해오셨을 때의 들뜬 기분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하지만 이러한 존칭을 부여하는 데에는 그만큼 막대한 책임감과 ‘박사’에 걸맞은 역할의 무게를 동반함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포닥이 되고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학생 때는 혹여나 실험 디자인이 잘못되더라도, 서류 작업 중 실수를 하더라도 ‘아직 배우는 학생이니까~’라는 변명으로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미 박사가 된 이상 이런 류의 변명을 할 수 없으니 같은 일을 하더라도 실수가 없도록 조금 더 신경 쓰고, 보다 효율적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다년간의 트레이닝 덕에 (=짬이 차서) 웬만한 연구실에서의 일 (e.g. 과제 제안서, 보고서, 발표자료, 행정 처리, 행사 기획 등)들이 익숙해졌고 아는 것도 많아졌기 때문에 일처리가 수월해지는 것이 크지만, 포닥들이 특히 일을 빠릿하게 잘하는 데에는 이러한 심리적 요인과 외부로부터의 기대도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반대로 입장을 바꿔 내가 공동연구를 하는 교수나, 과제를 맡긴 기업의 대표라고 생각해 보라. 정신없는 연말 보고서 시즌에 여느 박사가 작성한 과제 보고서를 받아보았는데 실수 투성이라면 아마도 그 사람의 능력치와 학위 당위성을 심각하게 의심해 볼 법하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포닥들이 이러한 기대감에 부응하기 위해 더 꼼꼼히 일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박사의 몫’을 해내기 위해 더욱 고군분투하곤 했다.
그렇다면 박사의 몫은 과연 무엇일까. 수많은 박사의 역할 중 하나는 이 연재 시리즈의 제목처럼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징검다리 역할이다. 애초에 포닥이라는 직업 자체가 학생도 정규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그 어딘가에 부유하는 존재인데, 대개는 교수가 되기 전 실적을 더 쌓거나, 회사취직 전 경험을 더 쌓거나, 혹은 그냥 자리를 잡기 전에 일시적으로 커리어 갭을 메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이들이 훈련 중인 대학원생들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고 경험이 많으며 연구를 빠릿하게 잘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를 잘 아는 교수님들은 포닥들을 때로는 연구과제 총괄자로, 때로는 연구실 내 세부 팀들의 팀장으로, 때로는 대학원생들의 지도자로, 또 한편으로는 학생과 교수 사이의 소통창구로, 이처럼 다양한 징검다리 임무들을 부여하곤 한다.
실제로 규정상 박사학위가 있는 사람은 연구과제의 총괄자(PI) 역할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교수가 흔히 3책 5공이라고 부르는 동시수행 연구 수를 초과할 경우 포닥을 대표로 임명하여 추가적인 연구개발비를 따온다. 이 과정에서 포닥들은 잠시나마 교수의 삶을 맛보게 된다. 교수의 역할 중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연구과제비 수주인데, 이제 이를 담당하는 대표가 되었으니 복잡한 연구개발비의 세계에 비로소 발을 제대로 담그게 되는 것이다. 각 항목별 연구비 계상, 연구비 사용 보고, 인건비 산정 및 통합 관리 시스템 입력 등등 생소한 단어와 숫자들이 난무하는 이 세계가, 처음엔 정말 얼떨떨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상당한 분량의 연구제안서와 보고서를 도맡아 작성하고, 과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일을 분배한 뒤 다시 검토하는 작업을 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있는 워크숍에 총괄 발표자로 참석하게 된다. 상상 속에서는 정장 입은 멋진 교수님들만이 할 법한 일들을 갓 졸업한 내가 해야만 한다니. 달라진 것이라고는 박사 디펜스를 마치고 주위의 축하를 받으며 졸업식에 참석했다가 다시 같은 연구실로 돌아온 fresh 박사라는 것뿐인 나에게는 꽤나 막중한 무게였다.
대학원생 때 연구실에서 배울만한 것은 다 배우고 졸업하나 싶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새로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라는 생각에 멀쩡한 신발도 없이 아스팔트 길바닥에 내놓여진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 계속 부딪히다 보니 이런 일들도 점점 익숙해지고, 학생들도 나의 지도를 따라 맡은 일을 잘 수행해 주었다. 교수님께서도 포닥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점점 믿고 맡기시곤 하셨다. 포닥이 연구실에서 돌아가는 연구과제들 중 하나를 지도교수님을 대신해 마땅한 책임을 지고, 교수는 그런 포닥의 능력과 결과를 신뢰하고 존중해 주고. 말 그대로 바쁜 지도교수님이 하셔야 하는 수많은 연구 관련 일들의 수고를 조금쯤 덜어드리는 역할인 것이다. 사실 이럴수록 지도교수님 입장에서는 일을 믿고 맡기기 편한 대상이 되어 일이 자꾸만 많아지는 positive feedback(?)의 결과로 이어지긴 하지만, 이 또한 일 잘하는 포닥이 견뎌내야 할 무게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고, 추후 교수 임용이 되거나 회사 임원이 되었을 때 더 능숙하게 연구 및 일처리가 가능한 인재에 가까워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 언젠가 내가 아직 학생 시절에, 포닥을 하고 있던 연구실 선배에게 졸업하신 것 너무 부럽다는 얘기를 하니 그 선배가 내게 해주었던 기억에 아주 오래 남는 말이 있다.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막상 내가 박사 졸업할 때가 되자 거짓말처럼 그 말이 절실히 와닿았고, 이후로 나도 후배들에게 줄곧 해주곤 하던 말이다.
“학생 때가 제일 좋은 거야. 졸업하는 순간 ‘학생’이라는 나를 막아주던 우산이 딱, 접히는 거야. 그럼 나는 이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게 되는 거지.”
하하. 우산을 잃은 포닥의 다른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은 다음 편에 담아내기로 하며, 이만 오늘의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