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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에서 과학자로 살아요, 와플과 맥주를 곁들여서] 박사를 계속하고 싶나, 퀘스트를 통과해오게
Bio통신원(송유라)
벨기에에서 박사를 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몇 학점 들어요?”다. 그러면 나는 주로 “저희는 수업이 없어요”라고 대답을 하면 많은 분들이 놀라시곤 한다.
거짓말같이 들리겠지만, 실제로 대놓고 이렇게 학교 공식 문서 중 하나인 등록 확인서에 수업이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가능한 것이, 벨기에 소재 학교들에 속해 있는 박사생들은 연구실에서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연구를 통해 배우는 학생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 벨기에에서 박사를 하는 학생들은 어떻게 평가를 받고 박사를 받냐는 질문을 꽤 많이 했었다. 특히나 영미권이나 한국에서 박사를 한 분들의 질문은 자격시험 없이 어떻게 박사를 하냐는 것이었는데, 여기는 유럽 아니겠는가. 수업이 없고 시험이 없다고 했지, 평가 자체가 없다고 한 적은 없다. 그리고 웬만한 곳 보다 평가를 더 자주 하고, 더 빡빡하게 본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1-2년 차의 경우 매년 5월, 그 이상의 경우에는 7월에 재등록 심사와 관련된 메일을 받게 된다. 시기가 되면 학생처에서는 알아서 이렇게 메일을 보내주는데, 필요한 서류를 채우고 필요한 심사를 받아서 기한이 지나기 전에 재등록 심사 결과를 학생처로 보내 달라는 메일이다. 주황 글씨로 적힌 것은 기한이 지나고 보내는 서류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 심지어 해당 기한을 넘기면, 학생처에서는 지도교수와 연구실 행정원에게 메일을 보내 “당신 연구실 학생이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통보를 한다.
사실 재등록 절차가 별게 있겠냐 싶지만, 해당 재등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하면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게 된다. 다시 말해 박사과정생 신분을 박탈당한다는 이야기. 또한 이 경우에는 기존에 받고 있던 펀딩도 몰수가 된다고 했다. 실제로 한 해에 내가 일하는 캠퍼스에서 두어 명 정도는 꼭 나온다고 보는데, 생각 외로 서류 등을 챙겨야 할 게 많고,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벨기에의 박사생의 경우에는 학점 이수를 할 수 없는 수업은 없으나, 프랑스어권 정부 교육법에 의하면 박사생의 경우에는 60학점을 이수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다. 2019-2020 학년도를 기준으로 1년 차와 2년 차 동안 총 30시간에 해당하는 세미나를 듣고 이를 증명해야 하는데, 세미나의 경우에는 연구실 내에서 하는 랩미팅만 아니면 모든 강연들을 인정해 준다. 다만 세미나 참석 확인증을 모아서 함께 증빙자료로 제출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생각 외로 애를 먹는 학생들이 꽤 있다고 한다. 세미나 참석 확인증을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거짓말로 리스트를 채웠다 걸렸다거나.
현재 있는 학교의 경우, 교내에서 진행하는 세미나는 이수하는 대로 시간이 계산된다. 따라서 8시간을 들어도 8시간으로 인정이 되는 것. 하지만 외부 학회나 웨비나를 듣는 경우에는 전일 학회를 들어도 최대 4시간으로 인정하는 계산법을 따른다. 또한 1-2년 차에 이 30시간을 모두 채우지 못할 경우에는, 3년 차로 진급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박사생들은 새 학년도가 시작되면 미리 엑셀 시트를 만들어서 시간 계산을 하고, 어떤 교내 및 교외 세미나를 챙겨야 하나에 대해 계획도 세우는 편.
사실 세미나야 들으면 끝이라지만, 재등록 심사에서 가장 무서운 건 프레젠테이션이 아닐까 싶다. 벨기에 박사과정생들의 여름이 마냥 즐거울 수 없는 이유라면 프로젝트 발표인데, 단순히 발표만 하는 게 아니라 거의 디펜스에 필적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벨기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는 comité d'accompagnement이라고 부르는 심사위원단을 직접 학생이 꾸려야 하는데, 학교 내의 교수 두 명을 일종의 심사위원 개념으로 모시는 것이다. 매 여름, 재등록 심사 기간이 다가오면 세 명의 교수에게 날짜를 받아 발표를 하고, 심사평을 들어야 한다.
발표는 프로젝트 개요, 진행 상황, 다음 해 계획으로 나뉜다. 단순히 이렇게 보면 쉽겠지만, 발표를 하고 난 뒤가 지옥불. 교수님들이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질문을 하는데, 이때 대부분의 질문은 결국 약 한 시간여의 토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단순한 테크닉적 질문을 떠나, 각자의 연구주제에 대한 심층 토론을 하게 되는데, 대답을 못 했다거나 제대로 공부를 안 한 티가 나면 교수님들의 평가서는 날카로워진다. 어떻게 보면 다른 교수님들께 심층적으로 조언을 얻을 수 있으니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교수님 들과의 심층 토론이 곧 심사 결과와 직결되기 때문에 매번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해당 서류들과 교수님의 평가서를 모두 학생처에 제출하고 나면, 학생처장과 단과대학 학장이 최종 결정을 내려준다. 사실 교수님 평가와 서류에 문제가 없다면 위와 같이 재등록 승인이 되었으니 학교 포탈을 통해 10월 말 전까지 최종 등록을 마치면 된다는 메일이 온다.
사실 졸업시험이나 수업 자체가 없는 건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다. 신경 써야 할 일도 적고, 그만큼 더 연구에 집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 대신 엄격한 잣대로 여름마다 평가를 받아야 하고, 그 평가 결과를 토대로 다음 해 진급이 결정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하여튼 박사를 계속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또 벨기에 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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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짐을 싸서, 생각에도 없던 벨기에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곧 박사과정의 끝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벨기에는 유럽 국가 중에서도 유학이나 연수를 오기에 선뜻 손이 가는 국가도 아니고 알려진 것이 생활 면이나 연구 면에서도 많이 없기도 하고요. 2018년부터 여전히 캠퍼스 내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제 입장에서, 벨기에 대학원과 연구실 생활은 어떠한 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단순히 벨기에 내에서의 유학 생활 뿐 아니라 연구실 내에서의 생활과 벨기에 정부의 행정 등에 대해서도 하나씩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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