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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제안서의 이해] 1) 연구를 왜 할까?
Bio통신원(김광은)
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융합의과학부 조교수 김광은입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초보자를 위한 연구제안서 작성법’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연구제안서는 연구를 하려고 쓰는 건데…
연구는 왜 하는 걸까요?
이번 글에서는 지식, 과학, 연구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식과 관련된 어휘를 Data(자료), Information(정보), Knowledge(지식), Wisdom(지혜)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Data는 각각의 사실과 관찰 결과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Data만으로는 부족하고 Context(맥락)가 더해지면 Information이 됩니다. 즉, Information은 좀 더 구조화되어있고 분류할 수 있어서 Data보다는 유용합니다. 그다음에 Meaning(의미)이 더해지면 Knowledge가 됩니다. 이때부터는 새로운 아이디어, 개념, 컨셉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최종적인 Wisdom 단계에 가기 위해서는 Insight가 필요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이해와 통섭, 응용이 가능해서 결정을 내리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Data는 읽지 않은 논문과 같습니다. Information부터는 논문의 내용은 알고 있는 상황이고, Knowledge부터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Insight가 생기면 멀리 떨어진 두 지식의 관계를 인식하고, Wisdom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사항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정보를 근거 없이 제멋대로 이어버린다면 Conspiracy Theory(음모론)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공자는 “안다는 것이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서양의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 지식의 한계를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과학의 목적은 인류 지식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이공계가 아니더라도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이라는 표현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과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박사과정을 통해 지식의 한계를 확장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박사가 될 필요가 없고, 학위가 없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굳이 굳이(?) 대학원에 오는 것입니다. 최근 영화 속에서는 박사라고 하면 보통 미치광이 빌런인 경우가 많습니다만, 실제로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한다는 면에서 과학자는 탐험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안개 바다 위에 방랑자 /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그중에서도 의과학 분야 박사과정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솔직히 의과학이라는 개념이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치 이전에 Biology(생물학)에서 Biological Sciences, Life Sciences (생명과학)으로 변화한 것처럼, 생명과학 중에서도 인간의 질병을 다루는 분야가 Biomedical Science(의과학)로 변화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의과학이라는 학문의 목적은 신약의 연구와 개발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의과대학의 경우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이 나누어져 있고, 기초의학에서도 연구 범위에 따라 생화학교실과 생리학교실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의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벽을 허물고 통합적인 접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보통 화학과 생리학이라고 하면 대단히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노벨상이 그 예입니다. 1968년 단백질 합성, 1986년 성장 인자 발견, 2001년 세포 주기 조절자 발견, 2013년 물질 수송 경로 등의 연구로 생화학자들이 상을 받았는데,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1997년 이온 수송 효소, 2003년 물 채널, 2004년 단백질 분해, 2015년 DNA 복구에 대한 연구자 중에는 의사들이 있었지만,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1980년 DNA 시퀀싱, 1993년 PCR, 2020년 CRISPR/Cas9 등은 노벨화학상을 받았지만, 현재 각각 희귀병 진단, 코로나 검사, 세포 치료제 개발 등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연구는 무엇일까요? 연구는 가설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다윈의 불독으로 불렸던 토마스 헉슬리는 “과학의 가장 큰 비극은 바로 추한 사실로 아름다운 가설을 죽이는 일이다”라고 말했고,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먼도 “이론이 얼마나 거창한지, 당신이 얼마나 똑똑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실험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Secret Lab of a Mad Scientist (https://madscientist.wordpress.com/)를 운영하시는 남궁석 박사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구를 안 해본 사람들은 가설을 시험하는 과정이 거의 없거나 한두 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가설 시험의 반복 자체가 과학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분야에서는 보통 2주마다 실험 결과에 따라 가설 시험을 하게 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그 주기가 하루 또는 3개월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원래 목표했던 곳에 거의 못 갑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제 막 학계에 들어선 사람이 처음으로 구상한 가설이 맞을 리가 없죠. 이렇게 헤매고 저렇게 헤매고 연구하다 보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결과를 만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과학자가 탐험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탐험(연구)의 목적은 호기심과 명예입니다. 그냥 궁금해서 하는 것이고, 만약 잘되면 첫 번째로 이름을 남길 수 있겠죠. 다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 연구가 인류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잘 설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초 연구의 비밀을 폭로하고자 합니다. 미국의 화학자였던 Homer Burton Adkins는 “기초 연구란 허공에 활을 쏜 뒤 활이 떨어진 자리에 과녁을 그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처음부터 정해진 과녁을 향해 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상 깊은 결과는 때로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나옵니다. 콜럼버스는 인도에 가지 못했지만, 유럽 사람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다만 죽을 때까지 인도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발견에는 뜻밖의 행운을 뜻하는 Serendipity가 필요합니다. 마치 여행지의 잘못 들어간 길에서 멋진 장소를 발견하는 것처럼요.
결론입니다. 과학자는 연구를 왜 할까요?
우연한 결과에서도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기 위해서 연구를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연구제안서(자신의 연구를 위해 타인을 설득하는 서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은 비밀입니다.
감사합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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