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연재를 만나보세요.
[PCR 돌리고 한 장] 이블린 폭스 켈러 - 생명의 느낌
Bio통신원(이지아)
염색체에서 제 위치를 옮기는 유전자, 트랜스포존을 언제 알게 되었나요? 저는 대학교 3학년 유전학 시간에 트랜스포존과 자리바꿈(transposition) 현상을 배웠습니다. 이때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때까지 알던 유전학 개념으로 트랜스포존을 납득하기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염색체가 워드프로세서도 아니고, DNA가 ctrl+X ctrl+V 하며 옮겨 다닌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야 사람 유전체의 절반이 트랜스포존이라는 것까지 알게 된 만큼 트랜스포존이 익숙해졌지만, 중심설을 토대로 유전학 지식을 차곡차곡 쌓고 있던 학부생에게 트랜스포존은 덮어놓고 외우기에는 비약이 큰 이야기였습니다.
이블린 폭스 켈러의 <생명의 느낌>은 자리바꿈 현상을 발견한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입니다. 바바라 매클린톡은 DNA를 알고 들어온 21세기 학부생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리바꿈 현상을, 돌연변이 옥수수의 표현형만으로 추론한 유전학자입니다. 페미니스트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콜드 스프링 하버에 찾아가 매클린톡을 인터뷰하고 그의 인생을 재구성했습니다.
표지 출처 알라딘 (https://www.aladin.co.kr)
매클린톡이 발견한 자리바꿈 현상은 당대에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가 생화학적 증거가 쌓인 30년 후 재발견됩니다. 학계는 그제서야 매클린톡의 공적을 인정해 치사하다 싶을 만큼 온갖 상을 수여합니다. 노벨상은 연구가 인정받은 인생 말년에 받을 수밖에 없다고들 하지만, 당대 함께 일하던 과학자들이 20년 전에 노벨상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늦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책은 자리바꿈 연구 이전 매클린톡의 삶도 소개합니다. 매클린톡의 연구 인생은 코넬 대학에서 시작합니다. 이 시절 매클린톡은 실로 천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는 옥수수 염색체를 염색하는 법을 개발해 옥수수의 염색체가 열 쌍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최초로 염색체에 번호를 붙였습니다. 염색체의 삭제와 삽입을 발견했고, 후배의 박사 졸업 논문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는 감수 분열 중 염색체의 교차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1923년, 코넬 대학 학사 졸업 때 ⓒ 과학을 바꾼 여성들 - 노벨상 홈페이지
매클린톡 연구의 근본은 마음속 직관입니다. 그는 현상을 집요하게 관찰해 나올 수밖에 없는 한 가지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마치 추리 소설의 주인공 같은데, 소설에는 정답을 아는 작가가 있어도 현실에 그런 존재가 없는 점이 떨떠름할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손재주는 실험을 알려준 교수가 먼저 혀를 내두를 정도이고, 관찰력은 기르고 있는 모든 옥수수를 기억할 정도입니다.
비현실적인 천재에게 닥친 난관은 여성이라는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코넬 대학은 여성에게 교수 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학계에서 훨훨 날고 있는데도 대학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니, 매클린톡은 매해 불안정한 상태에서 연구를 해야 했습니다. 동료의 소개로 미주리 대학의 조교수 자리를 얻지만, 그를 탐탁지 않아 하는 학교의 등쌀에 쫓겨나듯 나왔습니다. 마침내 동료들의 추천으로 카네기 재단의 지원을 받아 콜드 스프링 하버(CSH) 연구소에 자리를 잡고 홀로 연구를 시작합니다.
1947, CSH에서의 매클린톡 ⓒ 과학을 바꾼 여성들 - 노벨상 홈페이지
이때부터 매클린톡의 연구는 보통의 연구와는 멀어집니다. 보직도, 강의도 없으니 하루 종일 옥수수밭과 실험실을 오가며 연구만 합니다. 동료 연구원 한 명 없이 혼자 실험하고, 생각하고, 논문을 씁니다. 누군가 발표한 논문은 매번 흥미롭게 읽고, CSHL의 생물학자들과 토론도 하지만, 실험을 함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매클린톡이 옥수수 연구를 계속하는 사이, 학계는 점점 활용 가능한 생명을 모델로 쓰는 기류에서 벗어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서 최소한의 규칙을 찾기 시작합니다. 매클린톡이 자리 바꿈 현상을 발견한 것은 이 시점이었습니다.
1951년 CSHL에서 자리 바꿈 현상을 발표하며 썼던 옥수수알 사진 ⓒ 과학을 바꾼 여성들 - 노벨상 홈페이지
자리 바꿈 현상을 발표했음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자, 매클린톡은 한동안 카네기 재단에 연말 보고서를 내는 것 외에는 아무 논문도 발표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런 매클린톡의 사례를 이야기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연구의 책임을 연구자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뒤늦게나마 매클린톡의 업적을 재발견했다는 점에서 학계의 건전함도 인정하고요.
제가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협업의 중요성이었습니다. 매클린톡이 일자리를 찾도록 도와준 건 코넬 대학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매클린톡과 같이 일해 본 사람들은 그의 열정과 뛰어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CSHL에서 연구할 때는 그를 이해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CSHL이 아니라 코넬에 자리를 잡았다면,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헤어지지 않고 계속 일했다면 자리바꿈 현상은 학계에 더 쉽게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우리는 분자세포생물학이라는 비싼 연구 없이도 생명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아냈을 것입니다. 생물학의 모습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요.
매클린톡의 사례를 ‘말년에 성공한 연구자’의 삶으로 볼 수 있을까요? 여든 살은 말년이라기에도 너무 늦은 시점인 반면, 자리바꿈이 인정받지 못하던 내내 매클린톡은 묵묵히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상을 받는 자리가 어색하니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던 그는, 어찌 보면 주목받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운 연구 인생을 누린 셈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연구자로서 축복받은 삶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연구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노벨상 발표가 난 아침에도 매클린톡은 사실을 모른 채
언제나처럼 CSHL 캠퍼스 산책을 하다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고 합니다. ⓒ 바바라 매클린톡 소개 - 콜드스프링 하버
매클린톡이 연구하던 시기는 분자세포생물학의 태동기와 겹칩니다. 교과서에 한 줄짜리 업적으로 소개되던 이름들이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교류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입니다(이 중에서 특히 얄미운 사람은 제임스 왓슨입니다). 20세기 생물학의 역사서로 읽든, 페미니즘 과학 철학서로 읽든, 어떤 연구가 하고 싶은지 답을 찾기 위해서 읽든, 책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말해줄 겁니다.
현재 '생명의 느낌' 책은 절판되었고, 다른 출판사에서 '유기체와의 교감' 이라는 제목으로 재판이 된 것 같습니다.
* 사진 출처
과학을 바꾼 여성들 - 노벨상 홈페이지 (링크)
바바라 매클린톡 소개 - 콜드스프링 하버 (링크)
매클린톡의 삶을 소개한 사이트입니다. 노벨상 홈페이지는 흑백으로 된 연구 자료와 함께 강렬한 인용구가 인상적이고, CSHL 홈페이지는 비교적 최근의 매클린톡 사진과 CSHL 시점의(?) 매클린톡의 전기가 있습니다.
본 기사는 네티즌에 의해 작성되었거나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로, BRIC의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또한 내용 중 개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사실확인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기사 오류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