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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끔 보는 MSDS] 액체질소
Bio통신원(찜찜이 (필명))
찜찜씨가 있는 랩은 다른 랩과 공동으로 세포방을 써요. 어느 날 찜찜씨는 클린벤치에 앉아서 실험을 하다가 “아악!!” 누군가의 비명 소리를 들었어요.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옆방 선배가 눈을 감싸고 있어요. 액체질소 탱크에서 꺼낸 cryovial이 터져 튀어 올라 선배 얼굴에 맞아버린 거예요. 선배 광대에서는 피가 나고 사람들은 우왕좌왕. 하마터면 눈을 다칠 뻔했어요. 찜찜씨는 오늘도 당황스럽습니다. 액체질소가 이렇게나 위험한 거였다니요.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요?
이미지 출처: www.labmanager.com
질소는 대기압에서 -196°C 일 때 액체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액체질소는 그 온도가 매우 낮습니다. 또한 질소는 무색, 무취, 불활성, 무독성의 안정한 기체로 액체에서도 그 특성이 유지됩니다.
이러한 특성들 덕분에 액체질소를 일상에서도 여러 분야에서 접할 수 있는데요. 공업용이나 연구 장비 냉각에도 쓰이고, 피부과에서 사마귀를 제거할 때와 같은 의료분야, 분자요리와 같은 식품 분야, 마술쇼나 과학쇼와 같은 공연에서도 쓰입니다. 생명과학 실험에서는 아시다시피 세포를 장기간 보관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이렇게 활용도도 많고 안전한 기체일 것만 같은 액체질소도 여러 가지 위험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질소의 액체 대비 기체 팽창 비율은 20°C 기준 1:694로, 막힌 공간에서 액체질소가 기체로 변하게 되면 공간 내부에 엄청난 압력을 발생시켜 위험합니다. 산업 현장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일어난 폭발 사고가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지난 2022년 5월 김포에서는 불량 가스통으로 인한 액체질소 폭발 사고가 있었고, 그로부터 3일 뒤 경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액체질소탱크 폭발 사고가 있었습니다.
앞서 찜찜씨의 선배가 다친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완전히 밀폐되지 않은 cryovial 뚜껑 사이로 질소 탱크의 액체질소가 들어가게 되고, 이 상태에서 vial을 상온에 갑자기 꺼냈을 때 액체질소가 순식간에 증기로 변하면서 뚜껑을 큰 압력으로 밀어내 폭발하게 된 것이죠.
액체질소의 매우 낮은 온도도 위험 요인입니다. 2017년도에 ‘용가리 과자’라는 것이 유행을 했었는데, 이 과자는 액체질소의 기화 현상을 이용해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과자입니다. 그런데 그 해 8월, 한 초등학생이 이 과자를 먹다가 다 기화하지 못한 액체질소를 삼키는 바람에 위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액체질소의 초저온과 갑작스러운 부피 증가로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은 것입니다. 이 사고 이후로 용가리 과자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게 되었고, 식약처는 이때 ‘식품첨가물의 기준 및 규격’에서 액체질소와 관련한 최종 식품에는 액체질소가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을 개정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TV
실험실에서도 액체질소를 다룰 때 적절한 보호장비를 갖추지 않고 사용하다 손에 동상 혹은 냉화상을 입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보통은 수일에서 수주 이내에 회복되지만, 액체질소로 인한 피부 손상이 걱정된다면 액체질소 전용 장갑을 구비해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이덴프로스트 효과(Leidenfrost effect)라고 들어보셨나요? 독일의 의사 라이덴프로스트가 1756년 발견한 것인데, 어떤 액체가 자신의 기화점보다 훨씬 높은 온도를 가진 다른 물체 표면에 닿게 될 때, 액체가 빠르게 기화하면서 고온의 물체와 액체 사이에 자신의 증기로 된 절연층을 만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액체질소를 사용하다 바닥에 흘렸을 때 또르르 구르는 모습을 보며 대략 이런 원리이겠거니 짐작은 했으나, 이렇게 이름도 갖고 있는 현상인 줄은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액체질소를 사용하다 잠깐 피부에 노출돼도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정말 잠깐이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항상 안전 장비를 잘 갖추고 실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액체질소의 위험성은 환기가 잘 안되는 공간에서 사용 시 질식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험실에서의 사례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으나, 산업 현장에서는 종종 이런 질식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 2021년 4월 20일 경기도 평택에서 액체질소 탱크에 쓰러져 있는 동료를 구하려고 들어간 다른 작업자들이 똑같이 질식으로 쓰러져 모두 5명이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액체질소는 무색무취의 기체이기 때문에, 또 우리 몸은 공기 중 질소 농도를 감지하지 않기 때문에 전조증상도 없이 갑자기 질식할 수 있어서 더욱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니 액체질소는 환기가 잘 되는 넓은 공간에서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요약하자면, 불편하고 귀찮고 작업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아 보호장구를 적당히 착용하는 분들이 꽤 있는 걸로 알지만(저 포함입니다), 액체질소를 사용할 때는 액체질소 전용 장갑, 안면 보호를 위한 보호대, 보안경이나 고글을 착용하고, 긴 팔 실험복을 잘 갖춰 입고 환기가 잘 되는 공간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즐겁게 실험하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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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에서 접하는 물질들의 MSDS나 관련 안전 정보를 이야기하듯 써보려 합니다. 저는 실험을 오래 했을 뿐 안전이나 화학물질 전문가는 아니기에, 언제든 저보다 더 정확히 알고 계신 분들의 내용에 대한 정정을 환영합니다. 그 외 주제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으신 분들이 제 글을 통해 서로 그 내용을 공유하실 수 있는 공간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제 글을 통해 이제 막 실험을 시작하시는 분들이나 이미 너무 익숙하게 실험하고 계신 분들 모두, 잠시나마 해당 주제가 환기돼서 더욱 안전하고 즐겁게 이야기 술술 풀리는 실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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