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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포닥 생존기: 늪에서 살아남기] 육아의 늪에서 살아남기(좌절 편)
Bio통신원(김또또 (필명))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때로는 좋은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으로 내내 후회를 하기도 한다. 내 인생을 돌아볼 때 내가 선택을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면, 바로 아이를 갖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출산과 육아의 과정은 나에게도 쉽지 만은 않았고, 중환자실에 가서야 편해진다는 육아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지만, 나는 그와 같은 선택을 한 스스로를 기특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의 선택으로 갖게 된 아이지만,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해외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나의 해외 포닥 생존기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늪 중 하나였다. 매일 빠져나오기 위해 오늘도 발버둥 치고 있는 바로 그 것 말이다.
중환자실 갈 때서야 편해진다는... 그것이 바로 육아의 길. (사진출처: Blind)
육아에 최적화된 직업, 바이오 연구원..?
나는 한국에서 박사과정 막바지에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물론 정말 감사하게도 큰 사건 사고 없이 건강한 몸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이 아주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실 아이를 낳고 나서 오히려 나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내 시간을 더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랩에 붙어 있는 생활을 했었다. 어차피 하루 종일 랩에 있을 것이니까 해야 되는 실험을 대강 리스트 업 한 후 그 실험을 다할 때까지 그냥 세월아 네월아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낮잠도 잠시 자고, 지나가던 옆 실험실 친구와 수다도 떨어가면서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연구를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훨씬 짧아진 근무 시간 안에 내가 그동안 하던 만큼의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촘촘히 쓰기 시작했고, 쓸데없이 낭비되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어떻게 보면 바이오 실험실에서 일을 하는 것이 육아에 도움이 된다고 느꼈는데, 주로 실험을 혼자서 계획하여 수행하다 보니 아이 때문에 아침에 실험실에 좀 늦게 가게 되어도 계획된 실험을 잘 끝내기만 하면 되었고, 아니면 아이 때문에 일과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겨도 실험 한두 개를 돌려놓고 잠시 다녀오면 되니 괜찮았다. 아마 미팅이 많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일반 회사를 다니는 분들보다는 실험실에서 일을 하는 것이 좀 더 유연하게 시간 활용을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데 더 수월하게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리를 비워도 돌아가는 나의 실험. (이것이 어떤 사진인지 모르겠지만 젤 내릴 때 쓰는 power supply와 비슷해 보여 골라보았다.) (사진출처: pexel)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
포닥을 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미국에 오면서 한국과 크게 다르다고 처음 느꼈던 것은 바로 어린이집 비용이었다. 미국 내 지역마다 아마도 크게 다를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일단 집 렌트비가 매우 높은 곳이고, 아마 그 렌트비가 물가에 크게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바, 어린이집 비용 역시 어마어마했다.
렌트비와 한 명의 아이 어린이집 비용을 합치니 벌써 포닥 한 사람 월급(1-2년 차 포닥 월급) 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사 과정 기간 동안 단련 되어온 터라 경제적으로 빡빡한 삶은 이내 적응이 되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풍요롭게 살아왔다고, 현재에 감사하며 조금씩 아껴가며 살아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더 큰 장애물은 미국 어린이집의 엄격한 시스템이었다.
한국에서 아이가 다녔던 작은 가정 어린이집과는 달리, 이곳의 어린이집은 좀 더 규모가 있고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커리큘럼 면에서나 보육 차원에서 좋은 면도 분명히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가 아플 때였다. 아이가 열이 나거나 아니면 어떤 이상 증상이 있으면(예를 들어, 구토) 어린이집에서는 즉시 부모에게 연락을 취해서 아이를 데려갈 것을 요구했고,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는 어린이집에 다시 올 수 없었고, 혹시 증상이 금세 괜찮아지더라도 24시간 안에는 무조건 등원할 수 없었다.
일과 육아를 하며 가장 어려운 순간, 바로 아이가 아플 때가 아닐까. (출처: pexel)
아이가 정말 아픈 상황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조치였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도 있었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토를 굉장히 잘 하는 아이였고, 속이 좀 불편할 때도 구토를 하기도 하였지만, 또 화가 많이 나거나 감정적일 때도 구토를 했다. 구토는 아이들의 아픈 증상 중에서도 열 만큼이나 심각한 증상으로 생각되는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구토를 할 때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가라고 했다.
어느 날, 아이가 정말 많이 아파서 일주일 정도 어린이집을 나가지 못했을 때가 있었다. 그 일주일간 열이 계속 떨어지지 않아 밤이고 낮이고 잠을 잘 못 자며 아이를 돌봤고, 그러면서도 실험을 조금이나마 이어나가기 위해 남편과 내가 번갈아 실험실에 나가기도 했다(남편도 포닥). 그리고 말끔히 나아서 어린이집에 등교를 한 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구토를 했으니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주일 간의 고투 끝에 드디어 돌아간 날인데 바로 집에 가야 되고 다음 날도 또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가 구토를 했으면 신체적이든 심리적이든 어디가 불편했기 때문이었을 텐데, 그 순간 아이가 먼저 걱정이 되기보다는 일주일 간 이미 연기되었던 내 실험 일정이 또 꼬이게 되는 그 상황이 너무나 스트레스로 다가왔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나가지 못해도 고스란히 지출해야 되는 어린이집 비용이 아깝게 느껴졌다.
또 한 번은 아이가 열이 나는 것 같으니 아이를 데려가라는 연락을 받고, 진행하고 있던 실험을 도저히 멈추지 못해 아이를 실험실로 데려왔다(팬데믹 전). 그날 심지어 다른 랩 사람에게 실험을 가르쳐 주기로 한 약속까지 있었는데, 막상 데려와 보니 웃기도 하고 장난도 치길래 괜찮아 보여서 다른 실험실까지 아이를 데려가 안전한 곳에 앉혀놓고 실험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한참 실험을 하다가 잠시 아이를 체크하기 위해 보았는데, 아이가 열이 많이 올라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상태로 힘겹게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었다(원래 절대 조용히 앉아 있는 아이가 아니었음). 그 순간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한 감정과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밀려와 급히 실험을 다 정리하고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육아’의 늪이 아닌 ‘육아와 일과의 균형’의 늪.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나는 출산과 육아가 체질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아이를 먹이고 재우거나,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길 때면 그렇게 육아 자체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지 않고, 얼마만큼 아이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얼마만큼 내 일과 연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저울질하는 순간 이미 내가 쓰레기가 된 것 같은 그런 죄책감과 자괴감의 감정을 많이 느꼈다.
해외 포닥으로 일을 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마주했지만, 이 일 자체를 포기할까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의 어려움을 느꼈던 것은 바로 이 육아와 일과의 균형 문제였다. 아이를 가지기로 한 나의 선택에 자부심을 느끼는 만큼, 이 ‘육아’와 ‘일’이라는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한 쪽을 꼭 선택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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