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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을 때 돌아보는 책] 실험과 관찰, <카할의 과학하는 삶,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저> 및 <젊은 과학도에게 드리는 조언, 피터 메다워 저>
Bio통신원(미윤(필명))
“일단 과학자가 사물의 이해에 대한 어떤 진정한 발전에 대한 보상인, 프로이드(Sigmund Freud)가 “대양적 느낌(oceanic feeling)”이라고 부른 보다 심오하고 광대한 느낌을 느낀다면 그는 과학자의 생활에 걸려든 것이며, 여하한 다른 종류의 생활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젊은 과학도에게 드리는 조언>, p.23)”
여기 그 생활에 걸려든 두 명의 과학자가 있습니다. <카할의 과학하는 삶>의 저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그리고 <젊은 과학도에게 드리는 조언>의 저자 피터 메다워입니다. 카할은 신경계를 구성하는 기본 세포인 뉴런을 발견하여 1906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메다워는 조직 이식에 관련된 후천성 면역에 대한 연구로 196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렇게 저명한 과학자들이 과학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책으로 담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는데 안 읽어볼 수는 없겠지요.
어떻게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과학자들의 자전적 에세이를 찾아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카할의 과학하는 삶>은 그 계기를 만들어 준 책이었기에 특별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제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책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쩌다 이 책을 처음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에는 과학 및 기술 분야 책들만 다루는 도서관이 따로 있었고, 게다가 단과대학과 가까웠기 때문에, 과학책을 집중해서 읽고 싶을 때는 굳이 멀리 떨어진 중앙도서관까지 발걸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종종 낡은 옛날 책들만 있어 적막만 흐르던 중앙도서관 과학기술 자료실을 찾곤 했는데, 누군가 읽어 주기를 기다리는 중요한 옛날 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먼지 폴폴 쌓인 책장에서 20세기 초 과학자의 소책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부단한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노력에는 적절한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 실험과학은 관념철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색에만 잠겨 있어서는 세상의 비밀을 파헤칠 수 없습니다. 오직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만이 다음 세대가 딛고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속에는 타오르는 열정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흘러넘치는 무한한 즐거움 속에서 실험을 이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할도 방황했고, 좌절했고, 연구비도 부족했으며, 외로웠다고 얘기합니다. 연구가 지치고 진절머리가 난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찰에 대한 믿음, 과학적 발견을 향한 열정을 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젊은 과학도에게 드리는 조언>의 메다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실험은 중요하고, 가설이 틀렸을 때 기꺼이 오류를 받아들여야 하며, 이 모든 것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고. 특히 잘 설계된 “좋은 실험”을 수행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실험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실험에 대해 왈가왈부하기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저는 실험을 한다는 것은 매 순간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실험 결과를 살려야 할지 폐기해야 할지, 혹은 가설에 부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와 같은, 실험 수행 후 내리는 결정의 수준을 넘어서 말입니다. 애초에 어떤 실험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한 번은 제가 특정 실험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지도교수님은 저에게 ‘해보는 건 막지 않겠지만 아마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 너의 시간과 체력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결국 ‘시간낭비가 될 텐데 굳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저는 호기롭게도 ‘이제껏 이 주제에 대해 실험을 해왔던 건 난데, 교수님이 뭘 알아요!’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실험을 강행했지만, 결국 교수님이 예상한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 애초에 이 실험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음을, 혹은 다소 다른 방식의 실험을 고안했더라면 좋았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실험을 고안하고, 과연 그 실험이 수행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능력은 끊임없는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길러지고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꼭 과학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결국에는 어떤 식으로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혹은 적어도 좋아하는 일 곁에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카할도 연구에 우호적이지만은 않은 환경에서 너무나 고독할 때가 있었고, 메다워도 틀린 가설에 집중해서 연구하느라 수년의 시간을 썼을 때 (여러 번!)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끝없는 실험과 관찰, 그리고 그로 인해 이루어지는 과학적 발견에 대한 열정과 믿음 때문이었을 겁니다.
몇 년 전 가을, 자정이 다 되어가는 늦은 밤. 저는 자취방 앞 초등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코앞에 두고, 미국 대학원 문턱은 밟아볼 수 있을까 불안해서 두렵던 시절이었습니다. 외국까지 나가서 다시 긴 공부를 하는 것도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사기 충분한데, 전공도 바꿔가며 자연과학을 하겠다니 밥은 벌어먹고 살겠냐는 염려를 수없이 받았습니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이미 많으니 제 자리는 없다고 했던 선생님도, 나쁜 길로 빠지고 있으니 정신 차리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라던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순수미술을 하던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무례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림 그려서 먹고살기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하는 이유가 뭔지. 친구는 대답했습니다. “너는 왜 그러고 사는데? 나도 너처럼 이걸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 이걸 해야만 해…” 전화를 붙잡고 오래 같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오늘, 저희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어느새 저는 박사과정이 끝나 가고, 친구는 여전히 작품활동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되고 고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밖에 없는 생활에 “걸려들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사람들은 그렇게 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사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나쁜 길이란 과연 무엇인지. 서문에서, 카할은 젊은 과학자를 위한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불행히도 선배와 동료로부터 적절한 조언과 지도를 받지 못해 외롭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카할이 과학자가 아닌 의사로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고, 이 어쩔 수 없는 삶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키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격려와 응원이 필요할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책을 찾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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