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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포닥 도전기] 미국 도착과 정착기
Bio통신원(이윤경)
7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가족들과 친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나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San Francisco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표는 언제나 왕복이었는데, 처음으로 발권한 편도 티켓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6개월 전에 이미 와본 곳이라 익숙했지만 이곳에서의 삶은 어떨지 너무나도 궁금하고 설렜다. Sublease로 빌린 기숙사에 들어와서 짐을 풀고 누웠는데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저 꿈을 꾸는 중인 기분이 들었다.
도착한 첫 주는 학교 안을 많이 걸어 다니며 구경했다. 야자수가 가득하고, 이국적인 캠퍼스 건물들은 신기하기만 했다. 이런 곳에서 연구를 새로이 시작하다니 너무나도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주엔 2월에 Omicron으로 연기되었던 Keystone 학회가 캐나다의 Whistler에서 다시 개최되면서 캐나다에 다녀왔다. 아침 식사 때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인사를 나눈 분들이 학회장에서 Speaker로 발표하시는 걸 보며 고무적이었고, 내 박사과정 때의 연구 내용을 포스터로 붙이고, 그 앞에서 서 있을 때 포스터를 보러 온 사람들에게 내 연구를 설명하고, 그들이 한 질문에 답변을 하고, 또 연구 결과가 클리어해서 좋은 저널에 나갈 것 같다고 평가를 들을 때는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다. 그 외에도 캐나다의 눈 덮인 설산을 바라보며 압도적인 자연 풍경에 아직까지도 꿈인지 생신지 구별할 수 없었다.
*** 주의사항: J1 비자로 포닥을 나가서 타 국가를 방문할 때에는 학교의 담당부서에서 DS-2019에 여행 허가 서명을 받아야 한다. (Stanford의 경우 Bechtel international office) 만약 허가 사인을 받지 않고 해외를 나가면 다시 미국 입국 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당연히 여행 갈 때 허가 서명을 받은 DS-2019를 소지하고 가야 한다.
캐나다에서 돌아오던 날 랩 멤버 중 한 명이 Official start date 전에 놀러 오라고 해서 랩에 잠깐 방문해 멤버들과 Patio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학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기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가졌다.
주말엔 Palo Alto와 Menlo Park 등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도착하고 나서 세 번째 주 월요일부터는 출근하기 시작했다. 랩에 내 자리가 생기고, 새로운 Laptop도 받고, PI와 줌으로 미팅을 하며 앞으로 하게 될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처음엔 Safety 관련한 강의들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차차 세포 관리 등 일이 주어졌다. 또 박사과정 때 하던 분야와는 다른 분야를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의 프로젝트와 관련된 논문도 많이 읽으며 용어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집을 구하는 건 가장 어려웠던 일이었는데,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집 중에 금액대가 내 예산에 맞는지, 초반엔 차를 살 만한 예산이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이나 무료 셔틀버스 혹은 자전거를 이용하게 될 텐데 위치가 랩과 가까운지, 동네가 안전한 지 등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집주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집을 직접 보러 가서 위치와 집 내부 등을 확인한 후에 한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집이 저렴했지만 룸메이트와 화장실과 부엌은 공유해야 했고, 집이나 가구들이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Palo Alto 지역에서 저렴하게 방을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착한 지 한 달 만에 내 방이 생기고 드디어 캐리어에 들어있던 짐들을 모두 펼치니 이곳에 산다는 실감이 났다. 처음에는 집이 낡아서 맘에 들지 않았지만 깨끗이 닦고 내 짐들로 채우니 나만의 공간이 생겨서 좋았다. 이렇게 서서히 적응해 나갔다. 9월 초엔 기후 변화로 인한 유래 없는 더위가 찾아와서 낮 최고 기온이 42-43도에 달할 정도로 땅이 달궈졌고, 이때는 전력난으로 인해 정전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 메일이 자주 날아왔다. 대부분의 집들은 에어컨이 없어서 이렇게 더운 시기는 조금 힘들었다.
그 밖에 또 어려웠던 점은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 office에 가서 Social security number라는 것을 만들러 가거나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등 평소에 영어로 사용해 본 적 없는 용어들을 말하고 들을 때, 특히 어려웠다. 이때는 미리 거주 중이고 이런 일들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과 함께 가서 도움을 받으면 수월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다음으로는 미국의 땅이 워낙 크고 넓어서 차가 없으면 불편하다는 것이다.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해도 학교가 워낙 크다 보니 걸어 다니기 어렵고, 학교 내에 셔틀버스가 있었지만 역까지만 운행해 주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가까운 곳이 아니고서야 다니기 어려웠다. 심지어 처음에 Sublease로 빌린 학교 기숙사 역시 랩까지 걸어서 40분이 걸려서 학교 안에 머물러도 차가 없으면 불편했다. 또 대중교통은 다니는 곳이 한정되어 있고 배차 간격 역시 커서 다니기 어려웠다. 출퇴근이야 그렇다 쳐도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갈 때는 정말 차가 없으면 근처의 작은 마트에서 소량으로 구매하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이마저도 집 근처에 마트가 없다면 생활의 질이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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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생명과학 학사와 박사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Stanford University에서 꿈꾸던 포닥 생활을 시작하게 된 초짜 과학자의 고군분투 이야기! 미국 포닥에 관한 정보를 주변에서 얻기가 어려웠었기에 나와 같이 막막한 상황에 놓여있는 대학원생들에게 나의 인터뷰 전 과정과 미국 포닥 생활을 상세하게 이야기하여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연재를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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