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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실험실이 좋습니다] 그래서 실험실에 왔습니다
Bio통신원(김틸다(필명))
2.94. 대학교 학부 최종 졸업 성적이다. 어디 가서 성적에 대해 이야기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가끔은 부끄러웠고 한편으로는 유머로 넘길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숨길 필요는 없었으며, 거짓말을 할 수도 없는 항목이기에 성적에 대해서 누군가 물어본다면 언제든지 알려줄 수 있었지만 졸업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기업은 꿈도 못 꾸겠다 싶었고, 전공 관련 직업을 가질 수도 없겠구나, 하고 체념했던 것 같다.
처음 전공을 선택했을 때는 자신감이 넘쳤다. 실험을 정말 좋아했다. 실험뿐만 아니라 뭐든지 손으로 하는 과학이라면 좋아했고 즐거워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과학 실험 동아리를 하면서 이게 바로 내가 가고 싶어 하고 갈 수 있는 일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했었다. 일상에서는 덜렁거렸지만 실험할 때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같이 일하던 주사님께서 손맛이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새로운 실험을 배우는 것도 빨랐고 기기를 한 번 배우면 금세 사용할 수 있었다. 실험을 할 때면, 사람들과 일을 할 때면 눈은 생기를 얻은 듯 반짝거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공 공부는 왜 그렇게 싫어했나, 그 처음부터 들여다보자면 모든 교재가 원서로 바뀌는 2학년 때부터 였을 것이다. 대학교에는 공부보다 재밌는 것들이 훨씬 많았고, 본격적인 전공을 시작하면서 아예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한꺼번에 원서로 바뀐 교재들은 안 그래도 영어에 알러지를 가졌던 나에게 더 큰 거부감을 주었다. 생화학, 유전학, 미생물학, 생리학… 그런 과목들은 얼마나 추상적이고 어렵던지. 스물 한 살의 나에게 그건 와닿지 않는 학문이었다.
모든 자연과학이 그러하듯, 기초를 포기했던 내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아질 수는 없었다. 기반 없는 모래성은 빠르게 무너졌다. 다행히 공부를 제외하고는 다양한 경험으로 이루어진 대학 생활을 보냈고, 그 기반을 바탕으로 마지막 학기를 앞둔 나는 우연히, 운 좋게도 공기업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성적에 미련 없었던 나는 휴학이 아닌 취업계를 선택했고, 학점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전공과 무관하게 직업을 얻고 잘 살았습니다, 로 끝난다면 가장 좋겠지만, 불행히도 1년의 인턴 후 정규직이 되지 못했고 코로나 시대가 막을 열었다. 당시 실업급여와 취업 교육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한 연구소에 육아휴직 대체 기간제 직원으로 잠시 근무하게 되었다. 인턴을 그만두고 7개월 만에 일을 시작한 곳에서 굉장히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일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던 한 해가 되었다.
미생물과 관련된 부서에서 주로 배지 제조와 간단한 미생물 실험을 보조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이 일은 단순한 것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정말로 즐거웠고, 실험을 좋아했던 나에게 실험실은 배우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보물창고로 느껴졌다. 실험 보조원을 한다면 학사 학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때, 정규직 최종 면접에서 낙방한 후 다시 취업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평생을 일하게 된다면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만이 본인의 일을 즐기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이후, 밑바닥부터 다시 배워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처음으로 연구를 온전히 도맡아 하게 되면서 매일이 실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실수할 때마다 한 사수의 말씀이 언제나 내게 괜찮아도 된다는 자신감을 안겨줬었다.
“실험에서 실수를 해도 괜찮다. 다시 할 때 안 한다면 된다.”
처음에는 현장에서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익숙하지 않은 실험이 많았고,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현장에서의 경험이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 스물셋의 내게는 처음 해보는 일들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떤 실수는 아주 가볍고, 또 다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또 어떤 실수는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고 처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다행히도 좋은 사수들이 실수는 별 일 아니라고 알려주며, 다시 실수하지 않는 노하우를 많이 가르쳐 주셨다. 덕분에 실수를 넘어갈 수 있게 되었고, 점차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실수를 하더라도 별일 아니라며 대처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렇게 쌓인 실수들은 이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실험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고, 논문을 읽고 따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군가를 도울 수 있었다. 아직은 새로운 일을 배울 때 여전히 벽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들이 쌓여 익숙한 작업들이 생길 때마다 자신감이 생겼고 이겨낼 수 있었다. 실수와 재도전을 반복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한 명의 연구원으로 만들어주었다.
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과학자들의 석사, 학부 과정을 묘사한 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부터 위대한 과학자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오펜하이머] 영화 초반에서 이론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가 실험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런 처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 속 나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다른 연구자들에게는 실패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고, 이런 것도 실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한번 웃으면서 지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런 실패와 실수들을 거쳐가며 실험실에서 일하고자 노력했다고. 그리고 그런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연구원이 되고자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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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을 좋아하지만 공부가 어려워 항상 뒤처졌던 실수 많은 연구원의 엉망진창 성장기. 실험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대학원 졸업 후 여전히 고군분투 중. 지금까지 겪었던 수없이 많은 실험실에서의 실수와 연구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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