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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로 살아가기] 드디어 대학원생! 대학원 적응기
Bio통신원(날다비)
학부를 졸업하고 4년이 지나 서야 대학원을 진학했다.
그대로 취업을 했었다면 어땠을까? 취업 후에도 진급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대학원을 다시 다니는 사람도 있었으니 아마도 최종 선택은 똑같을지도 모른다. 연구소 생활을 4년 하고 대학원을 늦게 가는 것은 장단점이 있을 수 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어차피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취업 시기가 늦어지는 것은 대표적인 단점일 수 있다. 하지만 관심과 별도로 점수에 맞춰 대학을 진학했던 것처럼 졸업 후 당연한 수순으로 대학원을 갔다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혹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을까. 모든 게 어차피 지나간 일에 대한 자기 합리화일지도.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초조함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대학원 생활은 시작됐다. 연구소에서는 미래 식량과 관련된 식물 유전자에 대한 연구를 했었고, 대학원은 식물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동물의 유전자, 그중에서도 실제 사람에게 이로운 내용의 연구를 해보고 싶어서 생명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이전 연구를 이용해서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때마침 다학제적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 생명 과학 전공으로 선택한 랩은 원래 단백질 구조에 대해 연구하던 곳이었는데 새로운 트렌드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분자 생물에 대해 전반적인 경험이 있는 학생을 뽑을 예정이었고 나는 운이 좋게도 그 자리에 딱 맞는 지원자였다. 생명과학 분야라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고 동기들 보다 나이가 많은 것도 걸리긴 했다. 랩에서도 이제 석사로 입학한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이미 박사 과정 중이어서 어떻게 보면 랩 분위기가 안 좋아질 수도 있었는데 연구소 때처럼 같은 랩 사람들과 마음이 잘 맞아서 대학원 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는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랩에서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혼자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하면 혼자서 참 용감했구나 싶었던 시간이었지만 누군가 그때의 나와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보고, 또 그게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 대부분의 일과였을 정도였다. 결국 이런 경험 또한 현재의 나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답답한 것 투성이었고 졸업 논문 주제로 공동 연구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헤쳐나가기엔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도 교수님은 랩미팅을 일 년에 두 번 정도 하는 게 고작일 정도로 항상 바쁘시고 학생에게 모든 걸 일임하는 스타일이셨다. 연구소에서 같이 근무했었던 선배들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두 번이고, 분야도 달라져서 그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실험은 실험대로, 수업은 수업대로 힘에 부치다 보니 결국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번 아웃 됐다.
수능 이후에 쉬어 갈 수 있는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중간에 딴 길을 잠깐 들렀다 왔지만 쉬지 않고 쭉 달려왔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서른이 다 되어버린 나이 때문인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시간이 버거웠던 건지 모르겠지만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결단을 내야 했다. 졸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졸업 후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또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지금도 늦었는데 여기서 쉬어가면 이다음이 더 늦어지게 된다는 것도 뻔했다. 고민은 많았지만 그 모든 게 견딜 수 없을 만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교수님께 1년을 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은 한 학기를 남겨두고 1년을 쉬는 이유에 대해 물으셨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그냥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면 한 한기만 쉬고 오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그땐 무슨 고집이었는지 무조건 1년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교수님은 내가 고집이 세다는 말을 종종 하신다.
그렇게 대학 때도 안 해본 휴학을 대학원에 와서, 한 학기를 남겨두고,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 감행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집에서 나와 살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 소속도 없고 모아 놓은 돈도 없으니 밖에서 지낼 명분도 형편도 안 돼서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부모님과 따로 살다가 다시 집에 들어가 함께 생활한다는 게 서로 불편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휴학하고 얼마 동안은 학교 일에 대한 생각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다 잊기 위해서 바쁘게 지내려고 노력하느라 집안일도 하고, 혼자 영화도 보고,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도 만났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멀지 않은 곳으로 여행도 갔었다. 여행을 가서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좋았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얼마 못 가서 한 학기만 쉬는 게 맞았던 걸까 하는 불안과 후회로 마음이 불편했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한 이유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부모님께도 너무 죄송하고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뭔가 시작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배낭을 쌌다.
빨간 경운기와 노란 유채꽃이 잘 어울렸던 그 길-청산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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